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강릉여행- 육룡이 나르샤? 자유로운 이무기를 보았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10. 12. 20:41
728x90

한없이 솔 향 가득한 강릉에서 자유로운 허 난설헌 균 남매를 만나다

 

초가을의 바람은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짜릿하게 만들고 기분 좋게 한다. 어느 곳을 가도 즐겁다. 그러나 무려 8시간이나 걸려 가야 하는 길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그러나 하늘빛과 물빛이 마중 나오는 시월의 강릉 앞바다에 솔 향 가득한 그곳에서 자유인을 만나는 길은 이 모든 짜증을 날려버린다.

 

 

8시간 걸려 힘겹게 도착한 강릉 앞 동해는 톡 쏘는 사이다의 첫맛처럼 온몸을 짜릿하게 흔들었다.

 

강원도 강릉으로 직장 모꼬지(MT)9, 1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한글날부터 시작하는 황금연휴 기간이라 엄청나게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이 되었다. 오전 7시 경남 산청에서 출발한 차는 강원도 원주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오후 3시쯤 강릉 앞바다에 도착했다.

 

8시간 걸려 힘겹게 도착한 강릉 앞 동해는 톡 쏘는 사이다의 첫맛처럼 온몸을 짜릿하게 흔들었다. 짙푸른 동해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세종대왕 때 한글로 엮은 최초의 책 용비어천가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첫 구절이 절로 뛰어나오게 한다. 모꼬지 조별 수행과제로 단체 사진을 바다 모래밭에서 6명이 승천하는 용처럼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강릉 해변 한쪽에 오징어들이 꾸덕꾸덕 햇살과 바람에 샤워한다.

 

조별 수행과정이 끝나자 각자 또는 함께 무리 지어 해변을 거닐었다. 카메라 어깨 메고 시원한 바닷바람 벗 삼아 걸었다. 바다에 뛰어든 앳된 소년도 있다. 춥지 않으냐는 말에 무심한 듯 웃는 소년의 표정이 해맑다. 해변 한쪽에 오징어들이 꾸덕꾸덕 햇살과 바람에 샤워한다.

 

해변 곳곳에 있는 조형물들이 걸음을 바삐 옮기지 못하게 한다. 액자 모양의 사각 조형물에 들어간 하얗고 검은 얼굴들이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강문동 강문해변을 지나 송정동 송정해변으로 가는 데 생선의 지느러미처럼 생긴 하얀 강문 솟대 다리를 건넜다. 다리 가운데 아래에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솟대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동전이나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경건한 마음으로 던져 원형 안에 들어가면 각종 액운을 막아주고 소망이 이뤄진다는 진또배기 소원성취 조형물이란다. 뭇사람들의 소원이 동전에 담겨 던져져 있다.

 

 

 강릉 해변에 놓여져 있는 액자 모양의 사각 조형물에 들어간 하얗고 검은 얼굴들이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가을은 어디로 떠나도 즐겁다. 그렇지만 여름 바다도, 겨울 바다도 아닌 시월의 바다는 짙푸른 바람으로 가득해 시원하다. 해변을 따라 숙박업소와 횟집들이 옆으로 나란히 한다. 그 틈 사이 작은 골목을 지나자 좀 전까지 함께했던 바다를 잊었다. 하늘을 담은 경포호수가 나온다. 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리키는 바우를 본뜬 바우길을 따라 자전거 한가롭게 타는 사람들은 햇살만큼 밝게 웃는다. 호숫가를 걸었다. 경포호수는 잔잔한 물만 있지 않았다. 습지 공원이 있고 숲이 나온다.

 

 

강릉 해변을 따라 숙박업소와 횟집들이 옆으로 나란히 하는 틈 사이 작은 골목을 지나자 좀 전까지 함께했던 바다를 잊게하는 하늘을 담은 경포대 호수가 나온다.

 

한적하니 호숫가 숲을 거닐자 허난설헌 유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다리를 지났는데 다리 이름인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허균은 자신의 고향 야산 이름을 따 호로 삼았다. 교산이라는 이름처럼 허균은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허균의 호를 따 만든 교산교’. 교산은 여기 야산이 오대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교산교를 지나자 개울 하나 더 건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는 난설헌교다. 허균의 누이이자 조선 시대 여성문인으로 이름 높은 허초희의 호를 딴 다리다. 난설헌교에는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홍길동이 조각이 먼저 반긴다. 푸른 소나무 숲이 주는 평안함이 좋다. 500년 솔숲이다. 숲 속 아담한 고택은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사각사각발걸음 옮길 때마다 흙이 토하는 싱그러운 소리가 귀를 맑게 해준다. 흙 밟는 소리에 놀라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소나무는 한참 위에서 내려다본다. 한 없이 싱그러운 솔 향이 가득하다.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기 그만이다.

