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박물관은 살아있다 - 국립진주박물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1. 6. 2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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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아픈 기억 일깨워 주는 임진왜란 흉터 - 국립진주박물관

 

시간이 흐르면 그날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사라집니다. 그날의 아픈 기억이 흉터로 남은 역사 현장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일러줍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우리 겨레에 잊을 수 없는 흉터로 남은 임진왜란을 전문적으로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고마운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코로나19 2단계가 시행되기 전에 방문한 내용입니다. 427일 현재 박물관은 임시휴관이라 방문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진주성에서 조붓한 강변에서 봄날의 서정을 마주하다

 

진주박물관은 진주 도심 속 진주성 내에 있습니다. 접근이 쉽습니다. 먼저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정문에 해당하는 공북문으로 향했습니다. 성문을 지나면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조금 전까지 번잡한 도심의 일상은 음소거 되고 봄볕이 곳곳에 튕겨 안깁니다. 산중 깊은 숲속에라도 온 양 진주성은 풍성한 초록과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선사합니다. 일상의 묵은내는 사라집니다.

옛 경남도청 정문이었던 영남포정사로 향하는 야트막한 언덕 입구에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진주성 1차 전투를 승리(진주대첩)로 이끌었습니다.

 

동상을 지나 남강이 흐르는 성벽에 이르면 숨을 멎게 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지리산을 거쳐 진주를 감싸 듯 휘감아 돌아가는 남강 가에 유채꽃들이 샛노랗게 피었습니다. 조붓한 강변에서 봄날의 서정을 마주합니다. 논개가 순국했던 의암이며 촉석루가 한 폭의 그림처럼 저만치 보입니다. 평화롭습니다. 전쟁이라는 흉터를 애써 감춘 듯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이 뒤덮었습니다.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으나 곧장 들어가지 않고 오른편에 있는 국보 제105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먼저 찾았습니다. 원래 이 탑은 산청군 범학리 옛 절터에 있었는데 일본 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일본인 골동품상에 팔려 갔다가 해방 이후 미군 공병대에 의해 경복궁 안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후 경복궁 정비사업으로 다시 해체되어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가 고향 떠난 지 77년 만인 2018년 진주박물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탑을 돌아 박물관에 들어서자 <동아시아 7년 전쟁 - 임진왜란> 무렵의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의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당시의 세계사 연표가 비교되어 국제 정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진주박물관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갑니다.

 

‘하나의 전쟁, 세 가지 기억’- 동북아국제전쟁

 

하나의 전쟁, 세 가지 기억이라는 전시물은 1592년부터 7년 동안 일어난 전쟁을 삼국이 어찌 달리 부르는지 설명합니다. 한글과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쓰인 전시물은 일본은 분로쿠노에키(분로쿠의 전쟁), 중국은 항왜원조라 부르는 '동아시아 7년 전쟁'은 한일 역사 흉터인 국제전쟁이라 일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세계사 흐름 속에서 살펴볼 기회를 줍니다.

 

걸음을 옮기자 일본 나고야성에서 출병하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한 일본군의 출병으로 기나긴 7년 전쟁이 벌어집니다. 전시물을 찬찬히 살펴보는 내 뒤로 공명심과 정복욕으로 찌든 히데요시가 침략군을 지휘하는 듯 앉아 있는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일본군의 침략에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조선은 의병의 봉기와 수군의 활약으로 진출을 저지합니다. 명나라의 참전으로 동아시아 전쟁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당시의 무기들을 비교한 전시실에서 다시 걸음은 멈췄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대형총통들 너머로 일본군의 조총이 보입니다. 조선군과 일본군의 무장을 살펴보며 2층으로 향합니다. 2층으로 향하는 경사로 한쪽에는 잎 무성한 대나무가 뜬금없이 서 있습니다. 대나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독을 바른 철편을 붙인 대나무 가지 형태의 긴 창입니다.

 

‘418,040마리’ 이순신이 군량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과 마련한 청어 숫자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역사의 흔적인 왜성들이 보입니다. 옆으로 각종 숫자가 두 눈을 붙잡습니다. ‘418,040마리이는 이순신이 군량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과 마련한 청어라고 합니다. ‘214,752일본 교토 코 무덤에 묻힌 조명 연합군의 코 개수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아라비아 숫자가 말없이 들려줍니다.

 

2층 전시실에 이르면 진주성을 그린 진주성도가 나옵니다. 진주성도 속 진주성과 진주의 세부모습을 담은 그림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합니다. 진주에 나고 자란 까닭에 오늘날의 진주와 생생하게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진주성도 옆으로 논개 초상 두 개 걸려 있습니다. 같은 논개인데도 분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1955년부터 진주성 의기사에는 걸려 있던 친일파 이은호가 그린 논개 초상은 시민들의 여론에 떠밀려 내려졌습니다. 시대적 고증에 충실하게 그려진 논개 초상이 2007년부터 걸려 있습니다. 마치 아직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현실을 보는 듯합니다.

 

팔, 다리가 잘리며 저항했던 열녀 행실, 전쟁 참사를 생중계

 

논개 초상을 지나면 조선 수군의 전투함인 판옥선과 거북선을 일본 수군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와 비교한 전시물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눈동자가 크게 열리고 숨이 멎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이른바 조선 시대 효자와 충신, 열녀의 행실을 글과 그림으로 설명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속 삽화입니다. , 다리가 잘리며 저항했던 열녀(?)의 행실은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생중계합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 피해자의 슬픈 영혼이 겹쳐 보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전한 전시실 끄트머리에 의병장이었던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을 배출한 남명 조식을 중심으로 한 전시물이 다시금 나가려는 걸음을 불러세웁니다. 말이 아닌 행동을 강조했던, (敬義劍)을 품은 남명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경상남도에 흐르는 셈입니다. 문화홀로 내려가는 길목에 근대 민중 운동의 큰 획을 그은 진주농민항쟁과 근대 인권 운동인 형평운동이 진주 정신을 엿보게 합니다.

 

박물관 내 전시실만 천천히 걸었을 뿐인데도 켜켜이 쌓인 동북아국제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며 아픈 흉터를 돌아봤습니다. 문화홀에서 역사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릅니다. 문화홀 전면 가로 10m, 세로 5m의 초대형 진열장에는 약 400여 점의 문화재가 아늑하게 보입니다. 근처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끄집어 읽습니다. 몸과 마음이 개운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요?

 

문화홀을 나와 기획전시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희문의 난중일기인 <쇄미록>이 전시 중입니다. 전쟁 당시 54세였던 오희문은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 임천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큰아들이 강원도 평강현감으로 부임하자 그곳 옮겨 다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유랑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서 93개월간의 일기 기록이 <쇄미록>입니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요?” 묻는 마지막 전시물의 글귀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며 힘을 줍니다.

 

기획전시실 옆에는 두암실이 있습니다. 사천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두암 김용두 선생이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해 기증한 유물을 전시한 공간입니다. 전라도 관찰사로 떠나는 정와를 전별하며 쓴 정조대왕의 친필 칠언유시를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두암실 주위에는 평온한 휴게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 앉아 밖을 보노라면 온몸과 마음에 평화를 한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당분간 폐쇄되어 있어 돌아서는 걸음이 무겁습니다.

 

박물관은 현재 너머 미래를 제대로 보라고 일깨워

 

국립진주박물관은 동북아국제전쟁 참상을 잊지 말라 알려주는 고마운 흉터입니다. 우리에게 현재 너머 미래를 제대로 보라 일깨웁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2021428#경남도민일보 에 실렸습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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