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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행 -가장 최대 규모라는 청동기 무덤이 있는 경남 진주시 초장동 유적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8.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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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성큼 다가와 반갑게 맞는 곳

가장 최대 규모라는 청동기 무덤이 있는 경남 진주시 초장동 유적

 

2000년이 성큼 다가와 반갑게 맞는 곳을 찾아 아파트에서 나왔다. 광복절 아침 7, 가족들은 아직 잔다. 혼자 승용차에 올라 200여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만든 문을 나왔다. 느티나무보다 더 높은 아파트 숲을 지났다. 도착한 곳은 경남 진주시 초장동 청동기 유적지, 이곳은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 시대 무덤 중에서는 가장 최대 규모라고 한다.

 

 

경남 진주시 초장동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만든 문을 지나면 2천 년이 넘는 청동기 유적지가 나온다.

 

노란 달맞이꽃이 환하게 반긴다. 달맞이 옆에는 꽃땡땡이가 하얗게 피었다.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한적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진주시내와 집현면 방향으로 가려는 차들이 생생 지나는 차도와 달리 인도와 공원은 조용하다. 불과 몇백m 앞에는 아파트들이 펼쳐져 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날 수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경남 진주시 초장동 장재 삼거리 못 미쳐 있는 <진주 초장동 유적>, 이곳은 확인된 청동기 시대 무덤 중에서 가장 최대 규모의 무덤이 있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3이상의 건설공사 시행자는 공사 계획단계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초장동 현대엠코타운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발굴조사를 2011년부터 1년간 벌여 청동기 시대의 집터와 무덤을 발굴했다. 바로 <진주 초장동 유적>이다. 당시 이곳은 남강 하류에 토사가 퇴적되어 쌓인 곳에 있다. 더구나 ‘1호 무덤은 원형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 시대 무덤 중에서는 가장 최대 규모라고 한다. 발굴한 위치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장재 삼거리 못 미쳐 현재의 이곳으로 이전 복원했다. 묘역시설 무덤의 매장주체부는 현재 지하에 원형의 모습으로 복원해 배치했단다.

 

 

진주 초장동 유적 10호 무덤. 무덤을 소개한 안내판이 없다면 그저 평범한 돌무더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곳처럼 평거동 휴먼시아 아파트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물은 박물관에 옮겼고 집터 등의 유적은 근처 녹지공간에 옮겨 사진과 모형으로 복원 전시했다. 건설 공사도 하고 유적도 보존한 셈이다.

 

무덤을 소개한 안내판이 없다면 그저 평범한 돌무더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형의 무덤인 10호 무덤은 돌널(石棺)의 규모는 길이 60cm, 너비 20cm이다. 저렇게 작은 곳에 묻힌 이는 누굴까 문득 궁금해진다. 길로 짧은 판석 1개씩을 평면 형태로 세워 자형으로 만들어 덮은 무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아 당시를 살았던 이의 흔적은 알 수 없다. 무덤들이 푸른 잔디밭 사이사이에 놓여 있다. 청동기 무덤 속으로 깊이 들자 갑작스레 적막하다. 모든 소리가 잠시 눈을 감는다. 바람 한점 얼굴을 스치자 마치 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여행하는 기분이다.

 

 

진주 초장동 유적 뒤로 아파트들이 쭈빗주빗 서 있다.

 

9기 무덤 중에서 3호와 4호 무덤은 서로 붙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무덤 외곽에 내부에 돌을 채워 넣었다. 이곳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돌화살촉이 발견된 3호 무덤과 달리 4호 무덤은 유물이 없었다. 사냥하던 남편과 아내의 무덤일까. 죽어서도 이렇게 나란히 붙어 함께한 금실 좋은 부부였을까.

 

3호와 4호 무덤을 지나자 초장동 유적지 공원 한가운데 야트막한 돌 언덕처럼 있는 1, 2호 무덤이 나온다. 1호 무덤은 흙을 쌓아 봉분 형태로 만들고 표면에 돌을 깔아 덮었다. 중앙 부분은 후대에 논으로 이용하면서 평편하게 흙이 잘려나가고 돌은 빠져나갔다. 봉분의 지름은 약 26.8m로 묘역의 가장자리 구획석에서 현재 남아있는 성토 중앙부까지의 높이 차이는 약 1.4m이다. 발굴될 당시 평편한 흙 아래에 매장주체부를 안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주 초장동 유적 배치도.

 

1호 무덤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게 2호 무덤이다. 1호 무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봉분 형태의 흙도 없이 그저 사각형의 돌널에 추정 지름 4m의 작은 무덤이다. 죽어서도 주인을 따르는 아랫사람의 무덤일까.

 

낮은 돌 언덕 뒤로 20층 높이의 아파트가 쭈빗쭈빗 서 있다. 돌무더기 사이로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꼬리 흔든다. 아직 풀에 이슬이 맺혔다. 얼마 있지 않으면 사라질 이슬들이 구슬처럼 빛난다.

 

9호 무덤에서는 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 끈에 꿰어서 장식으로 쓰던 구슬인 곡옥이 출토되었다. 죽은 이를 기리며 그와 함께하라고 넣은 모양이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65cm, 너비 약 27cm로 여기 무덤 중에서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진주 초장동 유적 뒤로는 선학산과 연결된  초북산이다.

 

유적 뒤로 밝은 빛의 배롱나무꽃이 빛난다. 배롱나무 옆으로 난 작은 시멘트 길을 따라 걸으면 초북산이 나오고 선학산과 맞대어 있다. 오늘은 감히 그 길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 건너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1호 무덤 옆으로 귀에 스마트폰을 낀 중년의 남자가 무심하게 지나간다.

 

 

진주 초장동 유적 1호 무덤 옆으로 귀에 스마트폰을 낀 중년의 남자가 무심하게 지나간다.

 

노란 해바라기가 햇살 받아 빛나고 그 아래에는 분홍빛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거린다. 깨가 쏟아질 깨밭에는 아침부터 머리에 수건을 둘러싼 젊은 할머니가 김을 맨다. 김매는 할머니 옆으로는 벌레가 좌우로 몸을 꿈틀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벌레 위로 닭의장풀이 수줍게 하늘을 품은 꽃잎을 드러낸다.

 

 

진주 초장동 유적 길 건너에 노란 해바라기가 햇살 받아 빛나고 그 아래에는 분홍빛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거린다.

 

뜨거운 여름 해가 잠시 쉬어가는 곳, 모르고 지나칠 때는 보지 못한 청동기인들의 삶. 찬찬히 걸으며 보았다. 2000 년이 녹아 있는 돌무더기를 따라 걸었다. 걷는 걸음마다 2000 년 전의 청동기인들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느낌이다. 바람이 멈추고 빛이 멈추는 2000 년전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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