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 발자취

다시 남명이다6- 지리산 별이 된 조선 선비, 남명 조식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0. 9. 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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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별이 된 조선 선비

 

지리산으로 가는 길, 남명 만나러 가는 길

 

이름만 떠올려도 설레는 지리산. 마침내 지리산에서 별이 된 조선 선비가 있다. 바로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이다. 지리산을 수십번을 다녀온 남명은 나이 61세가 된 1561(명종 6),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진주 덕천동 (산청군 덕산면)으로 이사를 했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15722872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감했다. 남명을 만나러 가는 길은 지리산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남명이 지리산 덕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천연 바위를 입덕문이라 이름 지었다. 새로 길이 만들어지면서 암벽에 새겼던 각자를 떼어서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지리산 자락은 뙤약볕이 무자비하게 내리쬐던 여름날에도 차 안 에어컨을 끄게 한다. 차창을 내리자 싱그러운 기운이 깊고 느리게 밀려온다. 계곡을 따라가다 길가 주차장에서 잠시 시동을 껐다. 지리산 중산리를 오가는 길가 한쪽에 보일 듯 말 듯 작인 빗돌이 서 있다. 빗돌에는 입덕문(入德門)이라 새겨져 있는데 남명이 덕산으로 오면서 천연 바위를 입덕문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새로 길이 만들어지면서 암벽에 새겼던 각자를 떼어서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입덕문 아래로 입덕정이 있다. 정자에서 계곡을 따라 난 데크 산책로를 거닐면 탁영대가 나온다. 탁영대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맑은 물과 기운은 온몸을 샤워한 듯 개운하게 만든다.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남명 조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진은 입덕문근처에서 바라본 지리산 계곡.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큰 종

 

입덕문을 지나 승용차로 5분여 거리에 이르면 시천면 소재지가 나온다. 본격적으로 지리산 넉넉한 품에 안기는 기분이다. 면 소재지 입구에 남명기념관이 나오고 길 건너에 산천재가 있다. 산천재 입구에는 선조 임금이 남명 영전에 내린 제문을 새긴 비가 있다. 제문을 읽은 뒤 산천재로 향하다 눈길과 발길을 끄는 시비가 있다. 남명이 산천재를 지은 뒤 정자에 써 붙인 천석종(千石鐘)’이라는 시비다.

남명은 나이 61세가 된 1561년(명종 6년),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진주 덕천동 (산청군 덕산면)으로 이사를 했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1572년 2월 8일 72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감했다. 산천재와 남명매(南冥梅).

‘천 섬 담을 수 있는 큰 종을 보소서! / 크게 치지, 아니하면 소리 없다오 / 어떻게 하면 두류산(지리산)처럼 /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엮은 <남명집>)’ 큰 종이 울리는 듯하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곁을 지나자 문이 나온다. 잘 빗질 된 마당이며 흙길이 단정하다. 문 옆으로 빗자루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문득 남명이 64살 때(명종 19, 1564) 퇴계에게 보낸 편지가 떠오른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질하는 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남명집> ‘퇴계에게 드림’(與退溪書) 중에서) ”

마당에는 산청 3() 중 하나인 남명매(南冥梅)가 자글자글 익어가는 여름에 맞서 반긴다. 매화 옆으로 정면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의 산천재가 있다. 산천재는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해 날로 덕을 새롭게 한다주역周易』 「산천대축山天大畜괘에서 따왔다. 주련에는 덕산복거(德山卜居덕산에 살 곳을 잡고서)’가 적혀 있다.

‘봄 산 어느 곳엔들 향그런 풀 없으리오마는(春山底處無芳草)/다만 천왕봉 하늘나라에 가까운 걸 사랑해서라네(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 건가?(白手歸來何物食) /은하수 같이 맑은 물 십리니 먹고도 남겠네.(銀河十里喫有餘)’

남명은 이곳에서 정탁(鄭琢김효원(金孝元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정인홍(鄭仁弘김면(金沔정구(鄭逑곽재우(郭再祐성여신(成汝信) 등의 제자를 가르쳤다.

