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밤샘 돌봄 노동자가 누리는 만 원의 행복과 성공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4. 11. 2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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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출근하세요?”

충전소 아저씨가 영수증과 함께 건네는 말을 듣는 시각은 밤 9. 1125일부터 밤 근무가 사흘이었다. 밤 근무 시작 시각은 밤 930분이다. 40여 분 출근 거리에 있는 보통 830분에 집을 나서면 되지만 밤 근무의 마지막 날이었던 27일은 혼자 타는 차 안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평소보다 10여 분 일찍 집을 나섰다. 4차선 넓은 일반 국도가 아닌 한적한 2차선 일반도로로 길을 잡고 라디오를 켰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 EBS의 책 낭독을 듣기 위해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책 이야기에 귀 쫑긋하며 지난밤 근무의 고단함을 잊었다.

 

 

생활복지시설 내 회복실 밤 풍경.(F 5,6. 30/ ISO 1600)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길을 걸어 요양원 건물에 들어섰다. 915. 장애인 생활복지시설인 직장의 밤 근무가 시작이다. 먼저 아침 730분부터 밤 930분까지 근무한 낮 근무 당직자와 인수인계를 했다. 다행히 낮과 저녁 무렵에 특이사항은 없다. 내가 일하는 생활복지시설은 평균연령 78세의 장애인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나마 일일 연속극도 끝났는지 텔레비전도 모두 꺼져 취침등()이 어둠 속 등대처럼 존재를 드러냈다. 발소리를 죽여 남자 회복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르신이 침대에 앉아 지갑 속 내용물을 끄집어 살피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지갑 속을 뒤적인 어르신. 라운딩을 마치자 여자 동료가 보온병에서 감잎차를 따라주었다. 온기와 함께 감잎의 수수한 맛이 좋다. 목을 축이고 첫 번째 기저귀 교체 시간. 회복실 끝에서부터 가운데 방까지 아홉 명의 어르신 기저귀를 갈았다. 잠결에서도 기저귀 교체를 위해 엉덩이를 들어주고 고맙다는 말씀을 잊지 않는 어르신도 있고 언제나 인기척에 놀라 상체를 들썩이며 앞으로 몸을 일으키는 어르신도 있다.

 

 

 

노란 잎들도 주황색으로 남고 마지막 남은 잎들마저 간밤에 내린 비로 덜어낸 앙상한 은행나무는 안개와 어둠에 의지해 자신을 숨겼다.(ISO 3200)

 

가뜩이나 기저귀 교체로 땀이 나기 쉬운 데 회복실 내 온도는 25~26도를 유지하고 있다. 런닝셔츠는 이미 젖었다. 화장실 세면대 수돗물에 흐르는 땀을 씻었다. 고개 들어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았다. 입을 옆으로 벌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주었다. 덩달아 거울 속 나도 웃는다. 밖에는 짙은 안개가 어둠 속 세상을 더욱 숨겨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는데 옆에 있는 곰돌이 인형이 나를 본다. 녀석도 나와 함께 이 밤을 지새울 모양이다. 노란 잎들도 주황색으로 남고 마지막 남은 잎들마저 간밤에 내린 비로 덜어낸 앙상한 은행나무는 안개와 어둠에 의지해 자신을 숨겼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굽은 길도 가로등 빛만 빛나고 새벽 공기는 차가워 자정 넘겨 두 번째 기저귀 교체 시간의 열기를 식혀준다.

 

 

밤 근무 중 1시간여 가장 달달한 휴식시간을 편하게 보내는 보금자리.

 

자정 넘겨 먼저 1시간여 휴식에 다녀온 동료와 교대해 잠시 눈을 붙이러 휴게공간으로 들어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께서 생활했던 방이었다. 기력이 쇠잔해 여러 명이 함께하는 회복실로 옮겨가신 뒤로 밤 근무하는 직원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침대 옆 빨래 건조대의 빨래들은 요양원 전체 난방의 열기에 거진 말라가고 있었다.

