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여행)새근새근 잠든 내 안의 감성을 일깨운 진주봄꽃축제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4.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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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봄옷으로 갈아입은 봄을 맞이하러 갔다. 새근새근 잠든 내 안의 감성을 일깨우는 봄을 보았다. 봄을 마주했다. 봄을 느껴 보았다. 봄을 그려보았다. 봄의 숨결 가득한 봄꽃축제의 현장으로 길을 나섰다.

 

 

경남 진주 문산읍 진주혁신도시 내에 자리 잡은 진주종합운동장 옆에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봄꽃축제를 구경하러 17일 갔다. 오전 9시 대부분의 사람이 출근을 마무리한 시간인데도 축제장으로 들어가는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뒤로 노란 어린이집 차들이 개나리꽃처럼 서 있다. 주차장 한쪽에는 아예 어린이집 전용 주차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노란 승합차 사이로 노란 병아리떼 같은 아이들이 내렸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랐다. 여기저기 눈길과 발길 닿는 곳마다 만나는 꽃의 색과 냄새를 맞닥뜨릴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빨간 튤립 사이로 마치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듯 노란 튤립 한 송이가 솟아 있다. 빨란 튤립 꽃 안으로 노란 암술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튤립을 보는 재미에 저만치 커다란 점박이 무늬의 달마시안 앞에서 앙증스럽게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튤립 사이사이 이름조차 다 외우지 못할 작은 꽃들이 피어 있다.

 

 

 

 

꽃 사이로 선생님과 줄을 잡고 기차처럼 한 줄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풍경이 정겹다. ‘병아리 떼 쫑쫑종 봄날들이 갑니다.’ 사랑스러운 여인 앞에 무릎을 굽힌 남자가 프러포즈 하는 토피어리. 튤립의 꽃말처럼 ‘사랑의 고백’하는 모습이 문득 결혼 전 연애 시절로 잠시 떠나게 한다. 아이들은 그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포즈를 흉내 낸다.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은 꽃보다는 친구들과 장난치기 바쁘다. 튤립과 잘 어울리는 풍차가 야트막한 곳에 세워져 있다. 일순간 이곳은 네덜란드로 변했다.

 

 

 

 

튤립과 풍차를 보면 떠오르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또한, 아름다운 튤립에 얽힌 인간의 헛된 욕망도 함께 떠올랐다.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와 중앙아시아다.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네덜란드의 경제력이 넘쳐나던 시절, 투자할 곳을 찾아다니던 자본은 튤립을 만났다. 꽃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튤립에 투자하다 보니 튤립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단시간에 대량 생산이 어려워 공급은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튤립 알뿌리 하나가 고급 주택 한 채와 맞먹을 만큼 튤립의 희소가치는 높아져 품귀 현상을 일으켜 사재기도 발생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총아(寵兒)인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선물(先物)과 옵션시장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단다. 1637년 2월 3일 경매장의 튤립시장은 폭락했다. 튤립을 사기 위해 집을 팔고 막차 탄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흙바닥이 푹신푹신하다. 걷는 게 즐겁다. 셀카봉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찍기에 바쁜 꽃처럼 싱그러운 아이들이 사이를 지났다. 다정한 부부가 손을 맞잡고 걷는 뒷모습에서 정겨움이 묻어났다. 빨간 튤립 꽃잎 사이로 노란 꽃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벌들이 날아다닌다. 벌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여기저기 꽃가루 속을 뒤적이며 꿀을 모으기에 바빠 내가 자신을 찍는지도 몰랐다. 소나무 아래에 그늘에 유채꽃들이 햇살을 피한 사람처럼 노랗게 피었다. 소나무 솔방울도 종족 번식을 위해 꽃가루를 날려버리기 위해 머나먼 우주로 날아갈 로켓처럼 곧추세워져 있다.

 

 

 

 

긴 의자에는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겨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교 단체 관람을 온 아이들도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친구들과 사이다를 마시고 과자를 먹는다.

 

 

봄꽃 사이사이 나무들도 새순을 드러내 초록 빛깔을 띄웠다. 초록의 고운 빛깔 사이로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맞잡은 손 너머로 어깨를 다정히 붙인 연인은 여기 봄꽃의 화려한 색처럼 사랑을 피울 것 같다. 남천 등으로 만든 미로에서는 아이와 아빠가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아들과 아빠 위로 새들이 날아간다. 화단에 심어져 있는 영산홍의 선홍빛이 빛난다. 근처 긴 의자에 앉아 캔커피 한 모금 마셨다. 꽃내음이 커피 향에 묻어 왔다.

 

 

 

 

봄꽃축제 중 토요일과 일요일(11일, 12일, 18일, 19일) 오후 2시에 야외음악회가 열린단다. 봄꽃과 함께하는 음악이라, 운치 있는 풍경이지만 직장 일 때문에 함께할 수 없어 아쉽다. 아쉬움을 달래는데 저만치 달걀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꽃잎을 가진 하얀 조팝나무 꽃이 위로해준다.

 

 

긴 의자 사이에 놓인 탁자에도 꽃이 함께한다. 탁자 가운데가 통유리로 되어 있고 그 아래에 팬지꽃이 방긋 웃는다. 이 곳에서 식사한다면 어떤 반찬도 필요 없을 듯하다. 빨갛고 노란 튤립이 마치 유등처럼 빛났다. 벌써 올가을에 남강을 수놓을 유등축제를 떠오른다.

 

 

 

튤립을 비롯한 꽃 대궐 속에서 문득 ‘꽃은 스트레스의 산물’이라는 『식물의 인문학』 한 구절이 떠올랐다. 책에서는 ‘모든 식물은 타고난 유전적 약점이 있다. 약점은 주로 기온과 햇빛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개나리, 산수유, 매화, 목련은 급상승하는 기온에 민감해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이런 식물은 한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꽃을 피운다. 식물이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했다. 화려한 봄꽃의 유혹 너머에 아름다운 절박함을 또한 느꼈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껏 받은 꽃 대궐에서 따스한 산들바람과 생명이 꿈틀거리는 기운을 얻은 하루다. 연둣빛 새싹들이 잔뜩 피어나고 노랗고 빨갛고 때로는 검은 튤립의 향연과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어우러져 펼쳐진 재잘재잘 봄 속삭임에 봄을 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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