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의 시간 위를 거닐다
― 송학동고분군에서 박물관까지, 그리고 하늘로 이어진 이야기
고성박물관 재개관(11월 25일)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오늘은 이미 설렘으로 예약된 하루였습니다. 관람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마음은 먼저 길을 나서자고 재촉했습니다.

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황금빛 잔디가 부드럽게 이어진 송학동고분군의 곡선이 가장 먼저 저를 반겼습니다.

고성의 역사를 품은 둥근 언덕과 능선이 들려주는 천 년의 숨결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고분 하나하나를 스치는 바람과 햇살, 그 사이를 걷는 제 그림자까지도 시간의 층위를 조용히 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야 왕들의 영혼이 쉬던 정원을 산책하듯 걸으며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 서 있는 청동환 조형물은 박물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문처럼 느껴졌습니다. 텅 빈 원형의 틈으로 현재의 풍경이 프레임처럼 들어오고, 그 빈 공간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조금 전 밟고 온 고분군의 시간이 박물관의 서사로 조용히 옮겨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입구에는 국화꽃으로 꾸며진 긴 꽃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진한 보라, 노랑, 흰색의 국화가 붉은 카펫을 따라 줄지어 서 있어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맞습니다”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재단장이 꽃길과 함께 현실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발굴 현장을 담은 옛 기록 사진들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흙을 치우고 작은 붓으로 유물을 드러내던 순간들이 셔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땅 아래 잠들어 있던 고성의 시간이 다시 세상 위로 떠오르는 감동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한참 관람을 이어가다 북카페 ‘고성담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마시자, 몸과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집중했던 전시의 여운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다시 상설 전시로 향할 힘을 건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2층 상설전시실로 향하는 계단 벽에는 ‘고성 연표’가 길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서 가야,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시간의 강처럼 벽면에 자리 잡고 있었고, 계단 한 칸을 오를 때마다 현재가 뒤로 물러나며 과거가 한 걸음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1 상설전시실에서는 역사 흐름을 따라 구석기 유물들이 먼저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어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옹기종기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작은 파편 속에서도 신석기인의 손길과 삶이 느껴졌습니다.


송학동고분군 1B호 석실을 재현한 공간에서는 마치 고대 무덤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거대한 돌들이 촘촘히 쌓인 벽, 붉은 조명이 드리운 오래된 기운은 고대의 죽음과 권력, 그리고 그 너머의 서사를 조용히 들려주었습니다.

그 근처에는 중국 동전, 철기 파편 등 당대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과 함께 소가야의 정교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바다를 오가던 해상 왕국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 끝에서는 180도 실감 영상관을 만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황금빛 봉황이 날아올라 박물관과 고분군의 시간을 밝히자, 마치 소가야의 영혼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봉황의 날갯짓 아래 서 있던 저는 잠시 시간의 벽을 넘어 다른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듯했습니다.

제2 상설전시실에서는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고성의 일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양반가의 고문서와 상속문기, 생활 도구와 도자기들은 당시 사람들의 숨결과 마음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었습니다. 역사는 결국 거대한 사건의 기록만이 아니라, 평범한 삶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루어진 이야기임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머리 위로 수십 마리의 독수리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습니다. 고분군을 스친 바람이 독수리의 날개짓으로 이어지고, 그 날개는 다시 보이지 않는 옛사람들의 영혼을 하늘로 잇는 듯했습니다. 하늘과 땅,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선이 눈앞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고성박물관 안내
· 위치: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남포로 152
· 관람 시간: 09:00~18:00 (입장 마감 17: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 관람료: 무료
· 문의: 055-670-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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