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의 생일이었습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 사이에서 저녁을 밖에서 먹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멀리 나가기보다 집 근처에서 가족이 편안하게 먹을 곳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고른 곳이 진주 하대동 맛집 섭천입니다.

섭천은 진주냉면 전문점 산홍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냉면도 먹고 싶었고 푸짐하다는 소고기뼈도 궁금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소고기뼈와 비빔냉면, 육전국밥을 주문했습니다.

회색 외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섭천’이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나룻배를 닮은 상징과 ‘산홍, 두 번째 이야기’라는 문구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입구에 쓰인 한자가 걸음을 세웁니다.
神光不昧 萬古輝欽
신광불매 만고휘흠
入此門內 莫存知解
입차문내 막존지해
無解空器 大道盛滿
무해공기 대도성만
뜻을 풀면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빛나는 이치가 있습니다. 이 문 안으로 들어설 때는 아는 것과 판단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빈 그릇에 물이 차듯 마음을 비울 때 더 큰 깨달음이 들어옵니다.
문득 일상의 근심을 잠시 비우고,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을 채우라는 섭천의 응원처럼 들렸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빛 벽과 따뜻한 조명, 힘차게 달리는 소 그림이 손님을 맞았습니다.

자리에 앉자 식탁 위 종이 매트에 진주성과 남강 일대의 옛 지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진주의 이야기를 음식에 담은 섭천

벽에는 ‘섭천(涉川) 소가 웃는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섭천은 글자 그대로 물을 건넌다는 뜻입니다. 이곳에서는 진주의 옛이야기가 시간의 강을 건너 오늘의 식탁으로 찾아오는 이름처럼 다가왔습니다.

산홍과 섭천을 운영하는 이종상 대표는 언론에서 20년 경력의 진주교방음식 연구가이자 셰프로 소개돼 왔습니다. 산홍이라는 이름은 을사오적 이지용의 요구를 거절하고 절개를 지킨 진주의 의기 산홍에서 가져왔습니다. 진주의 역사적 인물을 상호와 음식 이야기로 되살린 셈입니다.

이종상 대표는 ‘진주냉면 육수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도 취득했습니다. 특허 취득은 진주냉면 육수를 일정한 조리법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냉면의 계절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소고기뼈 요리와 전골 등 따뜻한 메뉴도 개발해 왔다고 섭천


잊힐 수 있는 진주 교방음식의 기억을 오늘의 외식문화로 불러내고, 시민들이 쉽게 맛보게 했다는 점은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진주의 음식과 이야기를 잇는 이종상 대표의 열정에 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고기뼈와 낯설지만 맛있는 육전국밥

정갈한 밑반찬이 차려진 뒤 생일을 맞은 아들과 잔을 맞댔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유리잔이 가볍게 부딪히자 평범했던 저녁이 우리 가족만의 생일잔치로 바뀌었습니다.

잠시 뒤 커다란 그릇 위로 소고기뼈가 산처럼 쌓여 나왔습니다. 붉은 양념은 뼈와 고기 사이에 윤기 있게 배어 있었습니다.

두툼하게 붙은 살은 결을 따라 부드럽게 떨어졌고, 달큰한 맛 뒤로 은근한 매콤함이 따라왔습니다. 고기 한 점을 먹고 시원한 물김치를 곁들이니 묵직했던 입맛도 금세 가벼워졌습니다.

육전국밥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진주냉면의 고명으로 익숙한 육전이 이번에는 뜨거운 국밥과 만났습니다. 냉면 위에 가지런히 놓인 육전은 익숙했지만, 붉고 뜨거운 국물 속에 담긴 육전은 조금 낯설었습니다.

한 숟갈 떠먹자 그 낯섦은 금세 맛으로 바뀌었습니다. 달걀옷을 입힌 육전이 얼큰한 국물을 머금으며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차가운 냉면 위에서는 담백했던 육전이 국밥 안에서는 따뜻하고 든든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낯설지만 맛있는 조합이었습니다.

비빔냉면에는 오이와 배, 육전과 붉은 양념이 넉넉하게 올라갔습니다. 쫄깃한 면에 새콤하고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소고기뼈의 진한 맛을 산뜻하게 이어주었습니다.

진주성소뼈구이와 비빔냉면, 육전국밥까지 다 맛볼 요량으로 주문했지만 소고기뼈의 양이 넉넉해 남은 고기는 포장했습니다. 아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며 양에 비해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흡족해했습니다. 생일 저녁을 준비한 부모에게 그보다 반가운 후기는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가까운 카페에서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나눴습니다. 생일이라고 반드시 멀리 떠나거나 화려한 상을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서 한 식탁에 둘러앉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진주 하대동 섭천에서 보낸 저녁은 음식이 푸짐해서만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닙니다. 소고기뼈와 비빔냉면, 육전국밥 사이로 진주의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가 함께 오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들의 또 한 번의 생일이 맛있고 든든하게 저물었습니다.
▣ 진주 섭천 하대점
- 주소 : 경남 진주시 도동천로 249
- 대표 메뉴 : 진주성 소뼈구이, 육전국밥, 물냉면·비빔냉면
- 영업시간 : 11:00~22:00 / 매주 화요일 정기 휴무
- 주차 : 전용 주차장 없음. 인근 노상 공영주차장 유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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