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 가볼만한 곳 - 진주 우곡정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3. 8. 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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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도시, 진주의 뿌리 - 우곡 정온

 

경남 진주를 일컫는 말들은 많습니다. 보석 진주(珍珠) 같은 진주라고도 합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진주는 교육과 문화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충절(忠節)의 도시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충절을 충성스러운 절개(節槪)라고 합니다. 절개는 신념 따위를 굽히지 않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충절을 실천해 진주를 빛낸 이가 한둘이 아니지만 우곡(隅谷) 정온(鄭溫, 1324~1402) 선생도 그중 한 분입니다. 고려말 대사헌을 지낸 우곡 정온 선생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하자 이에 반대하고 낙향해 초가에 정자를 짓고 우곡정(隅谷亭)이라고 했습니다.

 

충절을 실천한 고려 충신 우곡 선생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사봉면사무소 옆으로 우곡마을이 있습니다.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입니다. 우곡마을 앞산 언덕에 선생이 머물렀던 우곡정이 있습니다.

 

 

우곡정으로 들어서자 깊은 산속 숲속에라도 온양 넉넉한 숲의 기운이 반갑게 먼저 맞이합니다. 우곡정 옆에 재실이 있는데 문간채에 불이문(不二門)이 붙어 있습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어원을 따서 지었다고 전합니다. 재실 앞에는 큰 바위에 <우정감고>가 쓰여있습니다.

 

하나의 충신이 되기보다 일만 번 죽기가 쉽다고 하건만 강상을 물들던 그날 그 누구 함께 함께하는 이 있었던가 사리 판단이 밝아 국가의 위기가 닥칠 때 먼저 내다보았고 굳센 절개로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움 속에 있음을 능히 알았도다. 동산의 솔잎은 예리한 바늘 되어 눈동자를 찔렀고 연못 앞 배롱나무의 붉은 마음은 화살을 맞았도다. 여기 오르니 효행의 감동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그 공을 계승함에 내 성의 없음을 부끄러워하노라.”라는 후손이 세운 글이 먼저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재실 곁을 지나 본격적으로 우곡정으로 향하자 먼저 옆으로 기다랗게 누운 소나무가 보입니다. 굽혀도 부러지지 않는 의지가 보이는 듯합니다.

 

 

정자 앞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습니다. 선생이 낚시하던 못이라고 합니다. 연못 중앙에는 머리가 셋 달린 거북이가 대()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연잎 사이로 살포시 고개 내민 연꽃의 은은한 향내가 속세에 찌든 때를 날려버립니다.

 

 

아름드리나무와 함께하는 연못 그 자체가 주는 아늑함에 일상의 딱딱했던 긴장의 근육은 스르륵 풀어집니다.

 

 

연못을 지나 정자로 향하자, 솟을대문에 걸린 절의문(節義門)이라는 편액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편액은 1966년 윤보선 전 대통령의 휘호입니다. 선생의 절개와 의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문을 지나면 정자가 나옵니다. 이 건물은 조선 태조 2(1393) 작은 초정(草亭)으로 건립했지만, 세월의 무게에 무너지자, 기와로 지었습니다. 헌종 15(1849) 중수했으며 1976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자는 몸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채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입니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있는 누()마루 형식입니다.

 

 

정자 곳곳에는 상량문을 비롯해 각종 시와 중수기 등이 걸려 있습니다.

 

 

대청에 앉아 선생의 절개를 떠올립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우곡 선생을 불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위인 이제(李濟,~1398)를 보내 모셔가려고 하자 차마 왕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선생은 눈은 떠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靑盲과니)이라는 핑계를 대고 사양했습니다. 이에 이제가 시험 삼아 솔잎으로 우곡의 눈을 찔렀는데, 눈동자가 찔리며 꿈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혈만 낭자했다고 전합니다.

 

 

정자에 걸린 이제가 쓴 시<隅谷亭上先生詩(우곡정에서 선생께 올리는 시)>가 선생의 충절을 말없이 일러줍니다.

 

불사이군 청맹이라 의로움을 남겼으랴/ 취하고 버림 사이에서 충렬이 서리 같았네/ 솔잎이 어찌 굳은 절개를 꺽으랴?/ 아름다운 이름 천추에 해처럼 빛나리라 (진주의 누정문화)”

 

 

정자 주련(柱聯)에는 進鳳山前籉苙人(진봉산전대립인) / 人蔘花下舊王民(인삼화하구왕민) / 托盲去後今來見(탁맹거후금래견) / 有目無言不死身(유목무언불사신)” 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진봉산(개성 동남쪽 있는 산) 밭에 삿갓 쓴 사람은 / 인삼밭 아래 옛 왕의 백성이라 / 맹인을 청탁하고 떠난 후 이제 와서 보니 / 눈은 있어도 말이 없는, 죽지 못한 몸이라(진주의 누정문화)

 

 

포은 정몽주 못지않은 절개를 지킨 우곡 정온 선생은 우리가 사는 진주가 충절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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