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진등재 옛길에서 숨을 고르다
한해의 절반을 보내고 모두가 결실을 향해 내달리는 요즘입니다.
문득 올 한해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바삐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지만,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가는 길을 찾아 여유를 담았습니다.
의령 용덕면 운곡리와 정곡면 죽전리를 연결하는 진등재 옛길을 찾았습니다. 의령에 진등재라는 지명을 가진 고갯길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의면 신기에서 산청군 생비량면 거쳐 진주로 가는 나들이 고갯길을 비롯해 여럿이 있습니다.
2017년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에서 정곡면 죽전리를 연결하는 국도 20호선 4.7㎞ 구간의 확장하는 신설도로가 개통했습니다. 도로는 길이 4.7㎞, 폭 11.5m(2차로)로 893m 길이의 터널 1곳과 80m와 45m 길이 교량 2곳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용덕면 운곡리에서 정곡면 죽전리 구간의 차량 운행 시간이 당초 15분에서 5분으로 10분 줄었습니다.
그러나 잘 닦인 길이 아니라 인생을 닮은 길 위에 섰습니다. 진등재 삼거리에서 옛길을 따라 드라이브 나섰습니다. 산 능선을 지나는 진등재는 굴곡이 심해 교통사고 위험이 컸습니다. 이리저리 구불 저리 구불 고개는 구불거리고 가파릅니다. 덩달아 차와 함께 산을 오르고 새소리, 바람 소리, 남강의 경치가 찾는 이 마음을 채웁니다.
그럼에도 헛된 걸음은 없습니다. 모두가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길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풍경이 달라집니다.
의령문화원에서 펴낸 <의령의 지명>에 따르면 ‘긴 산줄기의 고개’라는 뜻의 ‘진등재’는 ‘길다’는 지역어인 ‘질다’와 산등성이를 뜻하는 ‘등’을 사용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진등재에 들어서니, 여름이 진하게 농익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모든 산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며 넉넉한 녹색으로 우리를 싱그럽게 합니다. 찾은 우리는 물론이고 산도 깊고 여름도 깊어갑니다.
고개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그윽하게 깊어가고 짙어갑니다.
고갯마루에 이르자 용덕면과 정곡면 경계입니다.
경계 좌우로 임도가 놓여 있습니다. 잠시 임도를 거닙니다.
빽빽한 주위 숲 사이로 빛살들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헤치고 불붙듯 활활 번집니다.
농익어가는 여름 절정의 몸짓으로 녹색 빛으로 한껏 물이 오른 풍경은 마음에도 청량한 녹색으로 물들입니다.
진등재 여름은 결실의 시간을 향해 힘껏 내달리고 있습니다.
덩달아 자글자글 익어가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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