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안동으로 시설 견학을 다녀온 2일 저녁, 경남 산청으로 돌아와 정원약초쌈밥에 들렀습니다. 십수 년 전 성심원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찾았던 집입니다.

그때는 신을 벗고 들어가 좌식 상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의자에 앉는 입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월은 식당의 모습도 조금씩 바꿔 놓았습니다. 다만 맛은 그대로였습니다.
좌식에서 입식으로, 맛은 그대로

산청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초록빛 간판이 보였습니다. 산청 읍내의 오래된 식당들이 그렇듯, 화려하게 꾸민 맛보다 오래 버틴 표정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하루 종일 안동을 오가며 시설을 둘러본 뒤라 몸은 조금 지쳐 있었습니다. 점심때 먹은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아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상이 차려지자 걱정은 금세 물러났습니다. 김치와 무침, 노란 계란찜, 초록빛 오이무침, 장조림, 생선조림, 쌈장, 쌈채소가 검은 상 위에서 또렷하게 살아났습니다. 어느 하나 튀지 않으면서도, 밥 한 숟가락을 부르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고등어조림은 정겨웠습니다. 무는 양념국물을 오래 머금어 반투명하게 익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생선살에 먼저 젓가락이 갔을 텐데, 세월이 지나니 양념이 배어든 무가 더 맛있게 다가왔습니다. 음식 앞에서도 나이는 조용히 입맛을 바꿔 놓습니다.

돼지고기와 양파가 담긴 접시도 입맛을 잡아끌었습니다. 얇게 썬 고기 사이로 양파가 부드럽게 익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 못 먹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이어졌습니다. 사람의 식욕은 참 정직합니다. 몸은 피곤하다고 말하면서도, 따뜻한 밥상 앞에서는 금세 마음을 엽니다.

쌈채소는 이날 밥상의 중심이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상추와 깻잎, 당귀가 접시 위에 넉넉히 올랐습니다. 넓은 잎 하나를 손바닥에 펴고, 밥을 조금 얹고, 고기 한 점과 쌈장을 올렸습니다. 한입 안에 산청의 저녁이 들어왔습니다. 당귀 특유의 쌉싸래한 향도 반가웠습니다. “당귀 좋죠.” 누군가의 말처럼, 약초쌈밥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쌈장도 좋았습니다. 붉고 걸쭉한 장 안에 씨앗과 양념이 보였습니다. 쌈밥집에서 쌈장은 조용한 주인공입니다. 너무 짜면 채소를 누르고, 너무 약하면 밥상을 흐리게 합니다. 이 집의 장은 채소와 밥, 고기 사이를 잘 이어주었습니다. 큰 잎 하나에 고기와 장을 올려 싸 먹다 보니 처음에는 많다 싶던 찬들이 금세 줄었습니다.
쌈채소 한 장에 담긴 산청의 저녁

상 한가운데 보글보글 끓던 뚝배기 국물은 따뜻한 위로처럼 목을 타고 넘어갔습니다. 하루의 먼 길도 조금씩 내려앉았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다녀온 하루가 같은 상 위에서 천천히 풀렸습니다.

처음 차려졌을 때보다 다 먹고 난 뒤의 상이 더 많은 말을 합니다. 붉은 양념 자국, 비워진 밥공기, 조금 남은 쌈장, 국물만 남은 뚝배기. “잘 먹었다.” 접시마다 조용히 묻어 있었습니다.

오래된 맛집이 오래 남는 까닭은 단순히 맛 하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시 갔을 때 예전의 나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십수 년 전 성심원 새내기였던 마음과, 안동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의 마음이 같은 밥상 앞에 잠시 마주 앉았습니다.
바뀐 것은 앉는 방식이었고, 남은 것은 맛이었습니다. 그 맛 곁에 성심원 사람들의 하루가 함께 놓였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문을 나서는 길, 몸속 어딘가에 초록빛이 조금 번지는 듯했습니다.
▣ 정원약초쌈밥
- 주소 : 경남 산청군 산청읍 꽃봉산로91번길 18
- 영업시간 : 매일 11:30~20:00 / 브레이크 타임 14:00~17:30
- 주차 : 따로 주차장 없음. 골목길 또는 시장 공영 주차장 무료 이용 가능
- 대표메뉴 : 약초쌈밥정식, 흑돼지갈비찜, 약초버섯전골, 오리훈제보쌈 등
※ 약초쌈밥정식은 2인 이상 주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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