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 하대동 옛 35번 종점 산책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5. 12. 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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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종점, 남아 있는 가족의 시간

 

쉬는 날이었습니다. 집에만 있기엔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져, 산책 삼아 밖으로 나섰습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발걸음은 늘 그렇듯 익숙한 방향을 택합니다.

하대동 옛 35번 종점에서 탑마트 진주점까지 걷다 보면, 이 동네가 품고 있던 시간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오후 230, 이디야커피 하대점에 잠시 들러 커피를 마셨습니다. 넓은 매장은 한산했고, 노트북을 펼친 손님 한 분이 묵묵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창가에 앉아 수족관 물고기를 구경하듯 오가는 사람과 거리를 구경합니다. 이 동네에서 흘러 보낸 이십여 년의 시간이 창너머로 스치듯 지납니다.

 

아이 손을 잡고 걷던 하대동

 

하대동이라는 이름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도심 아래쪽에 자리한 큰 마을. 행정구역은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졌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던 길과 생활의 중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심에는 늘 장을 보러 가던 탑마트가 있었고, 이제는 기능을 잃었지만 여전히 사람들 입에 남아 있는 35번 종점이 있었습니다. 종점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35번 종점이라고 말합니다. 35번 종점이라는 말 속에는 위치보다 기억이 먼저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하대동은 우리 가족의 생활 지도였습니다. 그 시절 자주 가던 감자탕집에는 출입문 옆에 작은 오락기 한 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지 않아도 되는 무료 게임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감자탕을 더 열심히 먹으러 갔는지, 게임을 더 즐기러 갔는지 지금도 가끔은 헷갈립니다.

화면 속 게임은 메탈슬러그였습니다. 아이들이 번갈아 조작했고, 저도 슬쩍 손을 얹어 한 판을 함께했습니다. 총을 쏘는 손놀림보다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감자탕이 끓기를 기다리던 그 저녁은 음식보다 시간이 먼저 기억되는 날이었습니다.

하대동은 처음 걷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대동을 처음 걷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오래전부터 밥을 먹고, 아이와 걷고, 계절을 기록해 왔습니다.

 

두레숯불갈비에서의 저녁, 철가방 앞에서의 점심, 조마루감자탕에서의 한 끼는 맛집 방문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말이면 도래새미공원이나 남강 둔치를 걷고, 하대동 골목을 산책하며 아이들의 성장과 계절의 변화를 함께 적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길을 다시 걸으며 느낀 변화는 상권의 흥망이 아니었습니다. 가게가 바뀌고 간판이 달라진 것보다, 그 자리를 채우던 우리 가족의 시간이 다른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혼자 걷는 오후

 

이제 그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은 직장을 구해 이 동네를 떠났고, 또 한 명은 군복무로 하대동을 벗어나 있습니다. 같은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사실이, 이 동네에서는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큰길의 가게들은 바뀌었고, 골목은 다른 속도로 자랐습니다. 요란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35번 종점에서 탑마트 진주점 사이 골목을 지나 도래새미 공원에 이르면, 소리는 한층 낮아집니다. 미끄럼틀은 잠시 쉬고 있고, 벤치는 겨울의 결을 받아 고요합니다.

사라진 것은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사라진 것은, 아이 손을 잡고 그 앞에 서 있던 저의 한 시절이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오늘 하대동에서 남아 있는 것은 건물도, 상권도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을 기억하며 다시 이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저였습니다.

 

종점은 사라졌지만, 시간은 그렇게 남아 있었습니다.

📌 이전에 남긴 하대동 기록

두레숯불갈비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2629270200

철가방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2533604403

조마루감자탕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4015218761

하대동 산책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1869824654

도래새미공원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3754833189

하대동 남강둔치 산책

https://blog.naver.com/haechansol/22240059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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