 

 

난설헌교에는 허균의 누이 허초희의 호를 따 이름 지었고 거북이 등에 올라탄 홍길동이 조각이 먼저 반긴다.

 

솔숲 가운데 햇살 드는 자리에 허난설헌·균 남매 생가가 있다.

 

옛집은 대낮에도 인적 그치고/ 부엉이 혼자 뽕나무에서 울어라

섬돌 위엔 이끼만 끼어 푸르고/ 참새만 빈다락으로 깃들고 있네

그 옛날 말과 수레 어디로 가고/ 지금은 여우 토끼굴처럼 폐허되었네

이제야 선각자 말씀 알겠구려/ 부귀는 내가 구할 바 아니라는 것“(허난설헌의 시 <감우> 중에서)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500년 솔숲이다.

 

당대에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은 허성과 허봉을 오빠로 두고 허균을 남동생으로 둔 허난설헌 역시 뛰어난 문인이었다. 여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던 시대의 흐름 속에도 아버지 허엽은 딸 허난설헌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8살 때 신동이라 불리며 중국에서 천재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난설헌도 결혼 생활은 평온하지 못했다.

 

시 쓰는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은 시어머니는 허난설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 김성립 역시 자신보다 글재주가 뛰어난 아내의 존재가 오히려 부담이었는지 모른다. 난설헌은 스물일곱에 용으로 승천하지 않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곡자에서 자기 죽음을 예언했다.

 

 

딱딱하고 까칠한 소나무 줄기가 하늘을 올라가는 기차인 양 한껏 위로 치솟았다. 시대를 거역했던 자유인 허균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이 꿈틀거리는 소나무에 서려 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에서 차갑기만 해라.”

 

돌림병으로 잃은 두 아이와 배 속의 아이를 유산으로 잃은 슬픔에 더해 몰락해가는 친정을 바라보는 난설헌의 속은 죽음을 앞두고 이미 까맣게 태워져 있었으리라.

 

딱딱하고 까칠한 소나무 줄기가 하늘을 올라가는 기차인 양 한껏 위로 치솟았다. 시대를 거역했던 자유인 허균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이 꿈틀거리는 소나무에 서려 있다. 자유분방한 기질은 고지식한 성리학만의 세상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용서받지 못했다. 벼슬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탄핵받아 파면되거나 유배를 떠나기도 했다. 좌찬성도 지냈지만 결국 반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

 

생가 옆에는 남매의 아버지인 허엽과 남매의 형제들인 허성, 허봉까지 다섯 사람의 시비가 있다. 기념관이 있다. 한글 최초의 홍길동전을 물론이고 허균의 문학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의 얼굴과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혁명을 꿈꾼 선비의 모습을 가진 두 얼굴의 사나이 허균의 일생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허균은 때를 잘못 만나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지 못한 이무기였다.

 

 

 아침이 밝아오자 다시 솔 향 가득한 강릉 허난설헌, 허균 유적지를 거닐었다. ‘봄이 오면 꿈이 매양 강릉으로 돌아가네라던 허균처럼 봄을 기다릴 수 없었다.

 

한없이 솔 향 가득한 솔숲에서 자유로운 허난설헌균 남매를 만나고 바로 실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커피 향 가득한 커피 축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올해로 일곱 해를 맞는 커피 축제에서 시음한 커피만으로도 입이 즐겁고 코가 기쁜 휴식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숙소에서, 노래방에서,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밤바다에서 마시고 마셨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관령 양 떼 목장으로 가기 전 주어진 자투리 시간에도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솔 향 가득한 이곳을 거닐었다. 봄이 오면 꿈이 매양 강릉으로 돌아가네라던 허균처럼 봄을 기다릴 수 없었다.

 

 

허난설헌, 허균은 어릴 적 강릉 경포호수를 앞마당 삼아 자유인으로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웠을지 모른다. 내년 봄에는 초당동 순두부를 안주 삼아 용이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내에게 술 한잔 올리고 싶다.

 

한 시간여 걸었다. 바람은 점점 시원하게 불고 마음은 점점 따뜻해진다. 내년 봄에는 초당동 순두부를 안주 삼아 용이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내에게 술 한잔 올리고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