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문신미술관에서 바라본 마산항
가을이 왔다. 무더운 지난 여름날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낙엽과 함께 감성도 쌓여간다. 무르익은 가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 먼 대상으로 여겨지는 미술 작품의 세계 속으로 길을 나서보라고.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앞에서 만난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 얼굴처럼 양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Head Space(피테버크 작)’
10월 18일 진주시립 연암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진주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이성자의 예술과 삶’ 시간 속에 문신과 이성자 미술관을 가는 탐방시간이 있었다. 하늘은 비라도 내려칠 듯 꿉꿉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길 나서는 시간만큼은 날씨와 상관없다.
경남 창원 문신미술관에 있는 문신 서거 20주년 기념 청동상
연암도서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1시간도 되지 않아 옛 마산 ‘가고파 꼬부랑길’에 있는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앞에 일행을 내려놓는다. 박물관 앞 버스정류장을 겸한 작은 쉼터에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 얼굴처럼 양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Head Space(피테버크 작)’가 우리를 먼저 반긴다. 산 중턱에 위치한 까닭에 내려다 보이는 바다 풍경을 기대했지만 아파트 숲에 가렸다.
박물관 건물을 가로질러 팽이 모양의 ‘못과 대지(박종배 작)’가 있는 잔디 옆을 지나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신미술관에 들어서자 주름진 이마와 바지가 정겨운 문신 서거 20주년 기념 청동 동상이 반긴다.
문신 화백 작품의 민낯, 원형(原形)을 알 수 있는 원형전시관 전시실
1923년 일본에서 출생한 문신 화백은 1937년부터 1949년까지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8년 일본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회화와 부조조각을 전시했다. 1995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제일 처음 탄생한 선생 작품의 민낯, 원형(原形)을 알 수 있는 원형전시관으로 먼저 향했다. 마치 다양한 뼈를 보는 듯한 석고상들이 가득하다. 청동으로 만들기에 앞서 만든 석고상이라 온전히 선생의 손길이 묻어난다.
문신 화백의 작품들은 좌우 대칭 구조를 보여주지만 정작 생명체처럼 약간은 비대칭을 이룬다. 스테인리스에 비친 얼그러진 내 얼굴도 덩달아 함께 감상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평가받는다’라는 걸개그림과 함께 선생의 그림이 내려다본다. 원형전시관을 나와 11월 26일까지 전시되는 ‘모던 아-트협회 아방가드르를 꽃피우다!’를 둘러보았다.
전시관을 나와 선생의 조각품들을 산책하듯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작품들은 좌우 대칭 구조를 보여주지만 정작 생명체처럼 약간은 비대칭을 이룬다. 스테인리스에 비친 얼그러진 내 얼굴도 덩달아 함께 감상했다.
문신미술관에 있는 아트샵 ‘라 후루미’에서 바라본 풍경
아트샵 ‘라 후루미’에서 탁상 액자를 하나 샀다. 비록 프린트된 선생의 작품이지만 내 책상에서 함께할 생각에 설렌다.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진주 혁신도시 내에 있는 이성자미술관으로 향했다. 백살을 바라보는 90대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재불(在佛)화가였던 이성자 화백은 1918년 진주에서 출생해 1935년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배웠다. 프랑스 정부에게 예술공로자 훈장 받기도 한 그는 2008년 미술작품 376점을 진주시에 기증했다. 2009년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에는 ‘대척지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대척지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층 전시실부터 먼저 관람을 했다. 붉은 바탕의 그림들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이성자 화백 말년에 그린 그림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붉은빛이 상징하는 저녁노을에서 푸른빛의 동트는 새벽까지 걸음을 옮기면서 관람하는 동안 ‘대척지로 가는 길’은 어딘지 궁금했다.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에 걸린 작품 속에는 하얀 설산과 색동 무늬의 작은 반원이 함께한다. 그림 속 달 안에는 살짝 보이도록 호 '일무'(一無)가 한자로 적혀 있다. (사진제공=이성자미술관 홈페이지)
1938년 외과 의사와 결혼했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배우자의 바람은 그를 세 아이와 고향을 등지고 1951년 먼나먼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떠나게 만들었다. 대척지는 ‘한국으로 가는 길이다.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이다. 가장 긴 길이다. 가장 자유로운 길이다. 가장 순수한 길이다. 그리고 가장 환상적인 길’이다.
이성자 화백 말년에 그린 그림들로 구성된 ‘대척지로 가는 길’ 전시회에는 작품들은 붉은빛이 상징하는 저녁노을에서 동트는 새벽까지 푸른빛으로 변해간다.
그의 그림 속에는 하얀 설산과 색동 무늬의 작은 반원이 함께한다. 그림 속 달 안에는 살짝 보이도록 호 '일무'(一無)가 한자로 적혀 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다시 하나를 얻었다는 뜻이란다. 화백의 붓질에는 그립고 보고 싶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쓰다듬듯 그린 것은 아닌지 가슴이 저리다.
오늘 내가 찾은 이곳은 어느 세상이기에 이다지도 아름다울까.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는 미술가를 바라보는 기회를 잡았다. 미술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온 날이다. 가을이 걸음을 멈추고 내 마음마저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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