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리 밥 줘.” 피곳 씨는 아침마다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회사로 휑하니 가 버렸습니다.
“엄마 빨리 밥 줘요.” 사이먼과 패트릭도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중요한 학교로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이 떠나고 보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모두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갔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등장인물 피곳 씨와 아이들을 내 이름과 우리 아이 이름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풍경이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모두 엄마 몫인양 생각하고. 아무도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고 힘들어하던 엄마는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돌봐 줄 사람이 없어진 피곳 씨와 아이들은 조금씩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원화작업을 하기 전의 스케치북도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 보라고 사준 그림책이지만 읽는 동안 뜨금 했다.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비단 아이들만을 위한 책만 쓰는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나같은 아빠가, 엄마가 읽으면 더 좋은 책을 만드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작가다.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책을 찾아보니 11권이다. <돼지책>, <고릴자>, <달라질거야>, <꿈꾸는 월리>, <월리와 악당 벌렁코>, <잘 가, 나의 비밀친구>, <미술관에 간 월리>, <월리와 휴>, < 축구선수 월리>, <우리 엄마>,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
큐레이터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지만 내 맘대로 구경하는게 오히려 나는 편했다. 설명을 들으면 그 틀에 갇혀 버리는 사례가 많기에.
앤서니브라운의 책들은 익살스런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풍경도 재미나지만 읽고 나면 가슴을 후비는 감동이 몰려온다. 더구나 아이와 아빠(엄마)라는 관계에서 보면 좋은 육아지침을 전수 받는다. 이런 앤서니 브라운의 원화전이 경남 창원시 3·15아트센터에서 열린다는데 우리 가족도 빠질 수 없었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 이모집에 가서 함께 관람하고 왔다.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 등장인물인 고릴라가 모나리자로 변했다. 마치 화가인양 폼새를 잡아볼 수 있었다.
감동적인 내용 못지않게 그림도 매력적인 그의 작품들은 익살스런 표정과 섬세한 묘사에 둘러보며 읽는 즐거움이 솔솔하다. 더구나 사진촬영을 허용해 아이들에게 읽었던 책 속 배경을 사진에 담아 올 수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이 초현실적인 기법과 섬세한 묘사는 그가 의학일러스트 출신이라는데 출발한다니 놀랍다.
영상작가 이영남의 디지털작품.
또한 영상작가 이영남이 앤서니 브라운 그림들을 독특한 디지털 시각으로 해석해 놓은 작품들이 선보였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과 명화 이미지, 익숙한 만화캐릭터가 디지털 속에서 재미나게 유혹하는 통에 관람 하는 걸음은 내가 아이보다 즐겁고 신났다.
전시장 2층에 설치된 윌리. 나도 저처럼 맘껏 날아다니고 싶었다. 근데 상상의 나래는 왜 나이가 들면서 점차 쭈글쭈글 줄어드는 것일까.
2층 전시장 한켠에 앤서니 브라운의 주요 작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전시회를 핑계로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앤서니 브라운이 던진 셰이프 게임판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둥근 원도, 사각도 아닌 모양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 그림을 그리면 그뿐이다. 이것은 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하니 재미나고 즐거웠다. 내눈에는 동그란 바퀴로 보이는 것도 아이는 개구리 눈으로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으로도...
전시회는 4월1일까지 열리는데 아마도 전국 순회 중인듯하다.
그림책, 아이들만 읽는다는 편견은 잊어라, 그리고 그림책 속에 숨은 그림을 찾아보자. 그 자체가 주는 재미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씹을수록 단맛 나는 밥처럼 단내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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