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이 걸이 저 걸이 갓걸이~” 진주 정신의 현장, 진주농민항쟁기념탑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1. 6. 3.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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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걸이 저 걸이 갓걸이~” 진주 정신의 현장, 진주농민항쟁기념탑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농민 등은 양반이 걸어두는 걸이(掛) 밖에 안 된다는 뜻으로 지배게층의 종속된 소유물과 같다.), 진주(晋州) 망건(網巾) 또 망건(횡포가 극심한 지배계층인 양반들이 많다), 짝발이 휘양건(揮項巾)(양반과 토호세력들이 자신들의 부정한 축재를 위하여 담합과 폭정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도래매 줌치 장독간(도로매 줌치란 양반들이 차고 다니는 지갑 주머니를, 장독간은 토호들이 수탈한 곡식창고를 뜻한다), 머구밭에 덕서리(머위의 사투리인 머구는 응달지고 습한 곳에도 잘 자란다. 백성의 처지를 말한다. 덕서리는 백성들을 쥐어짜는 지방 아전을 이른다), 칠팔 월에 무서리(여름철에 내리는 서리처럼 삼정 폐해가 극심했다는 뜻), 동지 섣달 대서리.(동지 섣달에 내리는 큰 눈처럼 맑은 세상을 만들자는 농민들의 바람을 담았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또는 언가(諺歌)’라 불리는 이 노랫말은 1862(철종 13)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유계춘이 지어 백성들이 부른 우리나라 최초 혁명 가요입니다. 진주농민항쟁은 동학농민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항쟁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진주시민들의 가슴 속에 있는 진주 정신의 밑바탕이기도 합니다. 진주 정신을 찾아 진주 수곡면으로 향했습니다.

 

진양호를 에둘러 하동 옥종면 경계인 진주 수곡면 창촌리 창촌 삼거리 이르러 차를 세웠습니다. 덕천강가 이르면 하늘 향해 우뚝 솟은 탑이 우리를 반깁니다.

 

탑으로 향하는데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 게 있습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라 적힌 표지석입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백의종군 중이었던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킨 <진배미>가 있습니다. 진배미가 있는 마을에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는 교지를 받은 손경례집이 있습니다.

 

백의종군로 표지석 뒤로 성큼성큼 다가서자 진주농민항쟁 기념탑이 나옵니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철종 13) 214(양력 314) 조선시대 말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전정·군정·환곡))의 문란과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백낙신(白樂莘)과 진주목사 홍병원(洪秉元)을 비롯한 수령, 아전, 토호층의 수탈에 조선 민중이 들쳐 일어난 봉기입니다. 진주농민항쟁은 전국으로 확산해 당시의 사회 체제를 바꾸려는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항쟁기념탑 앞에는 정동주 시인의 하늘 농부라는 시가 적혀 있습니다.

農事(농사)/ 하늘 뜻 섬기는 일/ 농부(農夫)/ 사람을 섬기는/ 하늘외다/ 하늘보고/ 침 뺃지 말라/ 사람이 곧/ 하늘이니/ 人乃天(인내천)人乃天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나선형 계단 형상의 진주농민항쟁기념탑 주위에는 항쟁에 나서 죽은 이들의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강너머로 하동 고성산성(古城山城)이 있습니다. 1894(고종 31) 내정을 간섭하는 일본군에 맞서 진주지역 농민군 5,000여 명이 싸운 곳입니다. 횃불 같은 동학농민운동위령탑이 있습니다.

 

덕천강을 건너 고성산성으로 향했습니다.

항쟁기념탑에서 승용차로 20분 내외 거리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있습니다.

탑 아래에는 이곳은 민족의 얼이 깃든 곳이며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다~’로 시작하는 건립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을 지나 산속으로 약 100m가량 들어가면 산성 흔적이 나옵니다. 산성은 고성산 8~9부 능선 곳곳에 자연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두 다리로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이 진주 정신이 깃든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활활 타오른 그날의 거룩한 분노를 가슴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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