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천수교 남단 남강산책로를 따라 쉼표하나 그린 시간
평소에는 5분 더 자고 싶은 잠도 막상 쉬는 날에는 알람 소리보다 먼저 눈을 뜬다. 쉬는 날 6일도 그랬다.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나왔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면 그냥 발길 닿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숭숭한 마음을 채우러 떠났다. 승용차를 몰아 진주 남강을 가로질러 망경동과 신안동을 연결하는 천수교 남단 입구에 이르렀다.
까칠한 시멘트벽 배수로 구멍 사이로 드러낸 고사리 진녹색 잎의 생명력이 싱그럽다.
진녹색의 까칠한 시멘트벽 배수로 구멍 사이로 고사리가 녹색 잎을 드러낸 생명력이 싱그럽다. 간밤에 내린 비 덕분에 익어가는 대추나무의 대추 알이 물을 송골송골 머금었다. 하얀 벽면에 큼지막한 컬러 파마머리를 가진 주황색 옷을 입은 여인이 바람결에 휘청이는 나무기둥을 잡고 있는 벽화가 예사롭지 않다. 붙잡은 나무 기둥 아래에는 긴 의자가 놓여 있고 의자에는 꽃무늬 옷감이 걸쳐 있다. 칙칙한 사방 벽에다 벽화를 그린 곳은 ‘문 갤러리’였다.
하얀 벽면에 큼지막한 컬러 파마머리를 가진 주황색 옷을 입은 여인이 바람결에 휘청이는 나무기둥을 잡고 있는 벽화가 예사롭지 않다.
갤러리라 분위기가 여느 집과 다르다. 갤러리를 지나 다리 입구에서 서 쪽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하늘 가득 덮었다. 저 멀리는 푸른 빛이 보인다. 진양호쪽 남강을 따라 긴 나무테크가 놓여 있다. 나선형으로 된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길 반대편으로 곧게 위로 뻗은 길이 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곧게 뻗은 위로 올라갔다. 10여m 비탈길을 올라갔을까.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참 낯설다. 살짝 발만 들어도 풍경은 달라 보인다더니 이곳에서 바라보는 진주성과 남강을 색다르다.
천수교 남단 입구에서 10여m 비탈길을 올라가자 이런 숲이 깃들어 있는지 몰랐다.
멀리서 지나가기만 했을 뿐이다. 이런 숲이 깃들어 있는지 몰랐다. 새벽까지 내린 비에 나뭇잎들이 떨어져 길을 덮었다. 그 길을 따라 위로 좀 더 올라가자 진주성과 남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가오는 개천예술제 때 이곳에서 불꽃놀이와 유등을 볼 즐거운 상상이 걸음은 떠날 줄 몰랐다.
망경동 정자에서 바라본 진주성과 남강
정자에 올라 준비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이제야 이런 곳을 발견한 신기함에 정자에서 내내 남강과 진주성을 두리번거렸다. 진주성은 나뭇잎에 가려 전부를 보려면 좀 더 까치발을 해야 했다. 다행히 촉석루며 의암은 잘 보였다. 이곳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간을 잊게 한다.
‘사광이아재비’는 일제강점기 ‘며느리밑씻개’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다.
천천히 다시 다리 밑으로 내려가려는 데 사람들 여럿이 대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나뭇잎을 뒤적인다. 죽순을 찾는듯하다. 나는 곁눈질하며 그냥 내려왔다. 저만치 손톱 크기만 한 연분홍빛 ‘사광이아재비’가 앙증스럽게 가만가만 보인다. ‘사광이아재비’는 일제강점기 ‘며느리밑씻개’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다.『한국식물생태보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일본말 ‘의붓자식의 밑씻개(ママコノシリヌグイ)’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서 1937년부터 며느리밑씻개로 불렸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에게 밑씻개로 잔가시가 많은 넓은 풀 잎사귀로 주었다는 ‘며느리밑씻개’로 둔갑한 ‘사광이아재비’.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씁쓰레하다.
천수교에서 희망교 방면으로 나무테크가 놓여 산책하는 걸음이 즐겁다.
남강을 따라 난 나무 테크를 따라 서쪽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정겹다. 테크 옆에는 유등축제 때 띄울 유등들이 곁에 있다.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갈 천마 유등에 훌쩍 내 무거운 몸을 실어 하늘로 박차고 날아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 외도 용이며 공부하는 서당 풍경을 담은 유등이 즐비하다.
나무테크 옆에는 다가오는 유등축제때 쓰일 천마 유등을 보면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갈 천마에 훌쩍 내 무거운 몸을 실어 하늘로 박차고 날아가고 싶었다.
왼편으로는 백로 조형물들이 보였다. 밤에 조명을 받아 한껏 하늘로 올라가는 풍경 생각에 마음이 즐겁다. 나무 테크는 아쉽게도 400m 정도에서 그쳤다. 올해 말까지 천수교에서 희망교까지와 새벼리 아래 주약동과 가호동 사이 남강 변에 보행로가 만들어지면 자전거와 보행에 불편이 없을 예정이란다.
망경동 옛 철길에서 남강 너머로 바라본 신안동.
길이 끝나는 무렵에 노란 수까치깨가 아쉬워하는 나를 달랜다. 하동으로 향하는 옛길로 잠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나무 테크가 없는 희망교 쪽으로 향하는 길은 질퍽해서 걸음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돌아 나왔다. 보랏빛 무릇들이 노란 수까치깨 사이로 환하게 배웅을 한다. 남색 닭의장풀 무리도 살포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고개를 들자 진초록색의 나뭇잎이 햇살에 싱그럽게 펄럭인다.
나뭇잎에 보석처럼 빗방울이 알알이 맺혔다. 지날 때는 몰랐다가 돌아가는 길에는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자 진초록색의 나뭇잎이 햇살에 싱그럽게 펄럭인다. 천수교 아래를 지나 촉석루 쪽으로 걸었다. 중앙광장까지 푸른 남강과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나무들이 곁에서 함께한 신록으로 향하는 길이다. 쉬엄쉬엄 걸었다.
천수교에서 촉석루까지 쉬엄쉬엄 걷는 길은 진녹색으로 변해가는 나무들이 곁에서 함께한 신록으로 향하는 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너지를 재충전한 길이다. 지친 마음에 쉼표 하나 그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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