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인 줄 알았다… 진해박물관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11월의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게 내려앉던 날, 진주에서 창원 진해구 제황산으로 향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진해박물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황산과 진해박물관이 주는 잔잔한 울림을 선물 받으러 떠났습니다.

진해중앙시장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제황산을 향해 걸음을 뗐습니다. ‘가볍게 운동이나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걸었지만, 발걸음이 점점 더 부드러워지는 걸 보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산 입구의 골목을 지나자, 부엉이 계단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낙엽이 사각거리며 끼어들고,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늦가을의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예전에는 빠르게 지나쳤을 풍경들이 이제는 더 깊고 묵직하게 마음에 들어옵니다. 나이가 주는 감각의 변화가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만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더 너그러이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계단 끝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서자 흰 탑 모양의 진해박물관이 산 위에 차분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겉만 보면 전망대 같은 모습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뜻밖의 시간과 마주했습니다.

전시실 곳곳에 놓인 사진과 자료들은 진해가 걸어온 시간을 묵묵히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계획적으로 만든 군항 도시 진해의 도시 구조가 먼저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 곳곳에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곳에서 처음 깊이 실감했습니다.



흑백 사진 속 진해는 현재의 고요와는 다른 긴장감과 활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일본식 관사, 병영, 군항. 그렇게 오래된 필름 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차례로 펼쳐지며, 도시의 시간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시 「맹산초목지」의 탁본 앞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췄습니다. 굳센 획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글 한 줄이 주는 울림이 더 깊게 파고듭니다.

이어서 만난 진해탑의 변천 과정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일제의 승전탑으로 세워졌다가 해방 후 ‘진해탑’으로 다시 서게 된 이야기. 한 시대의 상징물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바꿔 가는 모습을 보며, 내 인생의 어떤 기억들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태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가벼운 숨과 함께 조용한 생각들을 하나씩 꺼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사방으로 펼쳐진 진해의 가을이 그대로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남쪽으로 잔잔한 진해만, 북쪽으로 이어진 장복산 줄기, 서쪽의 오래된 골목들, 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새로운 도시까지. 늦가을 햇살은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오래된 상처와 새로운 희망을 함께 비추고 있었습니다. 50대를 넘어 보게 되는 풍경은 예전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머뭅니다.

마지막은 1층 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탑산 카페’로 향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차분히 흘러내리듯 정리되었습니다. 예전엔 단순한 한 잔이었을 커피가, 지금은 하루를 품어주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황산과 진해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은 그저 산을 오르고 전시를 본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숲길의 바람, 김구 선생의 글이 전한 울림, 진해탑의 변천이 품은 의미, 그리고 마지막 커피 한 잔까지…. 어느 순간도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가을의 깊은 여운은 아마 오래도록 함께합니다.
📌 진해박물관
주소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로 101
관람료 : 무료
운영 : 화~일 10:00~17:00(월·공휴일 휴관)
주차: 박물관·인근 공영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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