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 진주 시내에 나올 일이 있었습니다. 약속을 마치고 휴대전화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중안동 골목 끝, 붉은 벽돌집입니다. 지금은 신안동으로 이전한 배영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근대문화유산(국가등록문화유산)이라는 팻말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곳이 지금은, 진주학생문화나눔터 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 곁에 서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소리가 낮아집니다. 아늑한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1층, 문이 닫힌 카페 앞에서

현관을 지나면 1층 공간이 먼저 펼쳐집니다.

한쪽에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운영하는 카페와 기념품 판매 공간인 ‘다움인그림숲’이 있습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장애인 노동자가 직접 음료를 만들고 고객을 응대하며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곳입니다. 방문한 날은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이미 영업을 마친 뒤였습니다. 커피 한 잔을 곁들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대신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나무 테이블과 정돈된 동선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전시 관람 전 숨을 고르기 좋은 자리라는 판단이 섭니다.
2층, 나무 복도가 시간을 되감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닿습니다. 나무 복도가 길게 이어집니다. 발걸음 아래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살짝 올라옵니다. 바닥 결이 자연스레 속도를 늦춥니다. 국민학생 시절이 떠오릅니다. 교실 바닥에 초를 칠하고 걸레질하던 장면입니다. 걸레를 밀던 손의 감각이 아직 또렷합니다.

복도를 따라 옛 교실에는 모임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이어집니다. 전시실도 마련돼 있지만, 찾은 날은 비어 있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복도 중간에서 진주교육역사관으로 들어섭니다.

전시는 1895년 경상우도 소학교에서 출발합니다. 지금의 진주초등학교 전신입니다. 전시 자료에 따르면, 이 학교는 경남 지역 근대 교육의 출발 지점이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소학교로 소개됩니다.

관람 동선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오릅니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 시간을 되짚습니다. 연대표가 벽을 따라 이어집니다. 소학교 제도의 도입이 나타납니다. 보통학교 체제로의 전환이 뒤따릅니다.

식민지 시기의 교육 환경이 제시됩니다. 해방 이후 학교의 확장과 이전 흐름이 이어집니다. 교육 제도는 시대 변화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교실은 늘 사회의 질문을 먼저 품었습니다.

전시 흐름 속에서 진주의 오래된 학교들이 자연스럽게 언급됩니다. 전시와 공공 기록은 진주초등학교 계열, 봉래초등학교, 배영초등학교의 100년 이상 내력을 함께 다룹니다. 중등 교육에서는 1920년대에 설립된 진주고등학교와 진주여자고등학교의 역사가 정리돼 있습니다. 학교의 나이는 건물의 나이를 넘습니다. 도시는 배움의 기억으로 시간을 이어 갑니다.

역사관 끄트머리에서 옛 교실 재현 공간을 만납니다. 나무 걸상과 책상이 한 세트로 놓여 있습니다. 앙증맞습니다.

괜스레 의자에 몸을 걸쳐봅니다. 무릎이 책상에 닿습니다. 앉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몸이 자랐습니다. 칠판에는 옛 맞춤법으로 된 교훈이 적혀 있습니다. 한쪽에는 풍금이 놓여 있습니다. 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장면은 남았습니다.

역사관을 나서면 복도에서 전시패널을 만납니다.


관람의 마지막입니다. 사라진 학교들의 기록이 이어집니다. 이전한 학교 이름이 차례로 나열됩니다. 새롭게 변신한 학교 사례도 함께 제시됩니다. 학교는 이전하거나 통합했습니다. 장소는 바뀌어도 기억은 이어집니다.

관람을 마치고 건물을 나섭니다. 차를 타기 전 잠시 멈춥니다. 뒤돌아봅니다. 붉은 벽돌이 겨울 햇살을 받아 또렷합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시간을 되감고 나온 기분이 듭니다.

▣ 진주학생문화나눔터 다움
-장소: 경남 진주시 비봉로23번길 8 (진주교육지원청 내)
-이용시간: 월~토 10:00~18:00 / 일·공휴일 휴관 (점심 12:00~13:00)
-관람료 : 무료
-카페(다움인그림숲카페): 평일 09:00~18:00, 토 09:00~14:00 / 일·공휴일 휴무
-주차: 카드 전용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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