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해병을 만나다-진두태 중위 흉상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해병 중 해병이라 불린 6․25전쟁 영웅이 있습니다. 진두태(陳斗台, 1927년 2월 12일 ~ 1951년 3월 8일) 해병대 중위가 그렇습니다. 함안 출신인 진두태 중위의 흉상은 함안 호국공원 내에 있습니다. 또한, 그가 졸업한 창녕 남지초등학교에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영웅을 만나러 남지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남지초등학교는 1921년 5월 1일 남지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100년이 넘는 학교입니다. ‘스스로 배우며 서로 돕는 어린이’라는 교훈을 가졌습니다.
정문보다는 서문 쪽 출입구를 향하면 보다 쉽게 진두태 중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서문으로 교정에 발을 들여놓으면 싱그러움이 밀려옵니다.
교정 한쪽 화단에서 조회대(朝會臺) 로 향하면 먼저 ‘충효’라는 큼직한 글귀와 함께 ‘나라 사랑’이라 새겨진 비석이 우리를 반깁니다.
나라 사랑에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비석을 지나면 드디어 진두태 중위의 흉상이 나옵니다.
흉상 주위로 영웅의 살아온 내력이 짧지만 강한 울림으로 적힌 안내판이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자료와 국방일보 기사에 따르면 1927년 경남 함안군에서 출생한 진두태 해병대 중위는 1949년 4월 당시 병조장(원사)으로 해병대 창설에 참여했습니다. 6․25전쟁 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진압 작전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습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에는 군사지역에 상륙한 적과 교전 중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군의 항공 포격으로 주위가 어수선해지자 그 틈을 타 적진에서 탈출했습니다. 3개월 만에 인천에 대기 중인 부대로 복귀했고 소위로 특진했습니다. 당시 군에서는 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 1계급 특진시켰던 것입니다.
이후 아군의 북진 작전에 참여하여 원산 상륙작전을 비롯한 고성, 함흥지구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운 그는 또 다른 전투를 위해 1951년 3월 정선군 여량리 에서 평창군 대관령을 향해 허리까지 차는 눈길을 뚫고 진격했습니다.
스물네 번째 생일이 지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진두태 중위는 1개 분대를 이끌고 적정을 살피며 전진하던 중 불행히도 매복하고 있던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적의 공격을 한 몸에 받으며 부하들을 먼저 안전하게 철수시킨 후 단독으로 적과 교전 수명을 사살하였으나 불행히도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1시간 뒤 후퇴한 부하들이 현장에 다시 왔을 때 진두태 중위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모습으로 부하들을 맞았다고 합니다. 적과 교전할 때 언제나 선두에서 비호같은 동작으로 적을 소탕하여 생전에 ‘해병 중의 해병’으로 칭송받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부하부터 먼저 살리고 자신은 조국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전장에서의 혁혁한 전공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그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 정부는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영원한 해병', '해병 중의 해병'이라 불렸던 해병대 창설 멤버였던 호국영웅 진두태 중위의 살신성인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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