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산청성심원 시립대(詩立大) 학생들의 초대장 “시 한잔하실래요?”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5. 5. 2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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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성심원 시립대(詩立大) 학생들의 초대장 “시 한잔하실래요?”

 

“~이제 내 안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자~”

말을 잇지를 못합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마이크 앞에서 숨을 고르고, 이어서 시를 읊습니다.

이제 그만 울고 웃어보자 / 이제 그만 아파하고 하하호호 즐겁게 살자~”

520일 오후 산청성심원 강당에서 열린 시 낭송 발표회에서 자작시를 들려준 박후경 어르신의 시어가 강당에 은은하게 흩뿌려집니다. 덕분에 따뜻한 여운이 밀려옵니다.

이날은 3월부터 시작한 산청도서관(관장 이은경)과 산청 성심원(엄상용 원장 수사)이 함께하는 나와 만나는 시 낭송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성심원 강당에서 열렸던 이번 시 낭송은 산청도서관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상반기 평생학습 중 하나입니다.

오후에 열리는 발표회를 앞두고 오전부터 강당으로 찾아온 어르신들은 하나둘 자신들이 들려줄 시를 무대에 올라 읊습니다.

동료들의 즐거운 지적질(?)이 이어집니다.

언니 좀 더 감정을 실어 봐~”

원래 목소리로 해도 좋아

서로의 다독임 속에 예행연습을 마쳤습니다.

드디어 발표회 시간. 들어서는 강당 입구에는 어르신들이 수업 중에 만든 부채와 나무 액자가 해 맑은 미소로 오는 이들을 맞이합니다. 모두는 나름의 멋을 부리고 강당을 찾았습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시를 읽겠노라는 다짐이 보입니다.

다음에는 문을 연 <산청 성심원 카페 나루터’>에서 호수같이 맑은 경호강을 바라보며 시 낭송을 하자며 엄삼용 원장 수사의 인사말로 발표회가 본격 막을 올렸습니다.

아흔둘의 최영임 어르신이 휠체어에 의지해 수강생을 대표해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밤마다 시를 읽다가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시를 찾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어르신의 주름진 얼굴이 활짝 펴집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최영임 어르신을 선두로 준비한 시 낭송을 이어갔습니다. 휠체어에 앉고 직원이 받쳐준 마이크지만 어르신은 밤마다 오늘을 위해 읊은 시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들려주시는 동안 우리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맞이합니다.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자, 박수가 하늘의 별처럼 강당에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김태근 시인과 함께 시 낭송을 함께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원 반해경 낭송가 등이 그대였으면 참 좋겠습니다(김태근 시)’를 들려줍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그대였으면 좋겠습니다~” 괜스레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온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박혜련의 청포도 (이육사 )’를 비롯해 김희분 어르신의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 최성영의 오월 성모의 밤에(마리데레사 시)가 연이어 무대에서 내려와 우리 곁에 머뭅니다. 덕분에 메마른 논바닥에 물이 들어오듯 생기가 돕니다.

박후경 어르신이 성심원 시립대(시로 일어서는 대학)‘이란 자작시를 들려줍니다. “~이제 내 안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자~” 힘겨웠던 지난 삶이 시에 묻어 낭송하는 이도, 무대에서 듣는 이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김용덕·박후경·오성자·박두리 어르신들이 합창하듯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아는 표준어의 시를 시작으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토박이말이 우리의 두 귀를 즐겁게 간지럽힙니다.

덕분에 웃음이 하하호로 퍼집니다. 무대에 선 어르신도 본인이, 동료가 들려주는 시에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즐거운 합송이 끝나고 오성자 어르신이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용혜원 시)’와 김용덕 어르신이 초혼(김소월 시)’를 들려주며 우리의 감정이 다시금 말랑말랑해집니다.

이어서 시 낭송 수업 때도 어르신 곁에서 함께 시를 읊고 시를 옮겨 적었던 우정숙 한예원 사무총장이 엄마는 그대로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시)’를 들려줍니다. 여기저기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습니다.

진달래꽃 경상도 토박이말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박두리 어르신이 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김태근 )’를 들려줍니다. 시 향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감쌉니다. 무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를 읽는 게 남사스럽다며 발표회 당일까지도 못 하겠다고 하셨던 오금자 어르신이 수줍은 듯 무대 앞 마이크에 섭니다. ‘선물(나태주 )’를 찬찬히 들려주시는 덕분에 우리는 소중한 선물을 받은 양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발표회도 끝날 무렵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르신들과 시 한잔을 나눈 김태근 강사의 시 낭송 망향가(황송 문 시)’ 퍼포먼스가 우리의 두 눈을 모두 무대로 쏠리게 합니다.

자칭 성심원 시립대(詩立大) 대학생이라는 박후경 어르신은 시 낭송은 단순히 시만 읽는 자리가 아닙니다. 힐링의 장소예요. 시를 읽고 입 밖으로 내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한편, 시 낭송 발표회의 여운은 산청성심원 어울림축제(66~67)에서도 다시금 고갱이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허락을 받아 사진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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