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날, 경상대학교에 다녀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았다.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부러 정문까지 다시 걸어 나갔다. 지리산과 펜촉을 형상화했다는 정문부터 찬찬히 걸었다. 햇볕은 따뜻했다. 시원한 바람이 와락 껴안고 지나간다.
개척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짧게 살고도 오래 사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개척자다
그이의 눈은 앞을 보는 눈이요, 그이의 가슴에는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무슨 일을 남기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
나는 언제나 이것을 묻기 위하여 이곳에 서 있습니다.“
심장이 쿵쿵 뛴다.
학교 상징 동물인 ‘사자’를 형상화했다는 중앙도서관을 두 눈앞에 세우고 걸었다. 도서관 가는 길 중간에서 옆으로 샜다.
대부분의 교양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양학관으로 옮겼다. 감나무에 주황색 감 하나 덩그러니 반긴다. 해가 내 머리 위에 걸쳤다. 이끼 사이로 길게 나뭇가지가 뿌리인 양 박힌다.
꽃피는 5월이면 튤립을 닮았다 해서 튤립나무라고 불리는 백합나무가 촛대처럼 열매를 안은 채 햇살에 샤워 중이다. ‘전원의 행복’이라는 꽃말처럼 지금 펼쳐진 풍경은 행복이 쏟아진다.
햇살이 곱게 드리운 자리에 앉았다. 20여 년 전 시간 속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슬며시 긴장된 입가를 봄볕에 녹는 눈처럼 풀린다. 학생회관으로 향하는 걸음은 여유롭다. 지난 추억이 앞서서 이끈다. 2층 라운지. 고요하다. 햇살이 슬며시 들어오는 사이사이 이젤에 흑백과 컬러 사진들이 펼쳐졌다.
경상사진마을 흔적, 2017년 마감전과 졸업전이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린다. 동네 마실 가듯 한 바퀴 돌았다.
카메라를 든 사진 앞에서 나 역시 같은 자세로 내 카메라에 담았다.
“이쁜 꽃신 신겨줄게”라고 적힌 풍등을 찍은 사진에서 다문 입은 열려 옥수수 같은 이를 드러나게 한다.
‘비상’이라는 생물학과에 재학 중인 백무동 후배의 흑백 사진에 걸음은 쉽사리 옮기지 못했다. 왼쪽 상단으로 두 날개 펼쳐 날아가는 새 아래는 마치 디딤돌처럼 돌탑들이 놓여 있다. 오른쪽 돌무지 끝에는 무심한 듯 화면 밖을 바라보는 새가 보인다.
비상하는 후배들의 열정이 사진 너머로 전해진다. 혼자 꾸던 꿈도 함께하면 현실이 된다. 흔적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정성이 만들어낸 사진이야기.
아마도 내년에도 ‘그냥’ 또 보러올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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