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여행)진주 도심에서 만나는 초록빛으로 샤워하는 산책로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6. 18. 09:15
728x90

 

경남 진주 남강변 신안-평거동 산책로

 

매번 지나가는 길이라도 문득 다른 느낌으로 만날 때가 있다. 경남 진주시 신안동, 평거동 남강 변을 따라 있는 신안-평거 산책로가 그곳이다.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우스갯말이 있지만, 분당 밑에 있는 그곳은 또 다른 초록 바다의 천국이다. 도심 속에서 초록빛 이파리를 달고 반짝이는 초록의 숲길에 611일 들렀다. 온몸으로 초록빛이 쏟아져 샤워한 듯 정신이 맑아졌다. 어느새 몸과 마음마저 초록으로 물들었다.

    

 경남 진주시 남강변 신안-평거동 산책로

 

경남 진주시 신안동 KBS 진주방송국 앞에는 소나무 몇 그루를 가운데에 두고 길은 원을 그리듯 나 있다. 소나무 옆으로 아주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풀을 매고 있었다. 노란 선씀바귀는 아직 뽑히지 않았다. 아마도 아주머니들이 차츰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햇살을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씀바귀 옆에는 커다란 편백이 가느다란 잎을 아래로 마치 분수처럼 축 늘어뜨리며 서 있다.

 

편백을 지나 길 하나를 건넜다. 인근 병원에서 온 환자와 보호자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육교 근처 무렵에 이르자 주택 사이로 장미 넝쿨 터널이 보인다. 이미지고 난 뒤라 장미는 없다. 시든 장미가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터널 옆으로 난 길을 그냥 걸었다. 땅은 굵은 모래가 깔려 밟는 대로 소리가 바사삭 바사삭아주 기분 좋게 따라온다.

 

 

세 잎인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 행운에 가려 정작 행복을 잊고 잊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저만치 잣나무가 보인다. 잣나무 건너편에는 하얀 토끼풀꽃이 피었다. 토끼풀을 클로버라고도 하는데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좋아하고 찾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세 잎인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 행운에 가려 정작 행복을 잊고 잊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행운은 그저 보너스일 뿐인데.

 

클로버 무리를 지나자 종가시나무가 나온다. 종가시나무를 지나자 뫼 산() 모양의 바위가 저기 서 있다. 바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다행이다. 요즘 주위를 살펴보면 온통 바위며 돌에 각종 이름이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는 없다. 그래서 더 좋다. 바위에 내 마음을 비쳐 새겨보았다.

 

 

경남 진주시 남강변 신안-평거동 산책로

 

양산을 받쳐 든 할머니가 지나간다. 출발한 지 10여 분. 햇살이 더 강해졌다. 하얀 아이스크림을 닮은 이팝나무꽃이 그리웠다. 이팝나무는 이미 꽃 진 뒤라 진녹색의 잎을 가득해 아쉬웠다. 야외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는 할아버지. 그 뒤로 금목서가 보인다. 금목서 옆으로 선 분홍빛 영산홍이 초록 바다에 빛났다.

 

사철나무 옆에서 잠시 쉬었다. 사철나무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구슬 모양의 꽃송이가 알알이 맺혔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부끄럽다며 은근슬쩍 꽃 피울 모양이다. 산책로 사이사이에 긴 의자들이 쉬어가라 놓여 있다. 햇살 드리운 자리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땀을 훔쳤다.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는 주택들이 왼편으로는 6차선 찻길이다.

 

 

단풍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보면 한낮에 별들이 총총히 박힌 모양새가 좋아 한참을 올려다본다.

 

다시 일어나 상수리나무를 지나 별 모양의 중국단풍 아래로 갔다.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보았다. 한낮에 별들이 총총히 박힌 모양새가 좋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단풍나무의 별 아래에는 시가 적힌 표지판이 나왔다.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박목월의 시를 읽었다. 신안동 녹지공원 주위에 시를 적은 표지판을 세워 걷는 동안 잠시 시를 읽는 즐거움이 곁들여졌다.

 

정자가 나왔다. ‘신안정주위에는 쓰레기며 빈 병이 뒹굴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다행히 무성한 초록 사이로 흰 꽃을 무더기로 피운 산에서 자라는 아침의 나무라는 산사나무가 눈을 다시 맑게 해주었다. 산사나무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다. 오히려 짧은 고갯짓으로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수줍은 여인처럼 서 있었다. 산사나무를 아래에는 하얀 토끼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흔들림 없는 바위는 듬직하다. 바위에 앉아 캔커피를 마셨다. 산사나무는 유일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순백의 꽃으로 은은한 사랑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다.

 

 

초록 풀 사이로 치약을 묻힌 듯한 일자() 모양의 바위가 쉬어가라 손짓한다.

 

산사나무 아래에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일어서자 봄을 알렸던 산수유가 보였다. 산수유를 지나 진양호 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행운이 무더기로 내게로 왔다. ‘행운은 반드시 온다라는 꽃말을 가진 부용이 아기 손바닥 같은 초록 잎으로 무리 지어 반긴다. 다시 눈을 멀리 보자 산책로가 그윽하다.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랑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비 그친 새벽 산에서> 황지우)’

햇살 가득한 산책로에서 만난 시 한 수 덕분에 비 그친 새벽 산으로 잠시 떠났다. 초록 풀 사이로 치약을 묻힌 듯한 일자() 모양의 바위가 쉬어가라 손짓한다. 마로니에로 더 잘 알려진 칠엽수는 알알이 열매가 탱자처럼 맺혀 있다.

