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여행- 마흔다섯에 죽음을 선택한 그에게 묻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6. 7.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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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의 경남 진주 묘소를 찾아서

소나무로 둘러싸인 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의 묘가 있는 경님 진주시 사봉면 묘소와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마흔다섯, 죽음을 선택한 그에게 같은 나이인 나는 묻고 싶었다. 모진 고문 속에 천주교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라는 종교 배반과 알고 있는 천주교 신자를 털어놓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배신을 마다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았는지 알고 싶었다. 더구나 고려 말 충신으로 이름 드높은 정온의 18대손 후손으로 나라에서 금지한 서학(천주교)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그는 정찬문 안토니오다. 그는 성인의 바로 아래 단계인 복자로 2014년 우리나라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에서 선포되었다.


천주교 순교성지, 정찬문(안토니오) 묘로 가는 입구.

 

후덥지근한 11, 아침을 먹기 바쁘게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경남 진주 시내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진성면을 지나 사봉면 입구에 들어섰다. 진양농협주유소 앞 사봉삼거리 지나자마자 천주교 순교성지 정찬문(안토니오) 순교자묘안내표지판이 나온다. 하얀 개망초들이 들어가는 입구부터 따라온다. 진주에서 창원(구 마산)에 이르는 진마대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면 정자나무가 나오고 아래에 큼지막한 평상이 놓여 있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마을 속으로 들어가 첫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2분 정도 더 들어가면 정자나무가 나온다. 그 위쪽에 바로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가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소 쪽으로 나오자 주목이 먼저 반긴다. 하얀 깨꽃들이 나팔처럼 반긴다. 깨밭 아래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는 14개 지점의 고난의 길을 재현한 십자가의 길이 있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풀밭에서 만난 예수님.

 

고개를 들자 저 만치에서 예수님이 두 팔을 한껏 벌려 반긴다. 묘소로 가는 왼쪽이 아니라 푸른 풀밭이 단정하게 이발한 듯 푸른 풀밭이 있는 공소건물 옆으로 갔다. 풀밭 끝에는 십자가가 있고 예수님처럼 가시 면류관을 쓴 장승들이 둘러싸고 있다. 잠시 고개를 들어 공소 벽면을 보자 여기에 오는 이 평화인사를 건넨다. 십자가에 있는 예수님은 여느 성당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과 달리 고개 숙이지 않았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님은 고개를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는 숲에 둘러싸여 있다.

 

예수님 아래 제단 앞에는 수국이 심겨 있다. 찬찬히 가시 면류관을 쓴 장승들을 둘러보는데 마지막에는 분노의 예수라고 적힌 장승은 눈도 치켜세운 채 화난 얼굴이다. 장승 옆으로 앉기 좋은 돌들이 의자처럼 둘러 있고 나무 옆에는 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풀밭 아래 소나무들 사이에 넓은 평상들이 놓여 있다.


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 .

 

풀밭을 가로질러 묘소로 갔다. 묘소 앞에는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 순교자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은 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은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중촌마을에서 부친 정서곤과 모친 울산 김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순교자는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낸 정온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대사헌 정온은 조선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해 정찬문 묘소에서 바라보이는 우곡마을에 우곡정을 짓고 은거하며 살았다. 태조는 사위 이제를 보냈으나 정온은 눈은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청맹(靑盲)이라며 출사를 거부했다. 이제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소나무 잎으로 눈을 찔렀더니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선혈만 낭자했다고 전하는 고고한 절개를 지킨 유학자다.

 


복자 정찬문(안토니오)

 

정찬문은 파시조(派始祖) 우곡 정온 선생의 15대손이다. 안내판과 달리 참고 도서 <복자 정찬문(알마출판사)>에서는 정서진과 어머니 울산 김씨 김상련의 3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셋째 큰아버지 정서곤의 양자로 들어갔다고 적혀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정찬문은 천주교 신자였던 칠원 윤씨와 혼인해 부인의 권면으로 영세 입교한 뒤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그의 나이 45세에 순교한 것으로 적혀 있다. 또한 친척들이 시신을 요청하자, 관에서 머리를 남겨두고 몸만 내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하체만 장사 지냈고, 이곳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무두묘(無頭墓)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판 내용과 <복자 정찬문>의 책 내용이 일부 달라 집에서 다시 책을 읽었다.


순교자 정찬문(안토니오) .

 

안내판을 읽은 뒤 천천히 묘로 걸었다. 묘 왼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적힌 십자가가 있고 가운데 제단이 있고 오른편에 초상화와 촛대가 있다. 사각의 무덤에는 순교자 정안또니오의 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감옥에 갇혀 25일 만에 순교한 정찬문은 사흘 뒤 머리는 본보기로 효수(梟首)되고 몸체만 친지들에게 수습되어 급하게 사봉초등학교 인근 허유 고개에 묻혔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십자가의 길에서 만난 성모 마리아상.

 

무더운 여름 날씨는 안경까지 땀방울로 덮어 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안경닦이로 몇 번을 닦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둘러보아도 내 물음에 그는 말이 없다. 말이 없는 묘를 지나 걸었다. ‘십자가의 길11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는 지점 옆에는 라틴어로 "유대인들의 임금,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글자 ‘INRI’가 적힌 글자 십자가에 예수님의 형상이 나온다. 예수님 아래에는 예취기의 칼날을 피한 작은 개망초가 작은 달걀 후라이 모양으로 피어 있다. 개망초 옆에는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주황색 원추리 꽃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원추리를 지나 돌아 올라가면 소나무에 둘러싸인 무덤과 사봉공소가 나온다. 무덤을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성모 마리아가 지그시 하늘을 올려다보는 조각상이 나온다. 성모상 발아래에 서늘한 가을이 오면 꽃 피울 국화가 심겨 있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십자가의 길.

 

돌아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 쳐든 빨간 뱀딸기 열매가 발아래 눈에 띈다. 용케도 벌초하는 예취기를 피했다. 이름 때문에 먹기를 주저하는 뱀딸기 빨간 열매를 따서 입에 넣었다. 단맛은 없지만 타는 목마른 여름 날씨에 잠시 갈증을 잊는다. 옆에는 노란 고들빼기 꽃도 있다. ‘며느리밑씻개로 잘못 알려진 사광아재비가 선 분홍빛으로 또한 고개를 내민다. 검은 나비들이 내 걸음에 날아 올라가고 날아 올라간 사이로 분홍색 싸리꽃들이 피어오른다.


천주교 마산교구 사봉공소 십자가의 길.

 

천주교 신자도, 개신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마음 속 묵은 응어리가 날린다. 길이 끝나는 십자가의 길 14처에 이르자 주차장이 나온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가 입안에 맴돈다.

 

주차장 너머로 우곡 정온 선생의 마을을 바라보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마흔다섯의 나에게 묻는다. 유혹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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