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처럼 편안한 경남 합천 황강
걸었다. 멈췄다. 다시 걸었다. 푸른 하늘 구름처럼 자유로운 11월 27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처럼 편안한 곳으로 길을 나섰다.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면서도 여행길의 설렘을 안겨주는 경남 합천 황강정으로 향했다.
합천 이씨 전서공파 집성촌인 내촌마을 안내도
덕유산에서 발원해 합천을 거쳐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을 건너지 않고 오른편으로 벼랑을 따라 난 길로 20여 분 가다 멈췄다. 쌍책초등학교를 지나 성산리 내촌마을 안내도 앞에서 차를 세웠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멀찍이 보인다.
합천 내천마을 내 정원인지 깔끔하게 단정된 길 사이로 바람개비가 돈다. 멋진 소나무가 추임새를 놓는 듯 서 있다.
합천 이씨 전서공파 집성촌인 내촌마을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나는 바람이 와락 겨 안는다. 마을 내 정원인지 깔끔하게 단정된 길 사이로 바람개비가 돈다. 멋진 소나무가 추임새를 놓는 듯 서 있다.
합천 내천마을은 자전거 도로가 황강을 따라 놓여 있다.
자전거도로 안내판 뒤에 바람을 안으며 고래 찾으러 떠나는 벽화가 걸음을 가볍게 한다. 황강을 따라 벽화를 따라가자 정자 앞에서 선비 두 사람이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그림이 나온다. 그림과 닮은 정자가 나온다.
합천 관수정
벼랑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건물인 관수정(觀水亭)이다. 관수정 바로 뒤편에는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1504(연산군 10)∼1559(명종 14)이 28세 때(1531년)벗들과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 만든 황강정(黃江亭)이 있다.
합천 관수정 앞에 있는 남명 선생 시비
관수정 앞 느티나무 아래에는 남명 선생 시비가 세워져 있다.
“황강의 정자에 쓰다(題黃江亭舍)
강 위로 제비 어지러이 날고 비 묻어 오는데(江燕差池雨欲昏·강연치지우욕혼)
보리 누렇게 익어 누렁 송아지 분간할 수 없네(麥黃黃犢不能分·맥황황독불능분)
접때부터 손의 마음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向來客意無詮次·향래객의무전차)
외로운 기러기 되었다가 또 구름 되기도 한다네(旋作孤鴻又作雲·선작고홍우작운)”
합천 관수정 앞 황강 벼랑길
남명 선생이 절친한 벗인 황강정을 찾아 쓴 시다. 잠시 시를 따라 읽다가 황강 따라난 벼랑을 사부작사부작 거닐었다. 관수정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데 개쑥갓이 노랗게 피었다. 옆으로 진분홍빛 송엽국이 반긴다.
황강(黃江) 이희안(李希顔·1504(연산군 10)∼1559(명종 14)이 28세 때(1531년)벗들과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 만든 황강정(黃江亭)
관수정으로 바로 가는 문은 닫혀 있어 담장을 따라 에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햇살이 곱게 드리운 정자 사이로 볕이 든다. 바람이 든다. 풍경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합천 내천마을 관수정 바로 뒷편에 황강정이 있다.
이희안의 자는 우옹(愚翁),본관은 합천이며 황강은 그의 호다. 황강 선생은 일생 출사하지 않다가 49세 때 고령 현감으로 천거 받아 부임했다. 남명 선생도 당시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황강 선생은 관찰사와 뜻이 맞지 않아 곧바로 사직했다.
합천 관수정
남명 선생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시를 지었다.
“이 우옹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聞李愚翁還鄕)
산해정에서 꿈 몇 번이나 꾸었던가?(山海亭中夢幾回산해정중몽기해)
빰에 흰 눈 가득한 황강 노인 모습을(黃江老叟雪盈顋황강로수설영시)
반평생 동안 금마문(궁궐문)에 세 번 이르렀지만(半生金馬門三到반생김마문삼도)
임금님은 만나뵙지도 못하고 돌아왔다지(不見君王面目來부견군왕면목래)”
합천 내천마을 벽화
시에서는 3번이나 벼슬길에 나갔으나 임금 한 번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황강을 나무란다. 낮은 벼슬로 뜻도 펴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배여 있다. 세상이 알아주는 출사만이 길이 아니라며 우리의 길을 가자고 노력하자는 다짐이 묻어 있지는 않을까?
강물은 말없이 흐른다. 정자에서 물러나 바로 뒤에 있는 황강정으로 향했다. 관수정과 달리 돌아서라도 들어갈 길이 없다. 시멘트 담장을 까치발로 살피고 나왔다.
관수정에 앉아 남명 선생의 또 다른 황강정 시를 조용히 읽었다.
“황강의 정자에 쓰다(題黃江亭舍)
강 위로 제비 어지러이 날고 비 묻어오는데(江燕差池雨欲昏·강연치지우욕혼)
보리 누렇게 익어 누렁 송아지 분간할 수 없네(麥黃黃犢不能分·맥황황독불능분)
접때부터 손의 마음은 아무런 까닭도 없이(向來客意無詮次·향래객의무전차)
외로운 기러기 되었다가 또 구름 되기도 한다네(旋作孤鴻又作雲·선작고홍우작운)”
지나온 세월의 더께만큼 넉넉한 두 분의 우정을 느낀다. 호젓한 정자에 깃든 문향에 펼쳐진 풍광이 여행 끝자락을 감동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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