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창원 도심 속 여름 잊고 신선놀음하기 좋은 봉암저수지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8. 31. 08:56
728x90


속절없이 흐르는 땀을 훔칠 때마다 꿈꿉니다. 태양이 끝까지 쫓아 오지 못하는 곳으로 피하고 싶었습니다. 동해로 내달리거나 지리산 깊은 산골로 숨고 싶었습니다. 굳이 먼 바다와 산을 찾아가지 않아도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곳이 창원 도심 가까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걸으며 쉬고 싶어 봉암수원지로 향했습니다.

 


창원 봉암수원지(저수지) 입구

 

도심을 지나는 동안 경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잠시라도 신호등의 신호를 놓치기라도 하면 안 될 듯 모두가 운전대를 부여잡고 거리 운전자들은 두 눈에 힘을 주고 있습니다. 차창 너머로 이글거리는 태양의 흔적은 검은 거리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창원 봉암수원지는 진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 초록터널이다.

 

봉암수원지로 가는 입구에 이르렀습니다. 벌써 마음은 긴장의 끈이 풀립니다. 입구에서 몇 걸음을 옮기지 않았는데도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는 수원지> 표지판과 함께 진한 녹색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한 길이 반깁니다.

 


창원 봉암수원지는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는 수원지>답게 여기저기 시가 적힌 표지판이 걸음을 세운다.

 

시가 적힌 간판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새삼 나무 싹이 튼 담 위에/ 산에서 온 새가 울음 운다//~’는 정지용 시인의 <산에서 온 새>를 따라 읊조리는 나는 산에 온 새가 되었습니다. 시를 읽으며 걷는 걸음은 덩달아 가볍습니다.

 


창원 봉암수원지는 한때 해병대 훈련장이었다.

해병대 벽암지 교육대가 있었다는 선간판이 또 한 번 걸음을 붙잡습는다. 1966년 이곳에 벽암지 교육대를 설치해 1979년까지 양성한 곳이라는 안내판 너머로 앙상한 콘크리트 말뚝이 당시 훈련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원 봉암수원지 아래에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곳곳에 있다.

 

하늘 높이 솟구친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는 저도 덩달아 거인이 되었습니다. 둘레길 갈림길에서 잠시 어느 길로 가야 하나 순간 머뭇거렸습니다. 어디로 가면 어떨까.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는 마치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이끄는 듯합니다.

 


봉암수원지 댐 바로 아래에는 정자와 세족장이 있다.

 

신선의 세계에 발을 담그려는데 당신의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라는 한용운님의 <나의 꿈>이 다시금 숲 사이를 거닐게 합니다. 주위에 영글어가는 단풍나무가 별이 되어 숲속으로 이끕니다.

 


봉암수원지 댐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점령기에 당시 마산에 거주했던 일본인 등을 위해 만들었다.

 

물을 가둔 댐 바로 아래에 이르자 정자와 함께 세족장이 나옵니다. 귓가에 꽂은 이어폰을 따라 발을 물속에서 찰랑거리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봉암수원지 전경

 

봉암수원지는 일본 제국주의 강제점령기에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 등을 위해 석재를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가공하여 댐을 쌓았습니다. 1928년 착공 당시 인구 3만 명과 계획 급수인구 6만 명을 위해 저수 용량 40만톤 규모로 1930년에 준공했습니다. 이후에 확장했으나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절대 용량 부족으로 1984년 폐쇄했습니다. 폐쇄 이후 주변은 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봉암수원지 둘레길

 

댐 위로 오르자 사는 게 뭔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왜 사냐고 묻는다면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김상용 시인의 시처럼 ‘~웃지요

 


봉암수원지 둘레길 곳곳에 쉼터가 많아 주전부리를 먹으며 담소나누기 좋다.

 

댐에서 바라보는 저수지는 맑고 고요하다. 덩달아 마음도 평화를 얻는다. 팔용상 정상 둘레길로 가는 길이 나온다. 정상으로 굳이 갈 필요가 없다. 수원지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숲속 여기저기 쉼터에서 사람들은 가져온 주전부리를 이웃과 함께하며 즐긴다.

 


봉암수원지는 맑고 고요하다.

 

신록으로 샤워한 듯 온몸이 개운하다. 시원하게 뺨을 어루만지는 초록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잠시 평상에 앉았다. 근처에 있는 이육사의 <절정>을 읽는 나는 숲속 시인이 되었다.



봉암수원지의 찰랑찰랑 흔들리는 물결에 마음속 묵힌 찌꺼기도 씻겨간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물결에 마음속 묵힌 찌꺼기도 씻겨갑니다. 물가에 이층 정가 앞에는 사람들의 바람을 하나둘씩 쌓아 올린 돌탑이 반깁니다. 김소월의 <자색구름>과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나니 둘레길의 가운데 너른 곳에 이르렀습니다.

 


봉암수원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

 

동양정이라 적힌 이층누각 아래에 작은 도서관<숲속 도서관>이 있습니다. 갖춘 책을 몇 권 되지 않지만, 시집 한 권을 꺼내 이층에서 읽었습니다. 풍광이 글자가 되어 함께 읽힙니다. 다음에는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봉암수원지 너른 마당에 있는 숲속 도서관

 

숲속에서 책을 읽는 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를 덜어냅니다. 눈앞의 새로운 풍광을 담듯 새로운 에너지로 몸과 마음을 충전했습니다. 초록이 내려앉은 곳에 내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신선이 되었습니다.

 


봉암수원지 숲속 도서관이 있는 2층 누각 동양정에 앉아 풍광과 함께 책을 읽노라면 내가 곧 신선이 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