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잠시 시간이 머문 곳에서 옛 신라 시대로 여행을 떠나다-하동, 경천묘와 금남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1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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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가는 요즘, 훅하고 그냥 가버릴 가을이 아쉬워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곳을 찾아 116, 대한민국 알프스라는 경남 하동군으로 길을 떠났다.

 

진주시에서 하동군 북천면을 지나 양보면으로 넘어가는 황토재에서 멈췄다. 고개에서 바라보이는 풍광이 두 눈 가득 시원하게 들어온다



횡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로 1003번을 따라 오른쪽 지리산 청학동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들어갔다



봄을 알렸던 벚꽃도 지고난 자리에 붙었던 싱그러운 잎들은 결국 붉게 물들어 바람에 흔들거리며 떨어진다.

 

청암면 경계에 이르자 돌탑 여러 개가 먼저 반긴다. 아무런 글자도 없는 사람 얼굴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자 모양의 바위에 올라 있다. 얼핏 보면 달팽이를 닮았다. 느긋하게 살라는 뜻인 모양이다.

 

면사무소에 이르기 전에 청학동슈퍼에서 오른쪽 마을을 따라 100m가량 골목길을 지났다. 홍살문이 보인다. 주위로 대나무가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다



홍살문 위로는 하동호에서 내려오는 수로(水路)가 지난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홍살문을 따라 올라가자 수로에는 파란 하늘을 닮은 여의주를 문 청룡이 그려져 있다.

 

수로 기둥에는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에 전해져 오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신문기사가 스크랩되어 붙어 있다. 재미난 전설에 발걸음이 가볍다. 왼편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 사당 건립에 공이 많은 이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맞은 편 관리사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만, 그냥 담장을 따라 둘러볼 셈으로 전화를 따로 하지 않았다.

 

경천묘(敬天廟)1902(고종 39)에 건립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영정 봉안소다. 원래는 청암면 중이리 검남산 신기마을에 있었는데 하동-사천지구 농업용수 개발사업인 하동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이르러 198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외삼문인 읍창문(揖讓門)으로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는데 망초가 나를 내려다본다. 문 앞에 이르자 좌우에 각각 동백나무 한 그루씩 서 있고 그 옆으로 각각 안내판이 서 있다. 먼저 왼쪽에는 경천묘에 관한 안내문이고 오른쪽은 금남사(錦南祠)에 관한 안내문이다.

 

경천묘에는 하동 경천묘 경순왕 어진(河東敬天廟敬順王御眞)’이 봉안된 경모당(景慕堂)과 고려말 성리학자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과 수은 김충한,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 위패가 봉안된 금남사(錦南祠)가 함께 있다. 강원도 원주 용화산 고자암 경천묘에서 성심으로 경순왕의 어진을 모신 이색과 권근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1918년 지역 유림이 논의하여 건립했다. 이 사당 역시 수몰 지역에 편입되어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금남사에는 목은 이색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내삼문 뒤편에 있는 경천묘는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겹처마로 활주를 설치해는데 , 왕의 어진을 봉안한 사당으로 격식을 높여 대들보에는 용머리 장식과 봉황, 연꽃 장식 등이 먼발치에서도 보인다.

 

사당에는 엉겅퀴를 닮은 방가지똥이 햇볕에 노랗게 샤워한다. 꽃말처럼 따스한 ()’이 내려와 앉았다. 아스라이 쌓이는 시간의 풍경이다.

 

담장을 따라 경천묘를 구경하다 다시 홍살문 쪽으로 내려오다 낡은 슬래브 지붕 아래 큼지막한 ()’자가 무려 5개나 적힌 집이 보인다



잠시 시간이 머문 곳에서 옛 이야기를 소환했다. 신라 시대로 머나먼 과거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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