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짭조름 바다와 푸른 하늘이 비벼 낸 냄새에 취하다
경남 통영시 미륵산 케이블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겠네요.”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1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말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원래 그 정도는 기다리는 게 보통이라 이미 여기고 온 탓이겠지. 경남 통영시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고령으로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모시고 패스트푸드로 들어갔다. 어른들은 따뜻한 커피를 아이들은 핫초코와 햄버거, 우동 등을 먹었다. 그나마 날이 푸근해서 좋았다. 여기저기 가족, 연인, 친구끼리 온 일행이 우리처럼 커피 등을 마시며 탑승을 기다렸다. 모두의 얼굴은 약간 설레여 보였다. 마을 주민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한 번 온 적이 있다는 장모님도 설레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온가족이 함께 즐거운 나들이한다는 기쁜 마음이 더하실 거다. 아이들은 패스트푸드를 먹고 난 뒤 어른들의 스마트폰을 빌려 게임 삼매경에 들어갔다. 어른들도 모처럼 나들이에 들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모처럼 피웠다.
케이블카 안.
1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최대 8명까지 탑승하는 케이블카에 우리 일행은 둘로 나누어 탔다. 턱턱~ 케이블 문이 열리고 몸을 숙여 타며 그뿐이다. 케이블카는 문을 닫고 저만치 미륵산으로 우리를 태워 보냈다. 사방이 통유리로 환하게 열려 금방 우리가 지나온 정류장도 보이고 차를 세운 곳도 보인다. 우리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짓도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쁘다. 쓔우욱 올라가는 느낌이 들기 무섭게 이제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통영 시내의 풍경을 뒤로할수록 저 멀리 견내량이 보이고 한산도가 가까이 다가왔다. 1975m의 선로 거리를 10분이 채 되지 않은 느낌인데 벌써 내려야 했다.
미륵산에서 바라본 케이블카
도착하자 말자 일행은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구경하기 바빴다. 아쉽게도 골프장 건설로 푸른 산이 벗겨져 흉한 채 드러난 게 아쉽다. 모처럼 함께했지만 제각각 구경하기 바빠 단체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지 모를 어르신은 자신의 핏줄들과 오늘 나들이를 기념했다. 기념사진을 찍는 와중에 한산대첩 전망대에서 아래 동서가 우리를 보고 손짓이다. 벌써 저만큼 올라갔나 싶었다. 몸이 불편한 장인·장모님과 몇몇이 남고 나머지는 나무 계단을 밟았다.
나무계단 하나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다와 푸른 하늘이 비벼 낸 냄새가 기분마저 상쾌하게 했다.
야생화 꽃길이다. 도깨비 뿔을 연상하게 하는 도깨비고비를 비롯해 원추리, 꽃무릇이 반긴다. 농익은 가을을 온몸으로 표현한 나무들은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뒤를 잇고 있었다. 소사나무, 쥐똥나무···. 전망대로 향하는 계단 하나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다와 푸른 하늘이 비벼 낸 냄새가 기분마저 상쾌하게 했다.
<느린 우체통>의 상징물 게순이와 게통이
100m 정도 올라오자 한산대첩 전망대와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편 한산대첩 전망대로 계단을 올라갔다. ‘게순이’가 살며시 윙크하며 반겼다. <느린 우체통>이다. 믿음 판매대에서 엽서 한 장에 1천 원 하는 편지를 써서 느리고 빠른 편지통을 골라 넣으면 된다. 1주 후에 전달되는 빠른 우체통은 ‘케통이’, 행복한 기다림이 1년 후에 전달되는 느린 우체통은 ‘게순이’이다.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면 영상전화로 할 수 있는 요즘, 1주일도 빠르다니. 행복한 기다림을 위해 1년 뒤에 도착할 편지를 써볼까 싶었다. 판매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과 함께 한단다. ‘편지는 셀레임입니다. 설레임은 사랑’이라는 말에 연애 시절 편지를 하루 한 통씩 써보낸 이래 아내와 가족에게 얼마큼 편지를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한산대첩 전망대에서 바라본 통영 바다.
