경남이야기

창녕 박진지구 전적비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7. 29.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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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피 흘린 젊은 영령들–박진지구 전적비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휴전한 지 70주년이 됩니다. 북한 공산군의 기습남침으로 한반도가 적화될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위급 상황을 극복한 주요 격전지가 낙동강을 따라 있습니다. 경남 창녕 <박진지구>도 그러한 주요 격전지로 전쟁 역사에 남는 곳입니다.

 

의령을 거쳐 창녕 쪽으로 향하자, 낙동강이 나옵니다. 박진교를 건널 때 야트막한 산 위에 우뚝 솟은 비가 햇빛에 반짝입니다.

 

다리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월상마을로 향합니다.

마을 입구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된 임도를 따라갑니다. 차 하나 겨우 다닐 정도라 마주 온다면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경사진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다 길이 멈춘 곳에 넓적한 공간이 나옵니다. <박진지구 전적비>가 있는 곳입니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면 정면에 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 길 입구에는 박진지구 전적에 관한 안내 글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계단으로 올라가기 힘든 분들은 옆 숲속 길을 따라가면 비록 흙길이 다소간의 불편이 있어도 비가 있는 정상으로 올라가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비를 향해가는 길 좌우에 향나무들이 마치 넋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향하나 피우듯 서 있습니다.

 

초록을 넘어 녹색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이 올라가는 우리를 응원합니다. 그날도 오늘보다 더 푸른 빛으로 이 산하를 지켜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비 앞에는 박진 전적비 자전거 호국 순례라는 글귀와 함께 ‘2023학년도 남지고등학교에서 올린 하얀 국화가 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1950625일 새벽,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한순간에 38선을 돌파했습니다.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을 넘어 남으로 남으로 밀려왔습니다. 낙동강까지 내려오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이곳에 최후의 방어선을 마련했습니다. 더 물러설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경북 왜관-상주-영덕을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은 유엔군이 맡아 방어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낙동강 주요 지역은 사투를 벌인 격전지입니다.

 

박진 전투지구 전승비가 있는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박진 지역은 부산을 점령해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북한군의 거센 공세가 있었던 곳입니다. 미군이 2주간 치열한 공방을 하며 지켜낸 격전지입니다.

당시 북한의 최정예 부대인 제4사단이 85일 밤, 이목 나루터를 이용해 은밀히 기습 침투할 때 강변을 방어하던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811일 영산읍까지 적들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북한군은 박진 나루터에 가마니 등으로 수중교를 만들어 각종 차량과 병력 등을 투입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유엔군은 대구, 마산 등지에 있던 전 예비 병력을 이곳에 집중해 시남리, 대봉리, 성사리에서 국운 걸린 대혈전을 벌였습니다. 819일 적에게 치명타를 입혀 강 건너로 완전히 격퇴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반전을 마련했습니다. 아군이 낙동강 건너 반격하게 되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사에 빛날 전적지입니다.

 

이곳은 격렬했던 전투지였던 만큼이나 전사자도 많았습니다. 1,458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부터 이 지역의 전사자 유해와 유품을 발굴하여 조국의 품에 모시고 있습니다.

 

머나먼 낯선 땅 이곳에서 자유를 위해 산화한 수많은 젊은 영령들에게 명복을 빌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피 흘려가며 지킨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없어야 한다는 결의를 굳게 다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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