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통영시를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삼도수군통제영으로만 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421년 전 통제영이 설치되고 약 300년간 이어진 통제영 역사를 톺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64회 통영한산대첩축제(8/8~8/14)를 맞아 통제영거리 역사홍보관 2층에서 <통제영, 300년의 역사> 학술 세미나가 12일 열렸습니다.


비가 내내 내렸습니다. 중앙전통시장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곁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 역사관에 들러 잠시 통제영의 역사를 예습하듯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세미나가 열리는 역사홍보관 2층으로 곧장 갈 수 없었습니다. 1층에는 제13회 통영 나전칠기 전시회가 우리의 눈길을 끌기 때문입니다.

전시회장 앞에는 <꼬마 스파이 배와 통영 배 할아버지>라는 눈에 들어오는 글귀와 함께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적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정찰선이었던 탐후선이 1/10로 줄여져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꼭 붙잡습니다.

모형 정찰선을 둘러보고 옻칠한 까만 바탕에 하늘의 별처럼 총총 박힌 조개껍질로 장식된 나전칠기를 둘러보았습니다.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날 김일룡 통영문화원장의 <이순신의 한산진 통제영 활터 고찰>을 시작으로 이상훈 해군리더십센터 교관이 <조선 후기 통제영의 연간 행사 사례 소고 –통영 월령(1870년)을 중심으로>와 김현구 부경역사연구소 연구원의 <통영의 역사 문화자원에 대한 제고와 활용 방안>에 관한 주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무려 200여 회나 등장하는 활쏘기와 관련 김일룡 원장은 견내량과 음달산, 해갑도, 한산진, 침도, 선인암 활터를 소개했습니다. 일기에는 단순히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지만 이를 전후 맥락을 살펴 일일이 현장을 답사하고 항공 지도와 옛 그림, 사진 등을 참조한 김 원장의 노고 덕분에 활터로 미루어 짐작 가는 곳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날 한산도 제승당 자리가 한산진 활터라는 말에 당황했습니다. 지금의 수루에서 맞은 편을 향해 활을 쏘았고 이곳에서 무과 시험이 치러졌다니 당시의 역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오는 기분입니다.

전쟁 중 갑오년(1594년)과 병신년(1596년) 한산진에서 과거(무과)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더욱이 말을 타고 시험을 보는 무과 시험장으로 두억리 깃대봉 얍삐기산 등성이를 김 원장은 추정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를 기억하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에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구나! 새삼 느낍니다.

통영 아전들이 다달이 해야 할 일을 적은 1879년 <통영방월령(統營方月令)>을 소개한 이 교관 덕분에 우리는 정월 초하루에 봄철 수군 조련 품계 하는 것으로 한 해 업무가 시작함을 알았습니다.

진상품으로는 탕건, 부채, 참빗 등의 죽제품과 장지, 백지, 후지 등의 지제품, 칼, 됫박, 적쇠, 침, 투구 등의 철과 유기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통영 12공방에서 만드는 각종 생산품이 정기적으로, 또는 왕실의 경축일에 맞춘 행사에 수시로 올려졌음을 알게 합니다.

4월 통제영은 부채를 무려 767개를 만들어 서울로 올려보냈고 대구는 임금의 수라용으로 대전 509마리, 대왕대비전과 왕대비전, 대비전에 각각 245마리, 중궁전과 세자궁에 230마리 등 총 1,704마리의 대구가 진상되었습니다.

마치 통제영의 일과를 한눈에 보는 기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김 연구원의 주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 연구원은 통제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우선해야 할 점이 통제영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복원과 재현 그리고 이를 위해 ‘통영학’의 정립을 강조했습니다.

각종 민속과 공연예술은 활발한 발자취를 보인 데 반해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한 자료나 연구 총서의 발간 같은 중장기적인 사업은 한 건도 시행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통영의 존재를 부각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두룡포기사비와 통제사비처럼 전국적으로 특정한 곳에서 특정 관인(官人)의 대형비가 발굴된 사례가 없다며 전문가 집단의 정밀한 판독과 비문의 해석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제작된 현존 불랑기류의 대포 32점이 통영인의 손길을 거친 게 2/3에 이르고 그중 대다수가 신기립(1625~1683)인데 그와 그의 후손들이 소장한 <제승당고풍록>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승당고풍록>은 역대 통제사와 통우후, 경상감사를 비롯한 경상도 일원의 인근 고을 수령(守令)과 진장(鎭將) 등이 제승당을 참배하고 방문한 연월일과 희사품 내용을 기록한 드문 기록물입니다.

18세기 말엽 제승당은 대청(大廳)이 8작 3칸이고, 방 2칸, 뒷면에 좌우 합방 2칸, 청 1칸이었고, 따로 수직 소청 1칸과 좌우방 2칸과 주방 1칸, 충무공 유허비 모신 비각 1칸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밥솥 4좌, 놋동이 3좌, 놋숟가락 17벌 등이 기재되어 보관 물품도 세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관련 관계기관들의 역할 분담과 조율하여 유기적 관계가 필요하고 중장기적 사업 추진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관련 전문 인력 내부 육성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3명의 주제 발표가 끝나고 임채훈 명궁과 김상현 국사편찬위원회 통영 지역 사료 조사위원, 송기중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통영하면 <삼도수군통제영>과 <이순신 장군>만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433년 전 한산대첩이 역사를 시작으로 최초의 통제영이 한산도에 설치되고 421년 두룡포(통영)에 통제영 설치로 이어져 온 통제영, 300년의 역사에도 이제는 더욱더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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