띵띵띵~”

날카로운 기계음에 놀랐다. 머리맡에 둔 휴대전화 알람을 끄고 안경을 챙겨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회복실로 가기 전 복도에 붙은 커다란 거울에 뀅한 눈동자를 가지고 떡진 머리를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애써 웃어보려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위로를 말을 건네지만 ~” 기다란 한숨 절로 나왔다. 마지막 기저귀 교체시간. 역시나 오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수액제가 새어 의복과 시트가 엉망인 어르신과 갈아 입혀 놓은 옷을 홀라당 벗고 그마저도 오줌으로 적셔 놓은 어르신. 낮과 밤이 뒤바뀐 어르신은 왜 밥을 주지 않느냐며 큰 소리로 역정부터 낸다. 막무가내로 안약을 넣어달라는 어르신께 온몸에 리베라 크림을 바르는 것으로 겨우 달랬다. 퇴근 시각이 다가올수록 아침 준비해야 할 내 발걸음이 빨라진다. 세안용 수건으로 얼굴들을 닦아 드리고 밤새 더럽힌 세탁물을 세탁실에 내렸다.

 

 

 

안내대에 있는 잡지 <참 소중한 당신>. 새벽녘 분주한 시간에 나를 지치게 한 어르신께 나 역시 짜증으로, 퉁명스런 말 한마디로 당신께 함부로 했던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나에게 참 소중한 당신인데 나는 잊고 있었다.

 

아침 550. 요양원 내 성당으로 향하는 어르신들. 벌써 성당 안에서는 기도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아침 6시 정각. 대성당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중국사회에서는 전쟁터에서 북은 전진을 종은 퇴각을 알리는 신호 용구였다. 그럼 지금의 종소리는 어둠에게 물러날 때를 알리는 신호일까. 물론 불가에서는 지옥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힘을 상징한다. 종소리가 널리 퍼져 지옥의 중생들이 부처를 떠올리고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는 바람이 묻어 있다. 가톨릭 생활시설인 이곳의 종소리가 절의 종과는 다른 용도다. 성당의 종은 삼종 기도를 위해 울린다. 아침 6, 12, 저녁 6시에 성당 종소리를 울려 예수님의 생애를 간추린 기도를 바치기 위함이다. 대성당의 타종이 끝났다. 요양원 안내실로 들어가 오디오 장치의 스위치를 켜고 초인종을 3번 울렸다. 일어날 시각이라고, 아침이 밝았다고. 안내실을 나와 회복실로 이동하려는데 수수한 얼굴의 여인이 나를 보면 웃었다. 안내대에 있는 잡지 표지다. 잡지 이름이 <참 소중한 당신>이다. 문득 잊고 있었다. 새벽녘 분주한 시간에 나를 지치게 한 어르신께 나 역시 짜증으로, 퉁명스런 말 한마디로 당신께 함부로 했던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나에게 참 소중한 당신인데 나는 잊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앉혀 TV 뉴스를 시청할 수 있도록 도왔다.

 

회복실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앉혀 TV 뉴스를 시청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기나긴 밤의 텁텁한 입안을 잊게 박하사탕 하나씩 넣어드렸다. 달달(달곰)한 사탕과 시원한 박하향이 입안에서 마음으로 넘어가 지난밤, 나 때문에 힘들고 짜증 난 기억을 잊게 해달라고 바라면서. 옆 회복실에서는 동갑내기 어르신 두 분이 아침 TV 뉴스를 들으면서 간밤의 안부를 여쭙는다. 침대 바로 옆에 생활하고 낮이고 밤이고 더불어 살아오셨으면서도 간밤의 안녕을 묻으며 하대하며 농 건네는 모습이 정겹다. 창 너머 둔철산은 안개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짙고 옅은 묵으로 그린 수묵화 풍경이다.

 

 

창 너머 둔철산은 안개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짙고 옅은 묵으로 그린 수묵화 풍경이다.

 

아침 7. 동료들이 출근하면서 긴 밤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전날 밤 930분부터 아침 730분까지 10시간을 함께한 요양원 문을 나섰다. 어둠과 안개에 묻혀 있는 노인전문주택과 대성당 가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화단에 아직 보랏빛으로 겨울 문턱에서 빛나는 꽃이 배웅한다. 세상을 품에 앉을 듯 두 팔을 크게 벌린 예수님상()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매달 사흘 정도의 밤 근무는 내게도 빨강 신호등이다. 빨리 지나가야 할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잠시 거침없이 내달린 한 달의 근무를 뒤돌아보게 하는 신호였다.

