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철도문화공원 산책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1. 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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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에서 출발해 라테 한 잔으로 도착한 오후

 

해가 바뀌었습니다. 새로 채우기보다, 먼저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오래된 시간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발길은 자연스럽게 진주철도문화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출발을 준비하는 역이 아니라, 멈춘 뒤의 시간을 품은 장소라서 좋았습니다. 오늘 오후는 어딘가로 더 가기보다, 잠시 서 있어도 괜찮은 시간이었으면 했습니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옛 진주역 대기실을 마주합니다. 기차가 오가던 시절의 동선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방향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산책은 이미 시작입니다.

 

대기실, 멈춘 시간과 마주하다

대기실 안은 전시 공간입니다. 옛 진주역의 시간이 차분히 놓여 있습니다. 표를 들고 서성였을 사람들의 호흡이 벽과 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이어지는 기획전 전시실에는 말 그림들이 걸려 있습니다.

말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힘찬 말이 먼저 다가옵니다. 달리는 몸짓이 멈춘 공간을 흔듭니다. 그림 속 말의 눈빛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잠시 멈춰 서게 됩니다. 괜찮으냐고 묻는 듯합니다. 아직 달릴 힘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 듯합니다.

전시실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오래 앉게 됩니다. 대답을 고르느라 시간이 잠시 멈춥니다.

전시실을 나서면 공원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기획전 깃발이 입구를 알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 사이로 햇살이 내려옵니다.

햇살이 스미는 사이로 비둘기들이 보입니다. 잔디 위에 흩어져 고개를 끄덕입니다. 예전 역 앞 풍경이 겹쳐집니다. 사람을 기다리던 자리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합니다.

 

철길 끝에서, 기억이 출발한다

비둘기 무리 곁을 지나자 옛 선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철길입니다. 목적지는 사라졌고, 흔적만 남았습니다.

선로 옆으로 갈대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옷을 입힌 개와 산책하는 노부부가 갈대의 배웅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걷는 속도가 이 공간의 기준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가 함께 흔들립니다.

떠남이 멈춘 자리에서 남는 법을 배웁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트리 장식이 달린 소나무가 나타납니다. 겨울 햇살 아래 붉은 리본이 조용히 흔들립니다. 계절이 시간을 건너온 흔적처럼 다가옵니다.

산책로 끝에는 실제 기차 객차가 서 있습니다. 객차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전시실이 이어집니다. 좌석 사이로 기록과 이미지가 놓여 있습니다. 창밖 풍경 대신 기억이 시선을 대신합니다.

달리던 기차가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출구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카페에 앉습니다. 카페라테 한 잔을 앞에 둡니다. 거품 위에 남은 하트 모양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피식 웃습니다. “라테는 말이야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농담처럼 흘러나온 말이 과거를 데려옵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 하동 송림으로 떠났던 소풍이 먼저 떠오릅니다. 기차 창밖으로 들판이 흘렀습니다. 대학생 시절 밤기차도 이어집니다. 친구와 술을 마시며 목포 종점까지 갔습니다. 해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든든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출발 시각표가 없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각자의 시간에 출발합니다. 기차는 멈춰 있습니다. 기억은 계속 달립니다. 오늘 오후는 분명, 어딘가를 다녀온 마음으로 남습니다.

진주철도문화공원

*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로 215 일원(옛 진주역)

* 성격: 옛 진주역 철도 용지를 활용한 도심 문화공원

* 관람: 야외 산책 자유 / 전시 공간은 운영 시간 내 관람(매주 월요일 휴무)

* 주차: 인근 공영주차장 권장(바로 옆 협소, 뒤편 상대적 여유)

* 추천 시간대: 햇살 좋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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