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야기

4월 동백을 본다면 제주 4.3을 떠올려보자-제주 4.3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⓷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9. 4.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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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⓷ 

- 4월 동백을 본다면 제주 4.3을 떠올려보자 



눈물마저 죄가 되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 제주 4.3의 흔적을 찾아 42일부터 4일까지 다녀온 역사탐방을 3회에 걸쳐 나눠 적는다. 역사탐방은 제주도 초청으로 경남을 비롯한 전국 14개 시도 파워블로거와 SNS기자단, 공무원 90여 명의 <제주 4.3 역사 바로 알기 역사탐방>에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명예기자 자격으로 다녀왔다. 팸투어 이야기를 3회로 나눠쓴다.


글 싣는 순서

 

1. 섬뜩한 진실과 마주하는 제주 4.3기념관

2. 꽃 피워라 제주 4.3정신

3. 4월 동백을 본다면 제주 4.3을 떠올려보자 

 

정부의 공식 보고서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제주 4.3’“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4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9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라고 정의한다. 제주 4.3사건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의 95%가 쑥대밭이 되어 사라졌고 제주도 인구의 10%에 이르는 3만 명의 제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인 4일에는 용눈이 오름과 성산 터진목과 성산일출봉을 다녀왔다.

 

용눈이 오름 주위로는 변변한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제주에는 이름 없는 마을과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 많다. 이 모두가 4.3사건 때 소개령으로 사라진 마을들이다.

 

오름 주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4.3 당시 소개령으로 사람과 함께 사라져

 

용눈이 오름 정상에 서자 높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다랑쉬 오름이 마주한다. 다랑쉬 오름에는 설문대할망이 다랑쉬오름에 흙 한줌을 집어놓고 보니 너무 도드라져 있어 보여 주먹으로 탁 친 것이 패어져 생겼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설과 달리 1992년 인골 11구가 발견되었다.

 


19481118일에 제9연대 2대대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유골의 연령은 9세 아이에서 50대 여성까지 이르렀다. 다랑쉬굴은 입구가 양쪽으로 뚫려 있는 구조다. 당시 토벌대는 사람들이 숨은 입구에 수류탄을 던져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잡초를 모아 불을 지피고 그것을 구멍에 밀어 넣어 연기로 질식사시켰다고 한다. 다랑쉬마을도 4.3사건 때 소개령으로 지금은 사라졌다.

 

관광 필수코스 너머에 4.3 학살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제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성산일출봉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성산 터진목에 이르렀다. 터진목은 4.3학살터다. 4.3당시에 고성리에서 성산일출봉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자리한 길목이다. 피로 물든 터진목 위로 도로가 지나고 한편에 4.3추모공원이 당시를 묵묵히 전하고 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이 학살터로 변했는지?’(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끌레지오의 제주기행문 중에서)가 새겨진 빗돌이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빗돌은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1948925(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성산일출봉).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 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의 빗돌 옆으로 강중훈의 섬의 우수시를 새긴 비가 함께 한다.

“~성산포 앞바르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 아직도 파들파들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희생자 위령제단 위로/ 뉘 집 혼백인 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과거를 잊고 산다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

 

뒤편으로 위령비가 서 있다. 위령비 앞에는 과거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곧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로 시작하는 추모공원 조성 기념비가 있다.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성산일출봉 매표소를 지나 왼쪽 우뭇개 동산으로 향했다. 해방이후 일본군이 버리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오조리 주민 30여 명을 학살했다. 학살당한 이들은 주민들은 다이너마이트로 고기잡이용으로 사용하려고 소지했는데 당시 성산일출봉 인근 성산국민학교에는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사무실이 있어 주민들 피해가 컸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제주의 관광지. 그 너머에는 4.3의 비극이 서려 있다. 4·3희생자 유족들은 복수하지 않았다. 군사정권 때에는 복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지만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는 지금도 유족들은 서로의 상처를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보듬는다.

 

제주의 4.3 흉터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향해

 


가는 곳마다 발 닿는 곳 마다 동백이 탐스럽게 피었다. 이제는 동백이 핀 자리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흉터였음을 보았다. 제주 4.3사건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의 95%가 쑥대밭이 되어 사라졌고 제주도 인구의 10%에 이르는 3만 명의 제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4월 동백을 본다면 이제는 제주4.3을 떠올려보자.

 

제주에는 4·3이라는 큰 흉터를 남아있지만 이제는 서로 위로하면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바로 4.3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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