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솔일기

왜 새끼줄이고, 자주색일까 – 삼국유사를 다시 읽다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2026. 2. 2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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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주색이지, 새끼줄은 또 뭐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자줏빛 새끼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을 살펴보니 붉은색 보자기로 싼 금합이 있었다. 그것을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한 대목이다.

삼국유사를 읽다 보면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따라온다. 예전에는 그저 재미난 이야기, 신화쯤으로 넘겼던 장면들이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왜 하필 자주색일까, 왜 새끼줄일까, 붉은 보자기와 금합, 황금알 여섯 개는 또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왜 이런 장치를 굳이 남겼을까 하는 의문까지 땅속의 고구마처럼 줄줄 따라온다.

 

요즘 나는 삼국유사를 예사로 읽지 않는다. 김원중의 번역본을 곁에 두고 가락국기를 다시 펼치다 보면, 문장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게 있다. 예전에는 무심히 넘겼던 색과 숫자다.

 

예전엔 지나쳤던 숫자와 색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김해 구지봉에서 내려온 황금알은 붉은 보자기에 싸여 있고, 자줏빛 새끼줄에 매여 있다. 자주색, 빨간색과 파란색이 합쳐야 나오는 색이다. 이 둘의 경계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는 경계처럼.

 

허황옥을 맞으러 나간 김수로왕은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젓는다. 계수나무, 달나라 나무라 여겼던 나무. 많은 나무 중 하필이면 이 나무로 노를 만들었다.

허황옥은 도착하자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에게 폐백으로 바친다. 노출의 묘사가 아니다. 외부에서 온 존재가 이 땅의 질서에 스스로 몸을 낮춰 들어오는 의례의 언어다. 모두 익숙한 장면인데, 이제는 하나하나가 그냥 장식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소해 보였던. 지나쳤던 설정들 너머를 보려고 애쓴다.

 

특히 숫자가 그렇다. 예전에는 과장된 신화의 수사쯤으로 여겼던 숫자들이 다시금 다가온다. 허황옥은 열여섯 살에 바다를 건너온다. 조선시대 춘향이와 같은 나이다. 너무 어리지도, 이미 굳어 버린 나이도 아닌, 새로운 가야라는 사회의 질서에 들어갈 수 있는 문턱의 나이다.

 

수로왕은 아홉 자의 몸으로 등장하고, 탈해는 석 자로 대비된다. '()'의 기준점이 궁금하다. 중국 주나라 시대의 척도인 주척(周尺)을 기준(19.5cm~23cm)으로 해도 180cm(20cm*9) 정도다. 이에 반해 탈해는 3자 약 60cm. 지금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키가 작다.

 

숫자는 죽음의 장면에서도 또렷하게 다가온다. 허황옥은 백오십칠 세에 세상을 떠나고, 김수로왕은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 뒤, 백오십팔 세로 죽는다. 이 수치들을 그대로 대입해 계산해 보면, 허황옥은 김수로왕보다 스물네 해 먼저 태어난 셈이다. 한 세대 앞서 와서 나라의 문을 열고, 먼저 물러나는 인물. 마지막 한 해는 토착 왕권의 주인에게 남겨 둔다. 숫자는 우연인 듯 보이지만 가락국기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정렬한다.

 

함께 살았지만 함께 묻히지 않은 이유

 

이 차이는 무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같은 무덤에 묻히지 않는다. 합장이 아니라 멀지 않은 곳에 따로 무덤을 둔 분장이다. 수로왕은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의 왕이 되었고, 허황옥은 바다를 건너와 이 땅에 편입된 존재다. 생전에는 함께 나라를 이루되, 사후에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가락국은 둘을 하나로 지워 버리지 않고, 둘이 공존했음을 끝까지 남긴다.

가락국기를 비롯한 삼국유사 속 신화와 설화는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가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삼국유사는 고대사로 가는 밥이다. 밥을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표지와 본문 이미지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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