 

차에 올라 오디오를 켰다. CD에서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이 흘러나왔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운전을 했다. 집이 가까울수록 사거리가 많고 신호등이 많다. 사거리 마다 빨강 신호등이 나를 멈춰 세웠다. 바빠 죽겠는데 왜 이렇게 신호가 길어하고 짜증 났다. 저만치 90도로 허리를 굽혀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 한 분이 건널목 빨간 불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 한 번 바라보신다. 빨강 신호등이 끝나자마자 잰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너거나 사거리를 빠져 나갈 차들의 행렬 속에서 빨강 신호등은 잠시 숨 고르기를 당부하고 있었다. 매달 사흘 정도의 밤 근무는 내게도 빨강 신호등이다. 빨리 지나가야 할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잠시 거침없이 내달린 한 달의 근무를 뒤돌아보게 하는 신호였다.

 

 

 

누구도 단순히 특정한 능력이 모자라서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 막걸리에 고갈비 한 점 먹으면서 2시간 동안 성공이라는 족자가 던진 물음의 대답이었다.

 

아침 820. 직장으로, 학교로 향한 아내와 아이들의 흔적이 집 안에 널브러져 있다. 싱크대에는 조금 전까지 맛있게 먹었을 아침의 자취가 남았고 큰 방과 작은 방에는 갈아입은 옷들이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은 채 방바닥에 널려 있다. 늦은 밤 아내가 사온 족발과 순대를 나 출근하고 없을 때 맛있게 먹은 뒤의 포장지가 뒹굴었다. 현관문을 제외하고 온 문을 열었다. 지난밤의 자취는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에 샴푸거품과 함께 쪼르록 소리만 남기고 흘러나갔다. 현관문을 열었다. 500m 거리에 있는 작은 시장에 들러 손두부 1,000, 고등어 큰 놈 6,000, 막걸리 22,600. 1만 원으로 간단하게 장을 보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내장을 가르고 굽기 좋게 손질한 토실한 고등어를 눕혔다. 지지찍~” 맛있는 소리와 더불어 고등어는 DHA가 풍부하다는 푸른 껍질은 노랗게 변하고 일부는 검은빛으로 익어갔다. 막걸리를 땄다. 와인 잔에 그득 부었다. 먼저 며칠 전 처가식구들과 담근 생김치를 두부에 얹혀 먹었다. 달고 맵싸르하니 씹히는 김치맛에 묵묵한 두부가 맛있게 넘어갔다. 와인잔 하얀 막걸리도 더불어 털어 넣자 하아~”절로 입가에서 탄성이 나았다. 고갈비 한점 뜯었다.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태평양 바다 향내가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두 번째로 탄성을 자아낸다. 식탁 한쪽에 큰 아이게 학교에서 사온 성공이라고 쓰인 족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성공이라는 족자 안에는 작은 글씨로 성공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패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다고 적혀 있다. 문득 성공의 기준이 뭘까 생각하며 막걸리 한 잔, 고갈비 한 점, 두부 한 점 먹었다.

 

며칠 전 끝난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고3 수험생에게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일까. 실제는 고3 수험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공 기준은 학력, 학벌이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경쟁을 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정의로운 사회가 우리 사회일까. 이른바 공부 잘해서 의사와 변호가 된 사람이 부와 권력, 명예를 독차지 하는 게 정당하고 정의로운 사회일까. 밤 근무를 비롯해 몸으로 때우는 단순 노동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학력과 학벌 경쟁에서 뒤진 사람들의 몫이라 적은 급여와 많은 노동시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순히 공부 잘하는 능력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더 잘하고 아주 많은 부와 명예, 권력을 가져가는 망할 사회라고 푸념하는 것은 술 마신 객기일까. 누구도 단순히 특정한 능력이 모자라서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 막걸리에 고갈비 한 점 먹으면서 2시간 동안 성공이라는 족자가 던진 물음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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