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 금곡 삼베마을의 남악서원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게 아니라면 아침은 더없이 상쾌하고 즐겁다. 아내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없는 평일 휴무일. 나도 집을 나섰다. 진주 남강교를 건너 혁신도시를 건설 현장을 지나 문산읍 사거리에서 고성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금곡면. 금곡면 입구에 들어서고도 5분여 차를 더 몰았다.
경남 진주시 금곡면 신담 마을 느티나무
아름드리나무가 마을 어귀에 저만치 서 있다. 신담 마을의 정자나무인 모양이다. 마치 나를 기다린 사람인 양 그 옆으로 차를 세웠다.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다. 높이(樹高) 15m. 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고 표지석이 말해준다. 느티나무는 갈잎큰키나무로, 대개 26m 정도까지 자란다. 잎은 긴 타원형이고 끝 모양도 뾰족하고 가장자리도 톱니바퀴처럼 되어 있다. 꽃은 이른 봄에 새잎과 함께 암수 한 그루에 피며, 열매가 작고 둥글납작하다. 소나무의 기상을 최고로 여기지만 목재로서는 느티나무를 최고로 친다. 목재로서의 효용가치를 떠나 우리의 마음속 고향 하면 떠오르는 풍경처럼 평안한 게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바삐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한다. 준비한 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경남 진주시 금곡면 동례리 느티나무
불과 2~3분 뒤에 다시 차를 세웠다. 동례리 느티나무가 또한 발걸음을 잡았다. 이번에는 수령 500년이다. 높이 20m, 둘레 6.1m, 뿌리둘레 7.84m의 휜칠하게 뻗어 올라 넉넉한 가지를 드리운 나무는 여유롭다. 마을 어귀에 심은 느티나무 중에서 정자나무로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와 수호신목(守護神木)으로 대접받지 않은 나무가 없다. 이 나무도 마을 주민들이 섬겨 왔다. 특히 마을 주민들은 봄에 이 나무의 잎이 피는 모습을 보고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쳐왔다고 한다. 봄철에 나뭇잎이 일시에 피는 해에는 풍년(豊年)이 들고 가지별로 시름시름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단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이 나무 밑에서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내왔다가 ‘새마을운동’ 때 미신(迷信)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폐지되었다가 요즘에는 마을의 경사 있을 때 만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나뭇잎이 일시에 피지 않았다. 다행히 가지마다 시름시름 피지 않았으니 풍년은 기대하기 어려워도 흉년은 면한 셈이다.
동례리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차를 몰았다. 마침 장날인지 작은 면 소재지 주위에 행상 차들이 서 있고 여기저기 뒷짐 지고 구경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보인다. 금곡면은 1일과 6일 장이 선다.
남악서원(경남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과 죽곡 삼베마을.
작은 면 소재지를 가로질러 5분여. 드디어 내가 오늘 가고자 했던 곳이 나왔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이곳 금산(金山) 아래에서 진(陳)을 치고 휴식하던 중에 꿈결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후대 사람들이 1919년 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원을 세우고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의 이름을 본 떠 남악서원(南岳書院)이라 하였다. 은행나무가 당당하게 정면에 서 있는 서원 옆으로 개천이 흐른다. 개천 옆에는 벚꽃 지고 난 뒤 활짝 피는 겹벚꽃나무가 활짝 피어 꽃잎을 물에 간간이 떨구고 있다.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五樑構造) 팔작지붕을 가진 서원이 들어온다.
매년 음력 3월 18일이면 제향(齊享)을 올리는 남악서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제향을 논의하고 있다.
서원 왼편 툇마루에서 마침 제향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모여 제사 준비 등을 논의 중이었다. 서원은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해 대청 기능을 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8일이면 지역 유림이 제향(齊享)을 올리는데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을 비롯한 설총, 최치원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서원 좌우에는 정면 4칸(間), 측면 2칸의 재(齋)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자형(字形)의 좌우 대칭을 나타내고 있다. 서원 바로 뒤 높은 곳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의 사당이 있다. 보통 서원과 향교에는 배롱나무를 심어져 있는데 오히려 이곳에는 배롱나무가 서원 뒤에서 호위하듯 서 있다. 배롱나무를 대신해 박태기나무가 짙은 분홍빛을 드러내고 있다.
문이 굳게 닫힌 경남 진주 금곡면 죽곡리 ‘삼베 전시관’
사당에서 바라보면 호롱 박처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홀쭉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400년 삼베 짜는 아낙네의 손길이 묻어나는 죽곡 삼베마을이다. 서원 바로 앞에 삼베전시관이다.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모든 일을 통틀어 이르는 ‘길쌈’은 불과 몇십년 전까지 부녀자들의 주요 집안일이었다. 서양 직물이 들어오면서 고된 길쌈은 사라졌고 여기 이 마을에서 최근까지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마저도 이제는 맥이 끊긴 듯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1층에는 죽곡리 특산품이 있고 2층에는 삼베전시관이 들어 있다는 건물이 휑하다. 삼베전시관 옆에는 단체 숙박시설이 있고 마을 안쪽에는 삼베 공동작업장과 염색 체험실이 있다. 삼 찌는 ‘삼굿’도 있다. ‘삼굿’도 누가 버렸는지 모를 쓰레기가 뒹군다.
경남 진주 금곡면 삼베마을 느티나무
아쉬운 마음에 길을 돌아서는데 저만치 500년 느티나무가 보인다. 유모차를 지팡이 대신으로 사용하는 허리가 직각으로 굽은 할머니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삼베마을’이라는 명성을 묻자마자 “그 힘들 일 누가 할라고···” 손을 휘 내젓는다. 삼베마을을 찾아 길을 나선 내가 못내 아쉬운지 저너머 ‘돌곶이’ 마을을 다녀왔느냐고 물으신다. 두문리 석계 마을에 진주와 사천을 경계하는 돌이 있는데 돌로 경계를 표시했다고 ‘돌곶이’ 또는 ‘돌꽂이’라 불리는 이 돌장승에 천태산 마고 할미의 전설이 있단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더 오래전에 힘이 장사인 마고 할미가 살고 있었단다. 자꾸 물레가 흔들려 물레 눌러 놓을 돌을 찾으러 멀리 동해에서 돌 3개를 구했다. 하나는 머리에 이고, 길쭉한 돌은 지팡이로 삼고, 마지막 하나는 치마폭에 싸서 가져왔다. 오다가 머리인 돌과 지팡이로 짚고 오던 돌이 너무 작아 도중에 두 개를 버리고 치마에 싸 오던 큰 돌만 두문리까지 가지고 왔단다. 마고 할미가 버린 돌들은 사천읍 구암 마을 앞에 서 있고, 가지고 온 돌이 돌곶이 고개에 꽂힌 바위란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마고 할미 물렛돌’이라고 부른다.(자료 도움 진주문화연구소 발행 <진주 옛이야기>)
아쉽게도 ‘마고할미 물렛돌’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급하게 찾는 휴대전화에 발걸음을 여기서 돌렸기 때문이다. 지나온 길에서 만난 넉넉한 느티나무들의 풍광과 여기 전설이 돌아서는 나를 위로해 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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