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군함도>, 읽지 마라, 여름에는!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7. 7. 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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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절정이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덥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땀은 얼굴에서 그대로 흙바닥에 떨어졌다. 바싹 마른 흙은 땀방울을 흔적조차 없이 한껏 빨아들인다. 이런 날 소설 <군함도>를 읽는다면 숨 막히는 역사 속에 아마도 천불이 나서 견디기 더욱 어렵다.

 

부처님을 믿거나, 예수님을 믿거나 알라신을 믿는 사람은 결코,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결코 이 책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알라신도 없는 멀지 않은 과거를 온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니다. 한편으로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옥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군함도 1편과 2편의 표지는 같은 듯 다르다. 먼저 1편은 어둡지만 옅은 잿빛 하늘 사이로 군함도를 찾아 날아가는 검은 갈매기들이 보인다. 2편은 오히려 검은 군함도 우로 미군 B-29 폭격기들이 난 그냥 지나간다.

 

<군함도>를 펼치면 작가 소개와 함께 검은 바탕에서 일본 제국주의 해군이 만든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일본어: 武蔵 むさし)가 드러난다. 미쓰비시 나가사키(長崎) 조선소에서 당시 세계 최대의 함선으로 만들어진 무사시는 일본의 기대와 달리 제대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레이테만 해전에서 미국 함재기의 집중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사진 제공 : 창비 블로그(http://blog.changbi.com/)


일본 제국 해군의 전함 무사시가 떠오르게 하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서 19km 떨어진 타카시마 해저탄광 섬에서 다시 5km 정도 가면 축구장 3배 크기의 하시마(瑞島) 섬이 실제 이름이다. 끔찍한 굶주림과 폭력에 끌려간 600여 명의 조선인 중 20%가 죽어서야 섬을 벗어났다. 이곳을 일본은 강제노역의 역사는 숨긴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받았다.

 

‘“저쪽이 조선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진홍빛으로 물들었던 바다가 잿빛으로 어두워진다. 섬을 둘러싸며 휘돌아간 방파제 위에 작은 섬처럼 서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기 먼 어디쯤 조선이 있겠지.‘라고 소설 첫 도입부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광경과 달리 군함도는 한번 들어오면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섬이었다. 불과 60년 전에만해도.

 

‘“누구 없소, 누구 없냐구...”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입 속에 지걱지걱 탄가루가 씹히면서 목구멍이 타는 듯 아파왔다. 모든 것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물아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뽕나무가 푸르게 너울거리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1310)‘

명국이 낙반사고로 석탄더미에 파묻힌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침 6시에 시작해서 밤 8시간까지 15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사고는 끝이 없었다. 죽어나가는 사람도 태반이었으니 소설은 실화 그대로다.

 

‘“당신이나 나나...여기까지 끌려온 몸. 쉴 사람은 있는데 쉴 곳이 없네.”

거칠게 없는 것 같던 여자였다. 저 사는 모습대로 살다가 그저 그뿐. 그렇게 사는 여자 같았었다. 그랬는데, 귓가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하느작거리는 나비처럼 오가고 있었다. 이 여자도 저 살고 싶던 모습은 다 잃어버린 채 그렇게 하염없이 살고 있었던가.(1344, 우석과 금화의 만남)‘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우리가 기억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할머니 뿐 아니라 이용가치 있는 조선인은 모두가 강제로, 속아서 끌려왔다.

 

‘“내선일체. 총독부에서 내세워온 것이 내선일체 아닙니까. 조선인에게 의무가 있다면 일본에는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국민을 징용했으면 당연히 보호해야 하고, 그래서 징용기간이 끝나면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와 처자식 앞으로 보내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닙니까.”(2126. 남편 지상을 찾아온 서형이 일본인 노무계장 이시까와에게 하는 말)’

 

일본이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소설은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

 

‘“우석이 너 수평사(水平社)라고 들어봤어? 일본에도 조선의 백정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어. 그걸 부라꾸민이라고 하는데 그 부라꾸민 차별철폐운동을 벌인 단체가 수평사야. 그 단체 사람들도 조선 광부를 돕겠다고 나섰지.”(2339)’

 

조선 광부들의 쟁의 초기에는 일본노동연맹과 부라꾸민 해방운동을 벌여온 인권단체 수평사의 도움도 있었다. 단순히 민족적 감정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재 와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차별과 편견으로 멸시하지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땅 밑의 감자마저도 익게 만든 처참한 원자폭탄의 피해 속에서도 빗물에 젖은 땅을 뚫고 부서진 집더미 속을 헤치며 풀이 올라오고 있었다. 옆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는 명아주였다. ~젖은 땅 위에는 보랏빛이 가득했다. 목이 메여, 지상은 무리 지어 핀 조그만 제비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이 솟아오르면서 잎과 잎이 비벼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2469)’는 구절은 소설 읽는 내내의 갑갑하고 어두웠던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사진 제공 : 창비 블로그(http://blog.changbi.com/)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라고 한수산은 작가의 말에서 대신한다.

 

거친 바람을 마주하며 쌓아온 군함도의 역사는 핍박받았던 조선인의 아픈 현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을 항해한다. <군함도>를 통해 멀지 않은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과거를 만나고 현재를 돌아본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미래로 이어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준다.

 

어제를 기억한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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