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 성심원 할매시인학교, 산청 청년 모임 ‘있다’와 함께 마음속 마을을 그리다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5. 2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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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 할매시인학교, 산청 청년 모임 ‘있다’와 함께 마음속 마을을 그리다

산청 성심원 마을강당으로 가는 길은 초록이 먼저 열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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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는 길 위로 그늘을 드리웠고, 햇살은 잎 사이를 지나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산 밑에는 꽃밭이 지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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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과 낮은 길,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한 장면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 길 끝에서 산청 청년 모임 있다와 함께하는 성심원 프로그램 동네마다 꽃 피는 할매시인학교세 번째 수업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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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은 매주 화요일 오후, 모두 5회기 동안 이어집니다. 519, 이날 수업은 권영란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권 작가는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며 마을과 사람, 시장과 물길을 오래 들여다본 작가입니다. 시장으로 여행가자남강 오백리 물길여행등을 펴냈습니다. 남강 오백리 물길여행2017년 제1회 한국지역출판대상을 받았습니다.

 

성심원 마을강당에 펼쳐진 조용한 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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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한쪽에는 동네마다 꽃 피는 할매 시인 학교라고 적힌 걸개 선전물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꽃 화관을 쓴 할머니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난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들어’, ‘농막에 장미꽃이 예쁘다라는 짧은 문장도 보였습니다. 거창한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살아온 시간에서 길어 올린 생활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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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서자 공기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바깥의 초록빛은 유리문에 비쳤고, 안쪽에는 책상과 의자가 둥글게 놓였습니다. 흰 종이,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가 책상 위에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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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파스는 통 안에 가지런히 꽂혀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 색이 테이블 위에 한꺼번에 나와 있었습니다. 어르신들 손이 뭉특해져 좁은 통에서 하나씩 빼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한꺼번에 꺼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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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작가는 어르신들에게 이 색도 저 색도, 내 안에 있는 굴레를 벗어나 보세요라는 마음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잘 그려야 한다는 마음, 틀리면 안 된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손끝이 가는 대로 색을 만나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림 품평회에서 피어난 어르신들의 마음속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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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천천히 종이 앞에 앉았습니다. 서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강당 안에는 문득 침묵이 흘렀습니다. 말이 끊긴 자리에 손끝 소리만 남았습니다.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은 마치 고3 수험생 같았습니다. 정답을 맞히려는 긴장과는 달랐지만, 자기 안의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은 그 못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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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은 종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색을 채워 갔습니다. 손끝은 느렸지만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동그라미 안에 색을 하나씩 입히는 모습에서 조용한 열정이 보였습니다. 열정은 빠른 손놀림이 아니라, 끝까지 바라보고 다시 색을 얹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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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르노 어르신은 제일 먼저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권 작가가 칠판 앞에 붙인 그림은 산과 길, 집이 어우러진 산수화였습니다. 산 밑에는 꽃밭이 지천이었고, 그 아래에는 사람 사는 마을이 조용히 자리했습니다. 흰 종이 한 장이 어느새 한 폭의 산수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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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레지나 어르신은 그림을 완성하며 웃음 섞인 말을 건넸습니다. “1등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그림을 다 그린다.”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림 한 장을 다 그렸다는 것은 종이를 채웠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다시 믿어 보는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날 중요한 것은 등수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끝까지 한 장의 세계를 완성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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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혼자만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곁을 살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어르신은 자기 도화지를 그리다 말고 이웃의 도화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꽃은 어디에 더 놓으면 좋을지, 색은 어떻게 이어 가면 좋을지 조용히 코치해 주었습니다. 손끝이 먼저 가리키고, 눈빛이 먼저 건넸습니다.

산청 성심원 할매시인학교, 산청 청년 모임 ‘있다’와 함께 마음속 마을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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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마르샤 어르신은 고향 강원도 삼척에 살던 집을 그렸습니다. 고향집을 기준으로 이웃집도 함께 놓았습니다. 집과 집 사이에는 오래전 동네의 길이 살아났고, 우물가에는 앵두나무꽃이 빨갛게 피었습니다. 어르신이 삼척의 고향집과 이웃집, 우물가 앵두나무꽃을 그렸습니다. 고향의 숨결을 손끝으로 다시 불러오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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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모두 마친 뒤에는 작은 품평회가 열렸습니다. 권영란 작가는 칠판 앞에 어르신들의 그림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흰 칠판은 금세 작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산이 있고, 꽃밭이 있고, 집이 있고, 우물가 앵두나무꽃도 있었습니다. 품평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점수를 매기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기억을 알아보고, 서로의 마음속 마을에 잠시 다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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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붉고 노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성심원 강당 안에서는 어르신들 마음속 꽃이 조용히 피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 마음속에는 어떤 마을이 피어나는지, 그림이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동네마다 꽃 피는 할매시인학교. 이름 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조용히 색을 얻고 있었습니다.

산청성심원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1381번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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