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위기에 처한 조선, 바다와 육지의 충무공이 구하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0. 3.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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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조선, 바다와 육지의 충무공이 구하다

 



진주성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어수선합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해 나라 안팎이 심란하게 합니다. 조선의 위기를 구한 충무공이 떠오르게 합니다.

 


진주성 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진주성 공북문으로 성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7m 높이로 우뚝 선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1554~1592) 장군 동상이 반깁니다. 충무공 하면 이순신(李舜臣) 장군만 떠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충무공 시호를 받은 분들은 우리가 아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김시민 장군과 조영무(趙英茂), 이준(李浚), 남이(南怡), 이수일(李守一), 김응하(金應河), 정충신(鄭忠信), 구인후(具仁逅) 장군입니다

 


진주성 내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조선 시대 충무공 시호를 받은 이는 김시민 장군을 비롯해 이순신 등 모두 9명이다.

 

우리가 흔히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동북아국제전쟁을 일본은 분로쿠노에키(분로쿠의 전쟁), 중국은 항왜원조라 부릅니다. 한중일 삼국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크나큰 생채기를 남긴 전쟁입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3,800여 명으로 일본군을 물리친 제1차 진주성 전투, 진주대첩의 영웅으로 향년 39세로 순국하셨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는데 이듬해 전쟁이 일어나자 목사 이경(李璥)과 함께 지리산으로 피했다가 목사가 병으로 죽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명에 따라 목사직을 대리했습니다. 1592117(음력 104) 2만여 일본군이 진주성(晋州城)으로 쳐들어오자 1113(음력 1010)까지 3,800여 명으로 일본군을 물리친 제1차 진주성 전투, 진주대첩의 영웅입니다. 전장을 둘러보던 김시민 장군은 시체 속에 숨어있던 한 일본군의 총에 왼쪽 이마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후 장군은 두 달 뒤인 1121(음력 1018) 향년 39세의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 공신으로 책봉 받으셨습니다.

 

진주성을 찾아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에 간절히 소원 하나 빌었습니다. 다시금 위기에 구한 이 나라를 구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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