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울에도 푸른 자연. 이곳에선 계절도 발을 멈춘 듯합니다. 해가 바뀌어 맞은 쉬는 날, 연말연시의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푸른 기운을 얻고 싶어 진양호를 찾았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둘레길을 거닐다 보면 발걸음도 절로 느려집니다.

정문에 서자마자 충혼탑으로 향합니다.

출발부터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잠시 서서 고개를 낮춥니다. 오늘의 걸음이 가벼워지기 전에, 먼저 무게를 생각합니다. 정문 옆에는 시내버스 회차지가 있고,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망향비와 함께 작은 주차공간이 나옵니다.

인공호수가 만들어지며 정다운 까고실을 떠난 이들의 마음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진양호 수면 아래에는 옛 마을 귀곡동(貴谷洞)이 잠들어 있습니다.

주민들은 이곳을 까꼬실이라 불렀습니다. 남강댐 건설로 삶터를 떠난 이들의 기억이 지금도 물가에 남아 있습니다.
물과 숲이 먼저 말을 거는 구간

망향비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호수가 따라옵니다. 몇 걸음에 작은 연못이 푸르게 반깁니다. 아담해서 더 또렷합니다. 물가에는 오리떼가 모여 있습니다. 햇살에 샤워하듯 몸을 맡깁니다.

윤슬이 고운 수면 사이로 오리들이 자맥질을 합니다. 올라왔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소란은 없습니다. 겨울 오전의 리듬입니다. 물이 먼저 말을 겁니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약정으로 올라가는 숲길은 흙빛입니다. 다져진 길 위에 솔잎이 얇게 깔려 있습니다. 신발 밑창이 흙을 누르는 소리가 작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도 나무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겨울 숲은 역할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존재합니다.

약간 가파른 흙길이 불편하면 데크로드를 걸어도 좋고, 산길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곳곳에 쉬어가라 유혹하는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시간 사치를 누리듯 앉아 숨을 고릅니다.

우약정 앞 작은 주차장에는 벌써 차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호수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물빛갤러리에 이릅니다.

옛 진양호 선착장이었던 자리입니다. 오가던 사람들의 기억이 물가에 남아 있던 곳입니다.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형태를 바꾸었지만, 물과 사람의 관계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쉬엄쉬엄 걸어도 충분한 시간

365계단이기도 한 일명 소원계단으로 향하는 길에서 고개가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계단은 숫자를 세게 하지 않습니다. 호흡을 고르게 만듭니다. 난간 너머 숲이 내려다보이고, 그 아래로 물길이 이어집니다.

소원계단 중간을 힐링로드가 가로지릅니다. 데크로드는 무장애길이기도 합니다. 노부부가 정담을 나누며 걷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호반전망대에 서면 진양호의 결이 넓게 펼쳐집니다. 산 능선이 겹겹이 놓여 있습니다.

물은 그 사이를 묵묵히 채웁니다. 서 있어도 좋습니다. 앉아 있어도 좋습니다. 풍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쪽은 사람입니다.

이후 가족쉼터, 하모의 숲으로 향합니다. 아이들 소리가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웃음이 먼저 놓이는 자리입니다. 긴 산책의 끝에 어울리는 온도입니다.

마지막은 다시 충혼탑입니다.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잠시 머물며 이 땅을 지켜온 영혼들의 넋을 조용히 달래고 왔습니다. 소리보다 자세가 먼저 오는 공간입니다. 고개가 낮아집니다. 하루의 온도가 차분해집니다.

이날 걸음 수는 약 9,000보였습니다. 시간은 9시 30분부터 11시 10분까지, 약 1시간 40분입니다.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멈출 때는 멈췄습니다. 물 앞에서 오래 섰고, 숲길에서는 속도를 더 낮췄습니다.

진양호 둘레길은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갔는지 묻지 않습니다. 얼마나 잘 걸었는지 묻지 않습니다. 잠시 느려졌는지만 확인합니다. 다녀왔다고 말하기보다, 머물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과 숲 사이에서 호흡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길은 그런 시간을 허락합니다.
▣진양호
주소 : 경남 진주시 남강로1번길 96-6
주차 : 무료(상시 개방)
대중교통 : 시내버스 120·124·125번 ‘진양호공원’하차 후 도보 접근
산책 난이도 : 평지·데크·계단 혼합, 속도 조절 용이
체감 : 머무르기 좋은 쉼터 다수, 겨울에도 비교적 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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