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여행,아프다고 외면할 수 없는 곳-산청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3.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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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걷고 싶었다. 아픈 과거를 잊고 싶었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의 중산관광단지 내에 있는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智異山-討伐展示館)에서 몇 번을 망설였다.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을 주제로 만든 전시관이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탱크며 장갑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으로 바로 향하지 못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모습에 애써 고개를 돌렸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신동엽 시인의 봄은이라는 시를 비롯해 그날이 오면 우리가 추는 춤/ 복된 춤은 네가 되리라 강강수월래/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에 가슴을 이어/동쪽의 너도 서쪽의 너도/ 남과 북의 너도 하나가 되어/ 얼싸안고 뛰리라 강강수월래/~’ 나해철 시인의 강강수월래는 차라리 눈물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좀 더 앞으로 나가자 사각의 도미노를 닮은 조형물이 나온다. 전시관 쪽으로 향한 도미노는 하나에서 시작해 결국 넘어졌다. 남과 북을 가로막은 이념의 장벽이 점차로 허물어져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된 조국의 번영과 밝은 미래의 메시지를 담은 무너지는 이념의 벽이라는 조형물이다.

 

조형물 끝자락에는 우는 아이를 안고도 어쩔 수 없는 어머니가 머리에 손을 기대어 망연자실 앉아 있다. 아기와 어머니 앞에 있는 텅빈 바구니에는 호미뿐이다. 이들 위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총들이 머리 위로 교차한다.

 

갑갑한 마음을 안고 전시관으로 걸음을 옮길 무렵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전시물에는 통일 염원 국민의 바람이 새겨져 있다. 통일 바람벽을 지나자 앞에서 총부리를 겨눈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두 손을 맞잡은 조형물이 나온다. 어서 빨리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입구가 동굴을 닮은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실은 3개로 이루어져 있다. 빨치산의 정체 등을 살펴보며 천천히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19631112일 새벽 1시경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에서 이홍이는 사살되고, 정순덕이 생포됨으로써 지리산빨치산토벌 작전은 막을 내렸다는 전시물에 앞에서 걸음은 멈췄다.

 

마지막 빨치산으로 알려진 정순덕은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안내원마을 출신이다. 19512월에 조선인민유격대(지리산빨치산)에 입대한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간 정순덕은 남편이 사망하자 유격대에 합류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정순덕은 이홍희와 함께 19621010, 생가인 안내원마을에서 형제사이인 정위주 부부, 정정수 부부와 정위주 아내 뱃속의 아기까지 다섯 목숨이 정순덕· 이홍희에 의해 학살됐다고 한다. 치가 떨린다.

 

전시관을 나와 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민가아지트가 나왔다. 내원골에 있는 민가의 구들장을 교묘히 이용한 아지트는 토벌대가 검문, 검색하면 아궁이의 솥단지를 들어내고 방고래를 통해 구들장 밑으로 숨은 뒤, 아궁이에는 다른 곳에서 태운 재로 소복이 덮어 놓고, 솥에는 뜨거운 물을 채워 토벌대의 눈을 속여 은신처로 이용했다고 한다. 바로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이 막을 내린 곳이다.

 

빨치산들이 산속에서 가장 쉽게 조성해 생활한 초막아지트를 지나 급경사 지형의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형성한 순두류 아지트까지 먹먹한 마음으로 걸었다.

 

언덕 위 긴 의자에서 쉬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던 지리산은 이제 그 아픈 기억마저 찾는 이에게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였던 이곳에서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그 아픔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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