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가슴으로 배우는 곳 - 3 ·15의거탑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9.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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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주주의 효시인 3 ·15의거를 기념하는 3 ·15의거탑(三一五義擧塔)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가슴으로 배우는 곳으로 뜨거운 햇볕을 벗 삼아 걸었습니다. 무학초등학교 근처에 도착하자 민주주의 효시인 3 ·15의거를 기념하는 3 ·15의거탑(三一五義擧塔)은 보였습니다. 급하게 길을 가로질러 곧장 가지 않았습니다. 임항선 그린웨이 쪽으로 에둘러 걸었습니다.

 


임항선 그린웨이 주위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 마산역에서 마산항 제 1부두까지 이어져 있던 8.6의 철도 임항선(臨港線)1905년 개통해 2011년 폐선되어 현재 주민들의 즐거운 산책길이 되었습니다.

 


임항선 그린웨이 주위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속 커다란 눈망울이 아름다운 강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린웨이 따라 선 마을에 벽화가 먼저 반깁니다. 커다란 눈망울이 아름다운 강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길을 따라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그림은 내 마음을 드러낸 듯합니다.

 


임항선 그린웨이에 있는 가도교는 옛 철길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옛 철길의 흔적은 가도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늘빛을 품은 그네 의자가 흔들흔들, 잠시 쉬어가라 권합니다. 마산박물관과 문신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을 벗어나 길을 벗어나 몽고정과 3 ·15의거탑 쪽으로 향했습니다.

 


고려 말 충렬왕 7(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고 근처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주둔 군대에서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인 몽고정(蒙古井)

 

기와지붕이 둘러싼 우물터가 몽고정입니다. 고려 말 충렬왕 7(1281)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두고 근처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주둔 군대에서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입니다.

 


1932년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멸시하는 뜻에서 고려정이라 불리던 우물의 이름을 몽고정(蒙古井)이라 바꿨다고 한다.

 

우물터에는 <몽고정(蒙古井)>이라고 씐 비가 서 있습니다. 1932년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멸시하는 뜻에서 고려정이라 불리던 우물의 이름을 바꾼 것이라 합니다. 현재는 물을 길을 수 없습니다.

 


몽고정 근처에는 1905년 우리나라 양조산업의 불씨를 처음 지핀 유서 깊은 터전이라는 몽고식품의 창업지라 적힌 비석이 서 있다.

 

근처에는 1905년 우리나라 양조산업의 불씨를 처음 지핀 유서 깊은 터전이라는 몽고식품의 창업지라 적힌 비석이 서 있습니다.

 


몽고정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 ·15의거탑이 있다.

 

몽고정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3 ·15의거탑이 있습니다. 19603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하려고 3·15 부정선거를 단행하자 같은 날 밤 당시 마산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부정선거 규탄했습니다. 이 와중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날의 의거를 기념해 1962920일 부정선거 당시 의거가 가장 치열했던 마산시 서성동(西城洞)에 세운 탑입니다.

 


학생 복장의 남녀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조형물 옆으로 3 ·15의거탑이 하늘 향해 솟아 있다.

 

기념탑은 불의에 항거하며 나아갔던 이들의 마음을 담아 뜨겁게 솟구쳐 흔듭니다. 학생 복장의 남녀가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조형물 옆으로 탑이 하늘 향해 솟아 있습니다. 탑 주위에는 항거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19603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하려고 3·15 부정선거를 단행하자 같은 날 밤 당시 마산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부정선거 규탄했다. 이를 새긴 부조물.

 

탑 아래에는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 날, 1960315!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는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삼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원래 탑을 포함해 전체 면적이 42평밖에 되지 않아 오가는 이들에게 잊힌 존재로 남자 1999298평으로 기념탑과 분수, 인공폭포 등이 들어선 공원으로 새로 단장했습니다.

 


원래 3 ·15의거탑을 포함해 전체 면적이 42평밖에 되지 않아 오가는 이들에게 잊힌 존재로 남자 1999298평으로 기념탑과 분수, 인공폭포 등이 들어선 공원으로 새로 단장했다. 공원 내 분수대.

 

생생한 역사 교육의 현장에 서자 가슴이 태양처럼 덩달아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당시의 시간 속으로 햇볕이 내리 꽂힙니다. 장렬했던 역사가 맺힙니다. 어딘가에 고였던 땀방울과 핏물이 바람결에 순간 덮쳐 옵니다.

 


3 ·15의거탑 공원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땅, 공간에 담긴 역사를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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