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생가, 경남 산청 겁외사
한 해 끝과 시작을 함께 온전히 느낄 수 있는 12월.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비우고 새해를 앞두고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비우기 위해 떠났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토닥여주고 싶었다. 새해를 앞둔 2016년 12월 28일, 어머니와 함께 시간 밖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은 추웠다. 하늘은 눈 시리도록 파랗게 빛났다. 경남 진주-산청 국도 3호선을 타고 가다 진주 명석면을 지나 신안면을 앞두고 오른편으로 꺾어 돌아 단성면 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어갔다. 쌩쌩 바람을 가르며 지나는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자 메타세쿼아 나무들이 호위무사처럼 둘러싼 겁외사가 나왔다. 겁외사는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해인사의 초대 방장과 조계종 6대와 7대 종정 지낸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 2001년 세운 절이다.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월한 절이란 뜻을 가진 지리산 겁외사(智異山劫外寺)는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해인사의 초대 방장과 조계종 6대와 7대 종정 지낸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 2001년 세운 절이다.
절 입구는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누각을 받친다. 어머니는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월한 절이란 뜻을 가진 지리산 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을 이름표처럼 붙인 절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스님이 1993년 11월, 82세에 열반 들기 몇 해 동안 겨울이면 합천 해인사 백련암을 떠나 부산에 머물렀다. 그곳을 겁외사라 불렀다고 한다.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문구에 따온 벽해루(碧海樓)를 지나자 마당 한가운데에서 스님 동상이 반기고 왼편에 대웅전이 오른쪽에 요사채가 있다. 스님 동상 뒤편에 재현한 생가가 있다.
동상으로 가기 전에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스님의 법어가 새겨진 비석 앞에 서서 천천히 법어를 읽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습니다.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사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라고 씌어있다.
‘단주 돌아가는 소리에 부처를 만나다’는 설명의 ‘부처님 마음(차대완 작)’이라는 염주 형상 속에 성철 스님의 동상이 들어온다. 겁외사를 찾는 이들이 모두가 즐겨 찍는 구도가 가득 들어온다.
법어를 읽고 다시금 스님을 바라보자 ‘단주 돌아가는 소리에 부처를 만나다’는 설명의 ‘부처님 마음(차대완 작)’이라는 염주 형상 속에 스님의 동상이 들어온다. 겁외사를 찾는 이들이 모두가 즐겨 찍는 구도가 가득 들어온다.
계단 오르기 힘들지 않은지 어머니는 동상 뒤편 생가로 들어서는 혜근문을 한달음에 올라 지난다. 오른편 맑은 음수대 가장자리가 얕은 얼음으로 채워져 있다. 햇살만큼 맑은 물속에 사람들의 바람이 동전과 함께 담겨 있다.
산청 겁외사 혜근문을 들어서면 성철 스님의 생가를 재현한 포영당, 율은고거, 율은재가 있다.
왼편 기념물 전시실이 있는 포영당으로 옮겼다. 스님의 한 생애를 간단하면서 명확하게 정리한 글과 사진 등이 전시되었다. 19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했다. 종정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를 발표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누더기 법복과 검정 고무신 앞에서 눈은 한동안 떠날 줄 몰랐다.
겁외사 포영당에는 성철 스님의 누더기 법복 같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포영당을 나와 스님의 아버지 호를 딴 안채 율은고거(栗隱古居)로 걸음을 옮겼다. 포영당과 율은고거 사이에 햇살처럼 눈부시게 붉디붉은 동백꽃이 불꽃같이 활짝 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품은 꽃망울들이 알알이 달려있다. 동백꽃의 열정을 뒤로하고 안채에서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한 당시의 모습을 엿보았다. 사랑채 율은재(栗隱齊)에는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를 내려오자 지나쳤던 미끈한 백송이 눈에 들어온다. 백송을 지나 웅크린 개구리 바위 앞에서 잠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을 보았다, 대웅전 벽면에는 스님의 일대기가 탱화로 그려져 있다.
산청 겁외사 맞은편에 있는 성철 스님 기념관
대웅전에는 진리의 본체라는 태양과 같이 두루 밝은 부처님을 의미하는 비로자나불이 있고 왼편에 성철스님 진영이 걸려 있다. 마침 밥을 공양하는 보살님이 절하는 예법을 일러주었다. 부처님을 시작으로 성철스님과 보살상에 각각 3배하고 나왔다.
겁외사를 나와 윤회의 바퀴 같은 로터리를 에둘러 건너편 ‘성철스님기념관’으로 갔다. 3층 높이의 기념관은 2012년 3월 11일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때 스님의 혈육인 불필 스님과 원택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이 뜻을 모아 짓기 시작해 2014년 완공했다고 하다.
성철 스님 기념관에 들어서면 빙 두르는 석불 사이로 석굴 같은 청자감실이 나온다. 흰 대리석으로 된 성철 스님의 설법상이 과거세 연등불, 현재세 석가모니불, 미래세 미륵불과 함께 있다.
125평의 기념관 1층 내부에 들어서자 온통 부처님을 새긴 벽돌이 빙 둘러 있다. 빙 두르는 석불 사이로 석굴 같은 청자감실이 나온다. 성불문을 지나면 청자감실로 들어가는데 좌우에 성철스님의 한글 법어가 새겨진 문을 지나면 흰 대리석으로 된 성철 스님의 설법상이 나온다. 설법상 뒤쪽으로는 과거세 연등불, 현재세 석가모니불, 미래세 미륵불을 모셔져 있다.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청자감실을 나오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커다란 거울이 나온다. 거울에는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고 적혀 있다. 거울에서 옷매무새만 만지던 나는 거울 속 나에게 한가득 웃음을 선사한 뒤 너머의 나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산청 텅빈 들판에는 씨래기 무청들이 햇볕에 꾸득꾸득 익어간다.
기념관을 나와 맞은편에 있는 생태 습지원으로 향했다. 텅빈 들판에는 씨래기 무청들이 햇볕에 꾸득꾸득 익어간다. 사람들은 겁외사만 보고 갈 뿐 너머에 있는 보석 같은 숲을 보지 못한다. 폭신한 흙길을 따라 숲을 한 바퀴 돌아 하트 모양의 습지 생태원까지 자박자박 천천히 걸었다.
산청 묵곡 생태숲은 해바라기를 하기 좋은 곳이다.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도 이곳은 넉넉히 치유의 시간을 내준다.
'묵곡 생태숲'은 2011년 4월 5일 문을 열었다. 남강댐 상류 지역의 수자원 보호와 겨울철 거센 모래바람을 시달려야 했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부터 2010년 말까지 5년간 9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산림청 생태숲 조성사업으로 거듭난 곳이다. 142,000㎡에 조성된 묵곡 생태숲은 바람막이 숲과 지리산 상징숲, 참나무숲, 습지생태원, 초지생태원, 피크닉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주차장, 비지 터 센터, 산책로 등으로 꾸며져 있다. 묵곡 생태숲은 해바라기를 하기 좋은 곳이다. 바삐 살아온 이들에게도 이곳은 넉넉히 치유의 시간을 내준다.
한 해를 보듬은 시간 밖 여행이었다. 사람들이 편하자고 만든 인위적인 시간의 구획. 시작이 있는 끝이 고맙다.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한 날이다. 새해를 위해 묵은 시간을 정리하고 비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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