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여행)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를 찾았다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5. 4.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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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촉석루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상설공연을 보며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이라고 양희은은 노래했다. 그러나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를 찾았다. 5일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토요일이 지금의 불타는 금요일(불금)이었다. 그래서 토요일은 밤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토요일은 낮이 좋다. 더구나 진주성 촉석루라며 토요일은 낮이 더더욱 좋다.

 

 

24일 토요일 오후 경남 진주시 진주성에 들어서자 바람은 성곽 곳곳에는 세워져 있는 순시(巡視)라고 붉은 깃발을 활짝 펴게 했다.

 

24일 토요일 오후 2시쯤 경남 진주시 진주성 공북문을 들어섰다. 바람은 성곽 곳곳에는 세워져 있는 순시(巡視)라고 붉은 깃발을 활짝 펴게 했다. 푸른 잔디밭에서는 아빠가 딸아이 앞에서 팔을 앞으로 쭉쭉 뻗으며 씩씩하게 걷는다. 건너편 잔디밭에는 엄마를 따라 아이 셋이 병아리 떼처럼 쫑쫑 따라다닌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돗자리를 펼쳐 앉은 가족들이 싸온 간식거리를 먹는다. 또 다른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젊은 청춘 둘이 돗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누웠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중 진주대첩을 이끈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장군이 39세 일기로 순절했다네. 그럼 후손은 어찌 되었을꼬?”

그러게 말이야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앞에서 꾸부정 할머니 두 명이 안내판 앞에서 걱정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에서 3,800여 명 병력으로 2만 왜적을 물리치고 순절한 김시민 장군은 당시 39세였다. 할머니는 젊은 나이라 한 집안의 가장이었을 장군의 후손 걱정을 한 것이다. 장군은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지만 정작 후손들은 어찌 되었는지 나도 궁금해졌다.

 

 

경남 진주성 내 촉석루

 

걸음을 촉석루(矗石樓)로 옮겼다. 국악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 오후 230. 서둔다고 서둘렀는데도 늦었다. 누각 가장자리에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330분까지 열리는 진주시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이다.

 

 

경남 진주성 촉석루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330분까지 진주시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이 열린다.

 

아쉽게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포구락무가 막 끝났다. ‘진주포구락무는 예로부터 북 평양, 남 진주라 불릴 정도로 전통예술이 뛰어난 진주 교방에서 추던 일종의 놀이춤이다. 아쉬움은 곧이어 시작한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인 신관용류 가야금산조로 달랬다.

얼씨구~”,“좋다~”

후렴구와 함께 느린 진양조장단에서 시작해 아주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가야금은 연주되었다. 누각 난간에 기대어 발을 뻗었다.

 

 

촉석루에 앉아 다리를 쭉 뻗자 시원한 바람에 머리는 맑아지고 귀는 가야금 소리에 상쾌했다. 눈은 촉석루 너머 바라보는 푸른 남강과 어우러진 풍경에 깨끗해진다.

 

한낮 28도까지 올라간 진주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강 바위 벼랑 위에 자리한 촉석루는 시원해 걷어 올린 소매를 폈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는 맑아졌다. 귀는 가야금 소리에 상쾌하다. 눈은 촉석루 너머 바라보는 푸른 남강과 어우러진 풍경에 깨끗해진다. 가야금에 손을 올려 튕기는 하나하나가 경쾌하다. 산조가 끝나자 가야금에 흥부가가 울리는 가야금 병창이 이어졌다. 20~30분쯤 뒤 가야금 공연이 모두 끝났다.

 

촉석루는 진주성 안에서 술 마시고 시 짓고 진주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놀기에 적격이다. 과거를 치르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던 촉석루는 전쟁 때는 진주성의 지휘본부였다. 촉석루는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고려 공민왕 14(1365) 처음 건립되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보수를 거쳤다가 동북아국제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후 다시 재건해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6·25한국전쟁 때 불타 1960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촉석루 한편에 조선 시대 태종을 도와 왕권 강화에 힘쓴 하륜의 촉석루기가 걸려 있다. 촉석루기에 촉석루라는 이름은 남강 가운데 뾰족뾰족한 돌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유래를 적었다.

 

강 쪽으로 앉은 내 머리 위에는 촉석루편액이 걸려 있었다. 유당(惟堂) 정현복(1909~73)50세 때 쓴 작품이다. 원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로 편액을 만들었으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깎아내고 유당의 글씨를 새로 새겼다고 한다. 유당의 두주불사의 호방한 성격을 닮은 글씨는 꾸밈없이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쓴 글이라는 평을 받는다. 유당은 촉석루글씨를 쓰기 위해 무려 500장을 썼다고 전한다.

 

유당이 거침없이 써내려간 촉석루글씨처럼 누각에 앉은 나는 일상의 스트레스는 한 방에 날려버렸다. 지금 촉석루를 국보로 환원하는 운동이 일고 있다. 문득 촉석루가 국보로 환원된다면 내가 오늘 이처럼 앉아 경치를 맘껏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진주검무.

 

진주검무가 펼쳐졌다. 무뚝뚝하고 날카롭다는 설명처럼 검무를 추는 이들의 표정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그러나 실제 검무를 추는 이들은 모두 여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는 진주지역에서 전승되는 칼춤이다.

 

 

꺾이지 않은 칼을 손목을 돌려쓰며 8명이 2줄로 마주 보고 추는 진주검무.

 

한때 대궐 안 잔치 때 행하던 춤이라 한다. 신라 때 화장 관창을 애도하기 위해 춤을 추었단다. 또한,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춤춘대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 병졸들의 전투 복장을 한 무용수 8명이 2줄로 마주 보고 양손에 색동 천을 끼고 춤을 추었다. 더구나 꺾이지 않은 칼을 손목을 돌려쓰며 춤을 추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쉬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시원한 하루가 머물렀다. 과거에서 현재를 만나고 작은 쉼표를 찍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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