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 발자취

고양이 아닌 자신에게 방울 단 칼 찬 선비 남명 조식 선생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3. 9. 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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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생활관에서 수료 후 받은 기념물은 잊지 못한다. 아니 그 기념물에 새겨진 네 글자는 잊지 못한다. <學行一如(학행일여)>. 배움과 실천이 같다는 말로 배운 대로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아니오. 나름 헛똑똑이로 살아왔을 뿐 아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일치하는데 소홀했다.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어려운 아는 것과 행동을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방울을 매단 선비가 있다. 방울만 매단 게 아니라 칼도 찼다. 바로 남명 조식이 바로 그다.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빨리 올라가는 길이 있는 중산리로 가는 길목에 남명 조식 선생의 흔적이 있다. 경남 산청 사람들은 지리산을 덕산이라 불렀다. 지금도 행정구역상 시천면·삼장면이지만, 덕산이라 불리는 곳에 가면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산천재와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기념관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산천재(山天齋)부터 먼저 둘러보았다. 산천재는 1561(명종 16) 선생이 제자들에게 학문과 기재를 가르친 곳이다. 산천이라는 말에는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단다. 들어서는 입구에는 선생의 시 한 편이 새겨져 있다.

 

 

산천재와 남명매(왼쪽)

 

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어떻게 해야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산천재에 들어서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지리산 천왕봉이다. 지리산을 좋아하고 사랑해 열두 번이나 찾았던 지리산을 닮은 선생이 왜 이곳에서 터를 잡고 생을 마쳤는지 알 수 있다.

 

<두류산가>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지리산을 닮은 선생의 성품이 산천재를 품고 있다. 천왕봉에 잠시 눈을 떼면 마당 가운데에 있는 450여 년의 오랜 나무 한 그루가 또한 눈에 들어온다. 선생이 61세 되는 해 손수 심은 매화, 남명매(南冥梅). 남사마을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斷俗寺址)의 정당매(政堂梅)와 함께 '산청 3()'라 불린다.

 

설매(雪梅)

 

한 해 저물어 홀로 서 있기에 어려운데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이 내렸구나

선비 집 오래도록 매우 외롭고 가난했는데

네가 돌아와서 다시 조촐하게 되었구나

 

선생이 쓴 시에서도 이 매화나무를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마당 가운데에 심어진 남명매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왼쪽 창문에 ()’이라 써 붙이고 오른쪽 창문에는 ()’라고 써 붙인 산천재가 보인다. 선생이 평생에 걸쳐 한 말은 경의(敬義). 주역에 나오는 말로 경()은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고, ()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경의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금 차를 세웠던 기념관으로 도로를 다시 건넜다.

    

남명 조식 선생 동상과 상소문을 새긴 비석들

 

성성문이라 적힌 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선생 동상이 서 있다. 선생 옆으로는 상소문 두 개가 돌에 새겨져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에게는 임금(명종)의 어머니(문정왕후)를 과부라 칭했다고 알려진 <을묘 사직소>.

 

“(전략)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큰 고목이 백 년 동안 벌레에 먹혀서 그 진이 다 말라버렸으니 언제 폭풍우를 만나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중략) 낮은 벼슬아치는 아랫자리에서 술과 여색에 빠져 있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물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중략) 대비(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시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렵니까. (중략) 옛날에 우리나라에 신하처럼 복종하던 대마도 왜구를 대접하는 의례가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를 대접하는 의례보다 더 융숭합니다. 원수인 오랑캐를 사랑하는 은혜는 춘추시대 송나라보다 더합니다.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하고 성종대왕 때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던 일과 비교하여 오늘날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중략)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에게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고 바른말을 올릴 수 있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선생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신명사도(神明舍圖)

 

 

상소문을 새긴 비를 읽고 기념관 내부로 들어서면 <신명사도(神明舍圖)가 먼저 반긴다. 선생의 철학 <경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 부연 설명을 듣자니 오히려 더 머리가 아프다. 다만 당시 지식인이었던 경학 공부에 빠진 사대부와 임금을 위해 지금의 프레젠테이션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은 경이고 바깥으로 결단 있게 행동하는 것은 의'라는 뜻이 새겨진 <경의검>(왼쪽)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울릴 때마다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했던 성찰의 방울, <성성자>.

 

 

남명 기념관 안에는 선생께서 <경의>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일깨우기 위해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닌 성성자(惺惺子)방울과 경의검(敬義劍)이라 부르는 한 자루의 단검이 있다. 걸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울릴 때마다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했던 성찰의 방울이다. ‘내명자경(內明者敬)’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자가 새겨진 경의검은 안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은 경이고, 바깥으로는 결단 있게 행동하는 것이 의라는 뜻이다. 옮고 그름을 제대로 배워 실천을 하라는 선생의 뜻이 칼에 아로새겨져 있다.

 

기념관 뒤에는 선생의 묘소가 있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남명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후학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다.

 

나는 다시금 선생을 통해 20여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은 네 글자 <학행일여> 를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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