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벌써 유월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잠시 쉼표를 찍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기로 했다. 조선 마을이 넓고 깊은 아늑한 산청 남사 예담촌을 찾았다.
남사예담촌
가는 길은 암녹색의 풍광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한다. 단성면 소재지를 지나 고개를 하나 지나자 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인 남사예담촌이 나온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숨 고르듯 전망대에 올랐다.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남사예담촌 돌담길
어깨를 맞댄 돌담이 고즈넉한 풍광으로 마음속에 평화를 안겨준다. 1906년 진주 사월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남사마을은 청계를 가운데에 두고 남사는 진주에, 상사는 단성에 속하기도 했다. 천왕봉 줄기인 웅석봉이 발원하여 10여 리를 흘러온 사수의 조화로운 모습 속에 좌청룡 우백호가 함께하는 명승이다. 공자가 탄생했던 니구산(尼丘山)과 사수(泗水)를 이곳 지명에 비유할 만큼 학문을 숭상한 마을로 유명하다.
남사예담촌 돌담길
산과 물길이 만들어 놓은 마을은 반달 모양이다. 마을의 운세가 보름달이 돼 다시 기울지 않게 하려고 옛날부터 마을 한가운데를 빈터로 남겨두고 있다.
남사예담촌 이씨고가 골목길
바람이 지나며 시원하게 뺨을 어루만진다. 전망대를 내려와 돌담이 속삭이는 햇살을 따라 돌담과 토석담, 기왓장을 이는 담장 등이 어우러진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먼저 마을의 상징이며 가장 오래된 집인 이씨고가로 향했다. 들어서는 골목에 300년생 회화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그리워하듯 X자로 엇갈려 문을 이룬다. 나무 아래를 지나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새로이 만들어져 퍼지고 있다.
남사예담촌 내 이씨고가에 있는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산신 할매 나무
회화나무를 지나 이씨고가로 들어서자 오른편에 또 따른 회화나무가 보인다. 산신할매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에는 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구멍에 손을 넣고 자식을 기원하면 산신할매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남사예담촌 내 이씨고가
1700년대 목조 건물인 이씨고가는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채(익랑채)와 곳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이씨고가의 시조는 태조 이성계의 사위인 이재의 손자다.
남사예담촌 내 이씨고가는 1700년대 목조건물로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이씨고가 툇마루에 앉았다. 들고나는 바람이 얼굴에서 발끝까지 시원하게 어루만진다. ‘봄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꽃은 지난해 피었던 그 꽃이 아니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안채 앞에 섰다. 잠시 올 초부터 숨 가쁘게 내달려온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남사예담촌 내 지리산 둘레길 풍경을 수묵담채화로 담아내는 이호신 화백의 작업실 한켠에 있는 ‘즈금은 꽃피는 자리’
걸음은 다시금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 사이에 깃든 세월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 둘레길을 지나며 풍경을 수묵담채화로 담아내는 이호신 화백이 머무는 ‘지금은 꽃 자리’로 향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묵향이 풍겨온다. 그림을 구경하고 냉커피 한 잔을 청해 대나무 아래에 앉았다. 대나무들은 기어코 나를 초록 바람으로 샤워하려는 듯 살랑인다.
남사예담촌를 가로질러 흐르는 남사천
기분 좋게 쉬다 일어났다. 작은 개울(남사천)을 지났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때 하루 묵다 간 니사재로 향하는데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너머에서 반긴다. 니사재로 바로 향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기산국악당에 먼저 들렀다.
남사예담촌 내에 있는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는 기산국악당
기산 박헌봉 선생은 1906년 여기에서 태어나 국악 대중화에 앞장선 국악 교육의 선구자다. 국악계 큰 스승인 기산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생가터에 세운 기산국악당은 기산관, 기념관, 교육관과 야외공연장으로 꾸며져 있다. 기념관에 들러 선생의 살아온 삶도 살피며 더불어 전통 악기도 구경하고 소리도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 하루 묵고 갔다고 하는 니사재
기산국악당을 나와 니사재에 들러 잠시 백의종군 중이었던 이순신 장군도 떠올리고 남사천을 따라 이동서당과 유림독립기념관에도 들렀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느긋하게 걸었다.
남사예담촌 내 있는 유림독립기념관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 사이로 깃든 세월의 흔적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돌담이 품은 세월에 평화롭게 머물다 가는 기분이다.
남사예담촌 내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남사천 따라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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