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길가의 은행나무 빗방울노크할때마다 노란 은행잎 하나씩 떨구네요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2. 11. 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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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일 주위는 어둑어둑하고 주적주적 가을비가 내립니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빗방울이 노크할 때마다 노란 은행잎 하나씩 떨구고 있네요. 나뭇잎과 함께 넉넉한 흙속으로 내려갈 비는 내일까지 온다고 합니다.

안 로렌조 어르신도 가을 빗방울에 나뭇잎 떨어지듯 주님 곁으로 훌쩍 떠나셨습니다.

 

 

로렌조 어르신.

어르신은 제게 늘 로맨스 신사였습니다.

 

책을 좋아하셨고 제가 읽어주는 책과 신문에 귀를 종긋세우고 들으셨습니다.

 

 

올초 음력 설날을 맞아 세배를 드리자 어르신은 손을 꼭 잡으시고는 "고맙다"하시며 제게 환한 웃음으로 답례하셔지요. 아직 제게는 어르신의 체온과 미소가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봄 햇살 고운 날에는 성심원 성모동산 앞 은행나무에서 매화꽃 향내 맡으며 봄을 즐기셨지요.

늦은 봄, 매화 꽃 향내 가슴 가득 안으셨던 어르신. 막걸리 한 잔 기분 좋게 들이키시고 "날씨 좋다~"하시던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유월 당신의 생신을 맞아 생신케익을 켜놓고 우리 다함께 축하의 노래를 부를 때가 엊그제인데...

 

 

어르신의 해맑은 웃음띤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어르신은 유신부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올8월 대한민국을 떠나 스페인 등으로 떠날 때 어르신은 유신부님께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라며 배웅을 하셨지요. 유신부님께서 돌아올 때까지 어르신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한여름 성심원 뜨락에서 열린 '성심인애대축제'에도 열심히 참석하셨지요. 전대미사도 더불어 봉헌하시고 복도에 전시된 성화를 관람하시든 어르신의 흔적이 떠오릅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저만치 물러가고 햇살이 곱게 내리 쬐는 가을 어느날. 주위 어르신들과 요양원 앞에서 햇살에 샤워하며 '바람불어오는 마을'의 바람을 쐬셨지요.

 

깊은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요양원 복도에 나와 창너머 구름에 달가는 풍경을 구경하신 어르신께 율무차를 건네면 수줍은 소녀처럼 살짝 고개 숙이며 고맙다고 하셨지요.

    

로렌조 어르신, 당신은 제가 읽어주는 신문의 애청자였고 과묵한 얼굴 너머로 환한 웃음으로 제 마음의 평안도 안겨주셨던 넉넉한 그루터기였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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