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성심원, "좋네, 좋아" 냉면 한 그릇이 전한 행복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6. 19.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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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를 앞둔 18, 흐린 하늘이 산청성심원에 내려앉았습니다.

나룻배 느티나무는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는 초여름의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어르신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는 생각을 하면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성심원 가정사 1~3동에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을 이어가는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계십니다. 대부분 스스로 생활하시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불 앞에 서는 일이 연세가 들수록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심 도시락을 드시는 어르신 두 분이 계십니다. 점심 한 끼를 배달해 드리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저녁과 다음 끼니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준비되는 양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냉면이었습니다.

 

주님의 방에서 만들어진 여름 한 그릇

성심원 조리실은 직원들 사이에서 '주님의 방'(주방)이라고 불립니다. 유리창 너머 조리실은 분주했습니다. 조리사 선생님들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육수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반찬을 담고, 누군가는 배식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식당 배식대에는 냉면 고명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잘 익은 물김치와 노릇노릇하게 부쳐낸 육전, 곱게 채 썬 오이와 삶은 달걀이 차례로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육전은 진주냉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계란옷을 입고 노릇하게 익은 육전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습니다.

초록빛 오이채는 여름 들녘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었고, 반으로 자른 삶은 달걀은 보름달처럼 환했습니다.

커다란 통 속 냉면 육수에는 살얼음이 동동 떠 있었습니다. 보기만해도 시원함이 전해질 만큼 맑고 깨끗했습니다. 도시락 심부름을 맡은 저 역시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어르신의 한마디가 전한 감사

하지만 오늘 냉면을 드시지 못하는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이가 부실해 면을 씹기 어려운 어르신께는 밥과 반찬을 따로 챙겨 드렸습니다. 드시기 편한 음식 위주로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다른 한 분은 냉면을 좋아하시는 어르신입니다.

운반하기 편하도록 냉면 그릇 대신 냄비에 담았습니다. 그릇에 담아 드렸다면 더 보기 좋았겠지만 어르신 댁까지 안전하게 가져가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냄비 속 냉면은 제법 근사했습니다. 살얼음 육수 위에 메밀면이 자리 잡고, 그 위로 육전과 물김치, 오이채, 삶은 달걀이 수북하게 올라갔습니다. 웬만한 냉면집 못지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도시락을 전해드리자 어르신께서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시더니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좋네, 좋아."

 

젓가락을 들기도 전이었습니다.

 

마치 노랫가락처럼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참 정겹게 들렸습니다.

음식 맛을 보기 전부터 기뻐하시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냉면 한 그릇을 전해드렸을 뿐인데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냉면 한 그릇은 결코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새벽부터 조리실에 불을 밝히는 조리사 선생님들, 생활인들의 건강과 영양을 고민하는 영양사 선생님, 배식과 설거지까지 맡는 여러 직원들의 손길이 모여 한 끼가 완성됩니다.

 

이분들이 책임지는 식사도 적지 않습니다. 가정사 4동에 계신 20여 명의 어르신들을 비롯해 성심인애원 생활인들,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의 하루 세 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더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고, 겨울이면 이른 새벽부터 출근해 음식을 준비합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정작 가장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어르신의 "좋네, 좋아"라는 한마디는 도시락을 전한 저만이 아니라 조리실에서 애써주신 조리사 선생님들과 영양사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살얼음이 동동 뜬 냉면보다 더 시원했던 것은 어르신의 환한 웃음이었고, 그 웃음을 만들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의 정성이었습니다.

 

오늘도 성심원의 점심은 사랑으로 마음에 행복 한 점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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