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 발자취

공무원 시험 보기 전에 먼저 이곳을 찾아 읽자-목숨 내걸고 직언한 선비가 쓴 을묘사직소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1.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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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 1501~1572) 선생이 태어난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


2666대 1. 올해 중국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 17만 명이 몰려 역대 최다 응시인원 신기록을 이뤘다. 나 역시 아이들의 장래 희망과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밥벌이’ 수단으로 아이들에게 슬며시 권했다. 부끄럽다. 부끄러운 마음을 씻고자 1월 5일, 임금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 1501~1572) 선생을 뵈러 경남 합천 삼가로 향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인 생가지와 뇌룡정, 용암서원으로 가는 길


진주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33호선을 타고 가다 의령군 대의면 대의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인근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로 접어들었다. 선생의 유적지 안내판이 길라잡이를 한다. 남명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남명선생이 태어나고 나중에 제자를 길러낸 뇌룡정과 후대에서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용암서원이 있는 마을을 남강의 지류인 양천강이 에둘러 흘러간다.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양(玉免望月)이란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 토동마을 입구에는 45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먼저 알은체를 하며 반긴다.


다리를 건너자 45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먼저 알은체를 한다. 옆에는 ‘홀로 선 나무를 읊다(詠獨樹)’라는 선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무리를 떠나 홀로 있기에(離群猶示獨)/ 스스로 비바람 막기 힘들겠지(風雨自亂禁)/늙어감에 머리는 없어졌고(老去無頭頂)/ 상심하여 속내가 다 타버렸네(傷來燬腹心)/ 아침에는 농부가 와서 밥 먹고(穡夫朝耦飯)/ 한낮에는 야윈 말이 그늘에서 쉬네(瘦馬午依陰)/ 다 죽어가는 등걸에서 무얼 배우랴(幾死査寧學)/ 다만 하늘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네(昇天只浮沈)’


조용히 따라 읽었다. 시비 옆에 있는 ‘외토리 쌍비’를 둘러본 뒤 곧장 뇌룡정으로 향했다. 선생은 48세에 처가 김해 산해정에서 삼가 토동으로 돌아와 뇌룡사(雷龍舍)와 계부당(鷄伏堂)을 짓고 61세에 산청 덕산으로 가진 전까지 학문을 체계화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이다. 뇌룡정 뒤에는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용암서원이 있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外吐里)에 있는 쌍비


용암서원 앞에 차를 세웠다. 서원 외삼문인 집의문(集義門)은 닫혀 있다. 출입을 막기 위해 자물쇠를 채운 것이 아니라 나일론 끈으로 묶여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풀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먼발치에서 선생의 위패 모셔진 숭도사를 향해 묵례로 예를 올렸다.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는 뇌룡정(앞쪽)과 용암서원


사당에는 “나를 처사(處士)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이 내 평생 뜻이다. 처사라고 쓰지 않고 관직을 쓴다면 이것은 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라며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병시중을 들던 제자에게 말한 선생의 뜻을 받들어 처사라고 적혀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서원 앞에는 선생이 전주 부윤에게 보낸 편지가 새겨진 돌 사이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을 닮은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옆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앞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명종은 “자전(慈殿,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라는 구절 등에 격분했다. 임금 자신을 고아에 불과하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구중궁궐의 한 과부라는 내용에 벌을 주려고 했다. 다행히 ‘언로를 막을 수 없다’라는 신하들의 만류에 명종은 벌 줄 수 없었다.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의 흉상과 을묘사직소를 새긴 비석


선무랑 단성 현감에 새로 제수된 조식(曺植)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소(疏)를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상소문을 찬찬히 읽었다. 아래 구절에서 가슴이 뛴다.



합천 용암서원 앞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 흉상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돌아섰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동안 벌레가 그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가 있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랩니다.” 고 현 정세를 파악한 선생은 “전하께서는 ~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라며 왕으로서 왕답게 살라고 당부하면 글을 맺는다.



합천 용암서원 옆 양천강 강둑은 곧장 이어지지 않고 두 그루의 나무를 에둘러 지나갔다.


뉘라서 저렇게 직언(直言)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고 쓴 선생의 결기가 느껴진다. 공무원이 바로 선다면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다. 공직에 나갈 사람라면 여기에서 이 상소문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더구나 올 6월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합천 용암서원 옆 양천강


뛰는 가슴을 안고 뇌룡정으로 바로 향하지 못했다. 강가로 걸음을 돌렸다. 강둑은 곧장 이어지지 않고 두 그루의 나무를 에둘러 지나갔다. 강물에 유유자적 오가는 오리 떼가 정겹다. 선생의 상소문 내용을 떠올리며 걷는다. 발길에 부딪히는 작은 돌들이 내는 소리가 마치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허리춤에 찼던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처럼 울린다.



합천 뇌룡정은 남명 조식 선생이 세운 뇌룡사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883년 허유, 정재규 등 삼가의 유림이 원래 자리에 중건한 것이다.


강둑을 거닐다 뇌룡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뇌룡정은 선생이 세운 뇌룡사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883년 허유, 정재규 등 삼가의 유림이 원래 자리에 중건한 것이다.



합천 뇌룡정 기둥에는 ‘시거이용현(尸居而龍見)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이라 적혀 있다. 꾸준히 실력을 쌓아서 때를 기다리라는 남명 선생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다.


‘시거이용현(尸居而龍見)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이라고 적힌 기둥에 앉았다. ‘죽은 듯 있다가도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못처럼 조용하다가도 우레처럼 소리 낸다'는 뜻을 되새김질했다. 꾸준히 실력을 쌓아서 때를 기다리라는 선생의 가르침에 나는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지나가는 바람이 불어와 와락 껴안는다.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 지났다. 이제 남아 있는 마지막 추위가 지나면 따뜻한 기운과 함께 여기저기 봄을 알릴 것이다. 직언을 아끼지 않는 공무원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직언을 하는 사람이 되자. 흔들리더라도 굳건히 가라고 선생은 말없이 일러준다.



남명선생은 직언을 아끼지 않는 공무원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직언을 하는 사람이 되자. 흔들리더라도 굳건히 가라고 선생은 말없이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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