한산대첩 전망대에서 바라본 통영 바다는 동북아 국제전쟁(임진왜란)으로 우리를 떠나게 했다. 왼쪽 저편에 거제도가 보이고 가운데에 한산도가 드러나는 통영 바다. 그곳에서는 400여 년 전 치열했던 바다 싸움의 함성이 들려왔다.
1592년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등지에서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 연전연패 당했다. 그러자 왜군 장수 와키사카와 구키는 각기 73척과 42척의 배를 이끌고 거제도로 침범했다. 이순신은 7월 8일 이억기, 원균과 함께 55척으로 견내량에서 한산섬 앞바다로 적을 유인, 학익진(鶴翼陣)으로 섬멸했다.
한산대첩 전망대를 뒤로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랐다. 미륵산에서만 자생한다는 특산식물 ‘통영병꽃나무’가 보인다. 나무껍질은 암회색이고 2년 된 가지는 갈색 또는 적갈색이고 1년 된 가지는 녹색 또는 붉은 빛이 도는 세로줄이 있단다. 황록색에서 붉은빛으로 변해 4~5월에 피운다는 아름다운 꽃을 지금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정상 한쪽에는 방향 표지석이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독수리 연(鳶) 덕분에 마음마저 상쾌했다.
독수리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았다. 근데 자세히 보면 펄럭이는 날갯짓이 없다. 아마도 연(鳶)을 띄운 모양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독수리 연 덕분에 마음마저 상쾌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어디를 바라보아도 눈부시고 아름답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어디를 바라보아도 눈부시고 아름답다. 눈길 지나는 대로 가슴 깊이 푸른빛이 스며들었다. 가만히 바람 타고 오는 바다와 하늘의 냄새를 들이켰다. 섬들이 푸른 바다를 만나 수묵담채화의 한 줌 먹으로 다가온 풍광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햇볕 따뜻한 한쪽에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손짓했다. 겨울의 문턱에서 봄을 이렇게 맞았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낮게 나는 새는 가까이 본다’고 했던가. 높은 곳에서 바라본 통영의 푸른 빛이 케이블카에서 주차장으로 향할 때 노란빛으로 바뀌었다. 햇볕 따뜻한 한쪽에 노란 유채꽃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손짓했다. 겨울의 문턱에서 봄을 이렇게 맞았다.
통영 시내 통영활어시장으로 점심 먹으러 떠났다. 펄떡이는 생선과 바다의 짭조름한 비린 내음도 좋았다. 오미사빵으로 유명한 통영답게 여기저기 꿀빵을 판매하고 있었다. 1960년대 초 아무런 상호도 없이 집 앞 가판에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도넛, 꿀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하는 ‘오미사빵집’. 집 옆에 있던 세탁소 이름 ‘오미사’를 빌려와 오미사 빵집으로 불렸다. 이후 오미사 세탁소는 없어지고 ‘오미사’라는 간판을 달고 50여 년 동안 꿀빵을 만들어 오고 있단다. 통영의 명물이 되면서 시장통에는 게 모양을 비롯해 멍게 등으로 만든 꿀빵으로 우리의 입을 유혹한다. 맛보라며 권하는 손길을 마다치 않고 여기서 한 입, 저기서 한 입 먹다 보니 벌써 배부르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사람 반 고기 반인 시장의 북새통에 삶은 오징어와 무를 새콤하게 버무린 충무김밥을 사러 김밥 거리로 나갈 수 없어 가까운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기저기 비릿한 삶 터에서 묻어나는 사람들의 활기에 내 가슴이 뛰었다.
통영 미륵산으로 오르는 길은 바다와 푸른 하늘이 비벼 낸 냄새에 취한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든 푸른 냄새에 취한 하루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준 소중한 우리 가족들에게 등을 토닥여준 통영 나들이다.
▣ 통영케이블카
○ 운행시간 - 09:30~16:00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 정기 휴장일이며 기상관계로 운행하지 않을 수 있다.)
○ 이용요금 -(왕복) 개인 대인 1만원, 소인 6,000원이다.
○ 문의전화 - 1544~3303
○ 홈페이지 http://cablecar.ttdc.kr/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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