 

 

경남 진주시 남강변 신안-평거동 산책로

 

마로니에 뒤 주택가 사이사이로 실비집 간판들이 보인다. 신안동 실비집 골목이다. 통영과 마산이 다찌와 통술집으로 유명하다지만 진주 실비집에 비할 수 없다. 실비집 골목은 주택가에 있다. 가게 내부는 대체로 원형 테이블과 방으로 구성돼 있다. 술을 기준으로 가격을 셈하는 실비는 보통 소주가 1만 원, 맥주가 6,000원이다. 안주는 술값에 붙어 있다. 안주 수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먹는 만큼 계속 나온다. 철마다 안주가 바뀐다. 권주가를 부르며 술 한잔 마시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실비집 골목 옆으로 난 신안 산책로를 걸으면서 맥주 한잔 간절할 때 다시 지압보도가 나왔다. 지압보도는 둥근 길 가운데 있다. 나무 사이로 버스가 지나고, 승용차가 지나간다. 남강도 얼핏 보인다. 발아래에는 개미 한 마리가 횡재했는지 자기 덩치보다 더 큰 곤충 하나를 끌고 간다. ‘신안녹지동산이라는 표지석을 지나자 방송국 중계탑이 기다랗게 하늘을 향해 있는 망진산이 초록 사이로 보였다. 신안주공아파트단지는 산책로와 붙어 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는 잠을 청한 아저씨가 보인다.

 

분수대를 지나자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아기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간다/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로 유명한 최계락 시인의 시비(<해 저문 남강>)가 서 있다.

 

 

햇살이 뜨겁다. 새콤한 게 그리울 무렵 매실나무가 보인다. 매실이 익어간다.

 

햇살이 뜨겁다. 새콤한 게 그리울 무렵 매실나무가 보인다. 매실이 익어간다. 입에 침이 고였다. 매실주 한잔 생각에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빠른 걸음을 세우는 기념비가 있다. ‘차의 날 선포 30주년 기념비. 전국 최초로 진주 차인들을 중심으로 제정한 차의 날을 기념해 세운 비다. 예부터 진주는 지리산에 가까워 차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기념비 위에는 찻잔과 다관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술 생각은 저만치 가고 녹색의 숲에서 녹차 향내가 그리워진다. 산책로 곳곳에는 앉아 쉬어갈 돌들이 의자처럼 나무 그늘에 있다.

 

 

산책로에서 만난 농구 골대는 덩크슛을 날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구대가 세워진 작은 운동장. 농구 골대가 덩크슛을 날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자 위 매트에는 참새가 주인 없는 정자를 차지하고 왔다 갔다 한다. 밖에 나온 개는 마냥 신이 났는지 주인보다 몇 걸음 앞서서 뛴다. 그 뒤를 숨을 헐떡이며 뛰는 할머니가 보인다. 하루 4시간까지 무료로 빌려주는 공영자전거 대여소에 들러 자전거를 빌렸다. 녹색 바람을 가른다. 긴 의자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세월을 비켜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희망교에 이르렀다. 이전과 달리 산책로에 심어진 나무들이 지나온 길과 달리 아직 어리다.

 

희망교에 이르렀다. 이전과 달리 산책로에 심어진 나무들이 지나온 길과 달리 아직 어리다. 좀 더 가면 진주댐이 나오겠지만, 아파트 숲에서 핸들을 돌렸다. 희망교를 지날 때부터 그늘이 적어 산책 나온 사람도 적고 나온 이들도 토시며 모자로 햇살을 가렸다. 6차선 길을 건너 남강변으로 나갔다.

 

 

얀 개망초들이 강변 자전거전용도로 옆에 환하게 피었다.

 

하얀 개망초들이 강변 자전거전용도로 옆에 환하게 피었다. 개망초는 1910년 경술국치 때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꽃 이름에 붙은 망초(亡草)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개망초에는 또한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중국 초나라 시대. 어느 산골 가난하지만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은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이 끝나자 남편이 돌아왔지만,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밭에는 풀만 무성했다. 아내와 함께 김매던 밭에서 남편은 풀을 뽑으며 이 개같이 망할 놈의 풀이라 했단다. 안타까운 전설 속에서도 계란후라이를 닮은 개망초 덕분에 점심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경남 진주시 남강변 신안-평거동 산책로

 

자전거전용도로와 보행자 도로로 구분된 남강변을 따라 강바람을 가르는 즐거움에 더해 남강 풍광이 주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상쾌했다. 강에 몸을 담그고 다슬기를 줍는 사람들이 보이고 푸른 잔디밭에는 그린 골프를 즐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호쾌한 골프공 맞는 소리가 정겹다.

 

날 좋은 날, 멀리 갈 것도 없이 진주 도심 속에서 봄과 여름 사이를 즐기면 어떨까?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냉커피도 좋고, 실비집에서 권주가로 흥을 내어도 좋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초록빛에 샤워해도 그만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