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한쪽에 붙은 글귀 하나에 웃은 적이 있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유명한 법어(法語)를 빗댄 말이다. 그만큼 성철 스님이 던진 화두(話頭)는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많이 오르내린다는 증거다. 11일 스님의 화두를 찾아 생가터에 세운 겁외사로 길을 나섰다. 겁외사는 성철스님의 생가 터에 2001년 세운 사찰이다. 이곳에는 성철스님기념관이 있어 그분 평생 기워 입으신 누더기를 비롯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생가 터에 2001년 세운 경남 산청 겁외사.
경남 진주에서 국도 3호선을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산청군 신안면 못 미쳐 오른편으로 빠져나왔다. 고개하나를 넘으며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겁외사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다. 성철 스님은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해인사의 초대 방장과 조계종 6대와 7대 종정 지냈다. 겁외사 앞길은 반듯한 사거리는 아니다. 로터리다. 절 맞은편에 차를 세웠다.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기둥 18개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월한 절이란 뜻을 가진 겁외사. 1993년 11월, 82세의 일기로 열반에 들기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합천 해인사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머물렀다. 그곳을 겁외사라 불렀다고 한다.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을 지나면 성철 스님 동상이 나온다.
겁외사 누각을 들어서자 시간 밖으로 떠나는 나를 스님의 동상이 한가운데에서 반긴다. 누각의 이름은 벽해루(碧海樓)다. 평소 스님이 즐겨 이야기한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문구에 따온 것이란다. 해돋이를 바라볼 때의 경건한 마음을 들어선 마당 한가운데는 스님의 동상이 서 있고 왼편으로 대웅전이 오른편으로는 여느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가 있다.
“자기를 돌아봅시다”로 시작하는 성철 스님의 법어가 새겨진 돌.
“자기를 바로 봅시다”로 시작하는 스님의 법어를 새긴 돌을 먼저 들렀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습니다.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염주 모양의 조형물에서 바라본 성철 스님 동상
찬찬히 법어를 읽었다. 차가운 돌에 스님의 말씀이 향기로 새겨져 읽는 동안 마음이 평안해졌다. 염주 모양의 조형물 속에 스님의 동상이 보였다. 조형물은 ‘단주 돌아가는 소리에 부처를 만나다’는 설명의 ‘부처님 마음’(차대완 작)이다. 그 옆으로는 목탁 조형물이 한가득 있다.
절 마당에는 개구리 모양의 바위가 마치 스님의 법어르 따라 읊는 형상이다.
목탁 조형물 옆으로 대웅전 가기 전에 개구리 모양의 바위가 나온다. 마치 스님의 법어를 개굴개굴 소리 내어 따라 읊는 형상이다. 그 위로는 뭇 사람들의 바람이 돌 하나하나에 담아 작은 돌탑을 만들었다.
웅크린 개구리 바위를 지나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겁외사 대웅전 내부 불단에는 비로자나 부처가 있다. 비로자나불은 태양과 같이 두루 밝은 부처님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본질적인 속성과도 통해 비로자나는 진리의 본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 옆으로 성철스님의 진영이 걸려 있다. 대웅전의 단청은 봄을 맞아 여기저기 피어난 꽃밭처럼 화려하다. 대웅전 벽에는 스님의 출가, 수행, 설법, 다비식 장면 등이 그려져 있어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식력이 약해 개체 수가 적은 백송이 절에 심어져 반가웠다.
미끈한 백송(白松)이 동상에서 스님의 복원한 생가로는 가는 길옆에 있다. 백송은 추위에 강한 나무지만 자라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고 옮겨심기도 여의치 않은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식력이 약해 그 수가 적은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웠다.
스님 동상 뒤로 혜근문을 지나면 복원한 생가가 나온다.
잠시 반듯한 백송의 자태에 넋을 잃고 복원한 생가 대문에 해당하는 혜근문을 지났다. 정면에 스님의 아버지 호를 딴 율은고거(栗隱古居)라는 안채와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포영당(泡影堂)이 있다.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사랑채는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율은고거 옆으로는 너무나 붉은 홍매화가 한그루가 푸른 하늘에 더욱 붉게 빛났다.
성철 스님의 생가 풍경이 오후의 찰나로 사진 속으로 들어왔다.
장독대에서 바라본 생가 마당의 찰나는 향나무 위로 구름이 걸렸고 아래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 찰나는 지금 이 순간에만 내 사진기에 담겼다.
성철 스님 동상.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했다. 종정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를 발표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나?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염주 모양의 조형물로 바라본 벽해루
겁외사를 나와 윤회의 바퀴 같은 로터리 건너편 ‘성철스님기념관’으로 갔다. 3층 높이의 기념관은 2012년 3월 11일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때 스님의 혈육인 불필 스님과 원택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이 뜻을 모아 짓기 시작해 2014년 완공했다고 하다. 아쉽게도 내가 찾은 날에는 바닥재 공사 등으로 문을 닫고 있었다.
성철스님기념관
125평의 기념관 1층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석굴 성불문이라고 한다. 좌우 성철 스님의 한글 법어가 새겨진 문을 지나면 흰 대리석으로 불사 된 성철 스님의 설법상이 장엄하게 설치되어 있다. 설법상 뒤쪽으로는 과거세 연등불, 현재세 석가모니불, 미래세 미륵불을 모셨고 전체적인 석굴 벽면에는 금동 석가모니불 천불을 모셔져 있단다. 공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오는 4월 완전하게 공사가 끝나면 다시 찾아 스님의 가르침을 살펴볼 생각에 벌써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성철 스님 생가 뜨락에 핀 홍매화.
아쉬움을 달래며 겁외사 맞은편에 있는 묵곡 생태숲에서 해바라기하며 햇살을 즐겼다. 물을 물로 보지 않은 시간 밖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 찾아가는 교통편
서울 :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서울-대전-단성IC)
부산 :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부산-서진주-단성IC)
대구 : 88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대구-함양-단성IC)
광주 : 88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광주-함양-단성IC)
☺ 인근 가볼 곳
목화시배 유적지가 차로 5분 거리에 있고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시천면이 20분이면 갈 수 있다. 시천면 가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뽑힌 남사예담촌이 자리잡아 시간 밖으로 여행 떠나기 그만이다. 또한, 시천면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인 기념관과 산천재, 덕천서원,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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