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속 진주

진주 3·1만 세 운동②-진주 하늘을 울린 종소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5. 3. 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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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3·1 만세운동은 318일 장날 정오에 진주중앙시장, 옛 진주법원 앞, 진주성, 대안동, 대사지 매립지 앞 다섯 군데에서 동시다발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계도 제대로 없던 그 당시 만여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일시에 만세를 외쳤을까?

정오에 울리던 진주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했다. 1936년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 때 경상남도 경찰부가 쓴 고등경찰관계적록(高等警察關係摘錄)에 따르면 주모자들이 318일 진주 장날에 즈음하여 예수교 예배당(진주교회)에서 알리는 정오 종소리에 맞춰 일제히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약 1만 군중이 모여로 기록하고 있다.

진주 중·고등학교 옆에 있는 진주교회는 1905년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 커럴 가족이 처음으로 세운 곳이다. 진주교회 앞에는 3.1운동 참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고 옆으로 ‘3.1운동 기념 종탑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다. 표지판에는 1919318일 장날 진주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지역 5(진주중앙시장, 옛 법원 앞, 진주성, 대안동, 매립지 앞) 에서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고 적혀 있다.

표지판 뒤편으로는 <진주 기미 독립 만세 의거 기념 종탑>이 서 있다. 지금의 종탑 속 종은 당시의 종이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1930년에 발간된진주교회 25년사에 따르면 만세 시위가 일어난 뒤 192210월 새 종을 사들여 달고 이전에 쓰던 종은 산청 단계교회에 주었다고 한다. 단계교회는 높이 86, 지름 84크기의, 이 종을 충남 천안에 있는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박물관에 기증해 보관하고 있다. 2012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종탑과 종을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진주교회와 진주교회 비젼관 사이에는 진주에서 최초로 일반인들과 백정들이 함께 예배본 교회라는 안내판이 있다. 1909년 라이올(한국명 나대벽) 선교사는 한때는 천대받던 백정 신자들을 차별하여 따로 예배드리는 것이 평등 인권사상에 어긋난다고 하여 함께 예배드리도록 했다. 이에 반발한 일반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스콜스와 켈리 두 선교사의 설득으로 결국 화해해 함께 예배를 보았다. 국내 최초의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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