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이야기

보물섬 남해 속 보물 찾아 떠난 여행-용문사

에나이야기꾼 해찬솔 2018. 8. 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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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가 없습니다. 햇볕은 온몸에 내려꽂힙니다. 따가운 불볕더위에 기운이 빠질 때면 보물섬 남해의 품에 안기면 좋습니다. 넉넉한 여름 풍경이 있는 보물섬 남해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길은 보양식처럼 개운합니다. 보물섬의 보물, 용문사(龍門寺)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보물섬 남해 속 보물을 찾아 나선길, 하늘과 맞닿은 푸른 풍광이 온몸으로 들어와 푸르게 한다.


바다를 가로지른 창선-삼천포 대교를 건너 보물섬에 접어들면 하늘과 맞닿은 푸른 풍광이 온몸으로 들어와 푸르게 합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친다. 소담스러운 어촌 마을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싱그러운 바다 내음이 동행합니다.

 

보물섬 남해의 해안길은 언제나 푸른 바다와 하늘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싱그러운 길이다.


여인의 치맛자락같이 풍성하고 둥근 앵강만 바다에 들어서면 시야를 수평선으로 꽉 채우는 풍광은 긴장의 끈을 풀게 합니다.


남해 미국마을

 

미국마을

남해군에서 미국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게 만든 마을이다.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 24,790(7,500) 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했다.

 

미국교포들이 들어와 사는 미국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호구산(虎丘山)으로 나가면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거인처럼 양쪽으로 서서 반깁니다. 굽이굽이 돌아가다 첫 번째 굽이에 이르면 까만 아스팔트 사이로 하얀 시멘트가 둥근 원 모양으로 바닥에 박혀 있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나옵니다.

남해 미국마을에서 용문사로 가는  굽이굽이 돌아가다 첫 번째 굽이에 이르면 까만 아스팔트 사이로 하얀 시멘트가 둥근 원 모양으로 바닥에 박혀 있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나온다.

 

주차장 뒤편으로 <서포문학공원>이라는 작은 쉼터가 나옵니다. ‘남해적사유고목죽림유감우심작시(南海謫舍有古木竹林有感于心作詩)’라는 남해 유배지에서 고목죽렴을 보고 시를 지은 서포 김만중의 시가 올라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게 합니다.

 

김만중(金萬重1637~ 1692)

자 중숙(重淑), 호 서포(西浦), 시호 문효(文孝)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남해로 유배온 김만중은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쓴 <구운몽>과 부귀영화가 하룻밤 꿈에 불과하다는 한글로 쓴 <사씨 남정기>를 쓴 소설가 이기도 하다.

 

“~바람과 물결 하늘에 넘쳐 넘을 수 없는지(風濤滔天不可越)/ 여섯 달 동안 지금까지 편지 한 장 없네(六月曾無一書札)/~죽어서 떠나면 누가 강변의 뼈를 거두어 줄까(死去誰收江邊骨)”

 

유배 온 서포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지만 지금 찾은 이 길은 이제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스스로 유배당하고 싶은 보물섬입니다.

 

 

남해 용문사 가는 길에서 만난 서포문학공원

 

작은 공원에서 지나온 바다를 봅니다. 하늘과 바다는 푸름을 다투고 지나가는 바람 한 점도 푸릅니다. 공원 옆으로는 용문사로 가는 작은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자 선계(仙界)를 들어선 듯 진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 졸졸졸 젖어 듭니다.

 

서포문학공원 옆으로는 용문사로 가는 작은 다리가 있다다리를 건너자 선계(仙界)를 들어선 듯 진녹색 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에 졸졸졸 젖어 든다.


숲속을 나와 다시 굽이진 길을 돌아가자 일주문이 나옵니다. 용문사(龍門寺)는 창건 연대는 불확실하지만, 신라 애장왕 3(802)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이 절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여하여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그때 절이 불타 조선 현종 2(1661) 인근 보광사(普光寺) 건물을 옮겨와 중창했습니다. 보광사는 원효가 세운 절이지만 옮길 당시에는 폐사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용연(龍淵) 위쪽에 터를 잡았다고 해서 용문사라고 합니다.

 

남해용문사


용문사(龍門寺)

남해군 이동면 호구산(虎丘山)에 있는 사찰로 802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가지정 보물인 대웅전을 비롯해 천왕각·명부전·칠성각·봉서루·산신각·요사 등이 있으며, 산내 암자로는 1751(영조 27)에 세운 백련암(白蓮庵)과 염불암(念佛庵)이 남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교를 지나면 조선 숙종 28(1702)에 지은 천왕각입니다. 곧장 천왕각으로 향하지 못했습니다. 차를 인근에 주차하고 나서 곧장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유리창에 붙여진 새조심이라는 종이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오가는 새들이 유리창을 유리로 알지 못해 부딪히는 사례가 종종 있는 모양입니다. 새들은 이 경고를 보고 조심할지 모르겠지만 새조차 소중한 생명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자비가 보입니다.

 

남해 용문사 유리창에 붙어 있는 <새조심>


주차하기 위해 옆으로 둘러오지 않았다면 천왕각 지났다면 바로 만날 봉서루(鳳棲樓)가 대웅전 정면에 서 있습니다. 용문사의 정문과도 같은 봉황이 산다는 봉서루는 설법전으로 활용되는데 그 아래에 1000명분의 밥을 퍼담았을 정도로 큰 엄청나게 큰 밥통으로 전하는 구유(명 구시통)가 보입니다. 몸통 둘레만 3m, 길이가 6.7m의 대형밥통에 괜스레 배가 출출해집니다.

 

남해 용문사에 있는  몸통 둘레만 3m, 길이가 6.7m의 대형밥통인 구유


인근 무인카페에서 차 한잔으로 출출한 마음을 달래고 다시 절 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국가지정 보물인 대웅전은 숙종 29(1703)에 성화 스님이 낡은 대웅전을 고쳐 새롭게 지은 전각으로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법당 건축물입니다


남해 용문사 무인카페


앞면 3, 옆면 3칸 규모의 화려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겹처마의 덧서까래가 길어져 전체적으로 지붕이 위로 휘어져 들려 보이며, 네 귀퉁이에 추녀를 받히는 기둥인 활주가 있습니다. 건물 처마 아래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남해용문사 대웅전


호구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백련암(白蓮庵)과 염불암(念佛庵)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녹 푸른 나무 사이로 호수 같은 하늘이 열렸습니다. 산사태 방지를 위해 만든 사방댐에 고인 물조차 진청색입니다.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좁게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산속에 있는 용문사에서는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좁게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었.


백련암 옆으로 난 호구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커다란 측백나무가 어서오란 듯 반깁니다. 용문사에서 호구산 정산까지 1시간가량 걸린다고 합니다. 잠시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자 맑은 기운이 감쌉니다. 정상에 이른다면 너럭바위 위에서 남해바다에 흘린 땀을 훔쳐주고 머나먼 남도 끝자락의 풍광을 두 눈에 꽉꽉 눌러 담을 수 있을 듯합니다.

 

남해 용문사에서 호구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측백나무가 어서오란 듯 반긴다.


아쉬움을 달래고 가져간 캔커피를 마십니다. 내려가는 길은 바다를 품에 안고 바람 타고 가는 길입니다. 그리움으로 내달린 길 끝에서 보물섬 남해의 숨겨진 보물을 보았습니다. 바다 향기 머무는 섬마을 남해의 푸른 기운을 가득 담았다. 행복한 여름날 오후가 흘러갑니다.


보물섬 남해의 보물,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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