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죽은 사람 소원? 산 사람 소원이야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24. 4. 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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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 어르신들과 한나절 서울 나들이 오히려 가슴이 촉촉해져

 

마실 가듯, 소풍 가듯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산청에서 서울까지 천 리 길. 하지만 죽은 사람 소원도 이루는 세상인데 산 사람 소원 못 이룰까요? 한센인 생활시설 성심원 어르신들의 바람, 살아생전 꼭 가보고 싶다는, 한때 대한민국 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4월 18일 스타렉스에 설렘 안고 출발했습니다.

아직은 어둠이 짙게 드리운 오전 430. 출발하기 위해 세워둔 차량에 참가 어르신이 한명 두명 탑승을 시작합니다. 혹시나 일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신 어르신은 모닝콜도 요청하시기도 했습니다. 모닝콜 덕분인지 출발하기로 한 5시 정각보다 이른 450분 어르신 6명과 직원 2명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동안 어둠이 물러나고 주위 풍광이 하나둘 눈에 들어올 무렵 신탄진 휴게소에 이르러 숨을 고르고 이른 아침을 먹었습니다.

소풍을 나선 아이처럼 모두가 들뜹니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타고 달리는 덕분에 서울 경복궁 동편 주차장에 910분쯤 도착했습니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도시, 서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나들이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청와대행 셔틀버스에 올라 영빈관 정문 앞에서 내렸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걸음은 땅에서 살짝 떠오른 듯 가볍습니다.

청와대 정문을 지나자, 본관이 보입니다. 푸른 기와 15만 장을 얹었다는 콘크리트로 만든 한식과 양식이 절충한 청와대가 우리를 저만치에서 반깁니다.

청와대 개방 만 2주년을 앞두고 본관 일부는 관람이 제한되어 아쉬웠습니다. 본관 중앙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정면에 있는 한반도를 형상화한 <금수강산도>를 바라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천상열차분열지도라는 옛 조선의 천문 지도를 봅니다. 하늘의 기운이 우리에게 밀려오는 기분입니다.

 

본관을 나와 대통령 내외가 머물렀던 관저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옛 본관이었던 경무대 터도 지납니다.

 

어질고 장수한다는 인수문을 지나면 관저입니다. 어르신들은 대통령 내외가 어떻게 살았는지 돋보기로 관찰하듯 꼼꼼히 살핍니다.

 

관저를 나와 청와대 정원인 녹지원으로 내려갑니다. 우거진 숲속을 내려가는 길에는 미세먼지 걱정도 잊고 마스크도 내려갑니다. 콧구멍 가득 숲의 기운을 들이마십니다. 개운합니다.

 

백성과 기쁨을 함께한다는 여민동락에서 따온 여민관 1층에서 숨을 고릅니다. 숨을 고르고 헬기장을 거쳐 춘추관 옆으로 나왔습니다. 나올 때 기자회견 하듯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회견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어르신들이 대통령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자 했는지는 궁금합니다. 다들 가슴에 담아두었습니다.

춘추관을 나오니 점심 시각. 국무총리 공관 옆을 지나 식당에 들어섭니다. 서울은 사람이 많아 식당 안이 비좁습니다. 그럼에도 한정식이 1인분에 17,000원이면 가격도 괜찮고 나온 찬들도 먹을 만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이번에는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궁궐의 돌담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세웠던 주차장 근처에 이르자 참가 어르신 중 2명이 힘겨워하십니다. 나를 두고 관람하라며 우리에게 등 떠밉니다. 두 분을 남겨두고 나머지 일행은 경복궁 정문이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최근 복원한 월대에서부터 천천히 임금만이 걸었던 어도(御道)를 따라 걷습니다. 걷는 동안 사방으로 눈이 부시게 빛납니다. 빛이 널리 퍼지는 기분입니다.

 

한복을 대여해 입은 관람객들로 궁궐은 북적북적합니다.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을 지나자, 작은 개울이 나옵니다. 금천을 거니는 다리 영제교 좌우에 상상 속의 동물 천록(天祿) 4마리가 물을 경계합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보물을 지킨다는 녀석 중 한 마리는 혀를 내밀고 메롱 합니다. 덕분에 웃습니다. 덩달아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좋은 기운을 담는 기분입니다.

근정문을 지나자,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본 근정전이 나옵니다. 근정전 앞 조정에는 관광객들로 더욱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근정전 옆 회랑으로 모셨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근정전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이어지는 풍경이 여간 아닙니다. 더구나 근정전의 부드러운 처마 곡선을 보기에 그만입니다. 근정전을 바라보며 왜 조정에 박석(薄石)을 깔았는지, 관람객 불편하게 울퉁불퉁한 돌을 깔았는지 설렁설렁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근정전을 지나 어르신을 모신 곳은 경회루입니다. 물론 세종대왕께서 신하들과 훈민정음 창제를 연구하셨던 옛 집현전인 수정전을 거쳐서 경회루 옆으로 이끌었습니다. 정면보다 측면에서 바라봐야 더욱더 우리 건물들이 운치를 더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숨을 고릅니다. 기다리는 분이 있기에 넓고 살펴볼 게 많은 경복궁 관람을 끝내고 돌아 나왔습니다.

다시금 보금자리인 산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차 안에서 광화문 광장이며 한국은행 등을 지납니다. 복잡하고 사람 많은 서울이지만 어르신들과 한나절만 머물렀는데도 오히려 퍽퍽했던 가슴이 촉촉해지는 기분입니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어르신들의 서울 나들이에 동행한 덕분에 맘껏 서울 구경을 했습니다. 봄이라는 해사하고 찬란한 꿈을 함께 꾸었습니다. 부족한 이야기보따리에 귀 기울여주신 어르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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