 

평생 소 한 마리를 마음속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간 정탁 일화

 

산천재(山天齋)에 그려진 소 그림은 남명의 가르침대로 평생 소 한 마리를 마음속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간 제자 정탁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산천재 편액 바로 옆으로 중국 진시황 때 난리를 피해 깊은 상산 속에 들어간 은둔한 네 현인이 소나무 아래 바둑을 두는 모습을 그린 <상산사호도>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버드나무 밑에서 귀를 씻는 선비와 소를 물가에 끌고 가는 농부가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농부가 소를 모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화 속 소는 남명과 정탁에 얽힌 일화가 떠올리게 한다. 정탁이 진주향교 교수에서 물러나며 하직 인사를 드리자 남명은 집 뒤뜰 소 한 마리를 타고 가라고 했다. 뒤뜰에 없는 소를 타고 가리니 정탁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정탁이 말과 행동이 과격해 소처럼 느리게 오래 걸어야 멀리 갈 수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정탁은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어 한양으로 끌려와 고초를 겪을 때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정탁은 남명의 가르침대로 평생 소 한 마리를 마음속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남명 묘소 앞에는 ‘징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문정공 남명 조선생지묘(徵士贈大匡輔國崇錄大夫議政府領議政文貞公南冥曺之墓)’라고 적힌 빗돌이 있다. ‘처사조남명지묘’라 새겨져 있다 해도 전혀 남명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

길 건너 기념관으로 향하지 않고 뒷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350m 거리에 남명 묘소가 있다. 남명 묘소 아래에는 부인 송씨 묘소가 있다. 19살의 나이로 시집와 남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서 모신 분으로 16107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묘와 남명 묘 사이 한켠에 3개의 비가 외따로 떨어져 세워져 있다. 원래는 대곡 성운(大谷 成運)이 지은 비문을 세웠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글씨가 마모되자 현재의 비석으로 바꿔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때 총격전의 흔적이 비석에 박혀있다.

 

處士(처사)라 하는 것이 옳다.”

남명 묘소에서 바라본 풍경.

“處士(처사)라 하는 것이 옳다.” 병문안을 온 제자 동강 김우옹이 돌아가신다면 마땅히 무엇으로 칭해야 하는지 묻자 남명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명의 바람과 달리 묘비에는 징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문정공 남명 조선생지묘(徵士贈大匡輔國崇錄大夫議政府領議政文貞公南冥曺之墓)’라고 적혀 있다. ‘처사조남명지묘라 새겨져 있다 해도 전혀 남명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

남명을 기리는 덕천서원.

유택(幽宅)을 나와 덕천서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명을 기리기 위해 1576년 후학들이 창건한 덕천서원은 1609년 사액을 받았다.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을 돌아 숭덕사로 곧장 향했다. 남명에게 예를 올리고 나와 경의당 마루에 앉았다.

서원 뜨락의 아름드리 배롱나무 진분홍빛 꽃들이 농익어가는 여름에 더욱 빛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에도 배롱나무꽃은 초여름부터 가을전까지 핀다. 배롱나무 가지마다 잔꽃이 꽃차례로 층층이 피고 지기를 거듭해 마치 백일 동안 피는 듯 보인다. 배롱나무는 껍질이 매끈하다. 허물과 허울없이 살고자 하는 선비의 바람이 전해진다.

남명 조식이 늘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가슴에 품은 칼(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

서원을 나와 다시금 기념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문인 성성문(惺惺門)을 지나자 남명이 자신을 늘 일깨우기 위해 성성자(惺惺子)을 차고 다니던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름드리나무를 지나면 남명 동상을 중심으로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와 남명이 목숨을 내걸고 쓴 단성사직소와 무진봉사 내용을 새긴 빗돌이 나란히 한다.

기념관으로 들어서자 남명이 마음(神明)의 안과 밖을 잘 다스려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이치를 그림으로 표현한 <신명사도(神明舍圖)>가 먼저 반긴다. 남명의 일대기를 찬찬히 돌아봤다.

 

어스름 저녁이면 반짝이면 별 같은 남명의 삶

 

남명기념관에 전시 중인 남명 조식 영정.

지리산에서, 아니 남명을 뵙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대로지만 마음은 다르다. 어스림이 내려앉는 저녁이면 반짝이는 별처럼 남명에게 내 생의 나침판을 얻은 기분이다. 쉬이 지지 않는 남명의 향기가 짙게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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